나는 소년의 재범을 예방한다. 재범의 징후가 보이면 야간 외출제한 명령 등 추가 처분을 신청하거나, 처분변경 신청을 통해 시설 내 송치 의견을 낼 수 있다.
나는 상담사가 아니다. 정서적 결핍이 상당해 심리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면 상담사와 연계하고 상담을 강제할 수도 있다.
직원의 평가는 재범률로 이어진다. 주간 계획서. 각자의 이름 밑에는 재범 건수가 찍혀 보고 된다. 아이에 대한 영향력은 단번에 나오는 성과가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당장 직원과 조직을 평가할 잣대는 그것뿐이었으리라.
하지만 재범률에 대한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영화 '관상'의 수양대군 이정재처럼. 아이를 만나면 '재범할 상 인가' 미리 예측하기 위해 허영만의 '꼴'을 정독한 적도 있다. (소년에게 관상을 접목하려면 세월의 조각이 더 필요했다)
내가 만난 아이 중 하민지(가명)라는 아이가 있었다. 이 소년은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새벽에 거리로 내몰렸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엄마는 형과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둘째인 이 아이만 남겨두고.
왜 하필 둘째인가.
우리 엄마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계가 막막해 지자 나를 친척집에 입양 보냈다.
내가 둘째였기 때문이다. 첫째는 첫아이라는 감명 때문. 막내는 아직 엄마품이 필요하기에 애틋해서. 상대적으로 부모 관심을 덜 받게 되는 둘째. 그래서 선택되었다고 믿는다.
내가 형제 중 제일 열등해서는 아닐 거라고.
그래서 나는 누가 '저는 둘째입니다. '라고 하면 내심 '당신은 일단 합격. 내 동지입니다.'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있다.
어쨌든 새벽에 거리로 내몰린 작고 왜소한 그 아이는 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지만 피해자가 되기에 더 십상이었다.
그 소년의 아버지를 지역단체 여기저기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그 아버지로부터 평생 들어먹을 욕을 다 들었다. 분이 풀릴 때까지 욕을 다 듣고 나니 이 아이가 밤마다 듣고 시달렸을 이 욕설에 격한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변화도 없었다.
해 줄 것이 없어 치킨을 사들고 아이가 사는 옥탑방에 갔다. 원래 제자리가 어딘지도 모를 만큼 정리되지 않은 짐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쓰레기와 설거지는 한 가득이었으며 언제 닦았는지 모를 만큼 바닥은 지저분했다.
둘이 앉아 치킨을 먹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소년이 바닥에 팽개쳐진 옷가지로 만든 무덤을 무심히 툭 밀었다. 그 순간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를 잃은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빛의 속도로 후미진 곳으로 사라졌다.
이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먹다 남은 따뜻하고 귀한 피자 한 조각을 포일에 꼼꼼히 싸 두었다. 아침에 먹기 위해. 그러다 새벽에 배가 고파져 부엌에 불을 껴고 호일을 벗기는 순간. 피자 위에 빈틈없이 토핑 된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들을 보고 기겁을 한 적이 있다.
그 후 나는 바퀴라는 글자만 봐도 경기를 일으킨다.
그리고 옥탑방이라 그런지 너무 추웠다. 아마 바퀴벌레도 추위에 못 이겨 옷가지들을 이불 삼아 덮고 있다 획 뺏긴 기분이었을 것 같다.
미안하지만 치킨을 여기서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다른 구태연한 핑계를 대며 나왔다.
나오는 길에 물었다.
"안 춥니?"
"저 추위 안타요. "
"바퀴벌레 안 무서워?"
"뭐가 무서워요. 때려잡으면 되는데. 너무 많아서 귀찮아서 놔두고 있어요."
난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두 가지가 추위와 바퀴벌레다. 그것은 내가 살던 곳. 빈곤과 결핍의 상징이다.
다행이다. 네가 추위와 바퀴벌레에 무심해서.
너의 수호신은 무던함을 주셨구나.
나는 그 힘이 이 친구가 살아가게 될 힘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