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영 Apr 12. 2022

악몽을 극복하는 법

딸과 나는 서로 간지럼 태우는 장난을 하며 게임을 하고, 함께 웃으며 잘 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딸아이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두려움에 휩싸인 듯 몸서리를 치며 말한다.


"엄마.. 독뱀 생각나.... 으앙~"


최근에 딸은 독뱀(딸은 독사를 독뱀이라 부른다)이 나오는 꿈을 꾸었는데 불현듯 순간 갑자기 생각이 난다는 것이었다. 생각 안 하려고 할수록 의지와 상관없이 더욱 생각이 난다고 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으나 이런 행동 패턴이 계속 이어지자 신경증적 강박증상은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딸에게 말했다.


"감이야. 엄마 따라 말해"


"웅"


"개 꿈이다!"


딸아이는 따라 말하다 우습다는 듯 큭큭 웃어 댔다.

"개 꿈이다!"


딴 이야기지만. 얼마 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한 평범한 청년의 사연인즉, 사업으로 망한 집안에.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은 아들(청년)이 의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은 의대 입학에 실패했고 좌절한 아버지는 술만 마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 후 아버지는 매일 밤 청년의 꿈속에 나타나 "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라고 말하며 흐느끼며 울다 간다는 것이다. 이 사연을 고백하며 청년은 어깨를 떨구면서 무척이나 격정적으로 울었다.


실제로는 더 구구절절한 이 사연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웠고 청년이 너무 안쓰러웠다. 이런 사연에 법륜스님은 청년에게 어떤 멋진 말과 지혜로 위로와 공감을 해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법륜스님이 말했다.


"따라 하세요"

"개꿈이다"


스님의 말에 나는 웃음이 빵 터졌고 시원한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느꼈다. 의사는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아니며 아들을 통해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욕망은 욕망일 뿐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실현시켜 주지 못했다고 해서 죄책감으로 자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스님의 인상적인 솔루션을 깊이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딸의 꿈을 개꿈이라고 치부, 억압, 부정해 버리고 웃어넘기려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딸은 또 '독뱀 생각 나'하면서 울상이 되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화시켜 보려 했다.

"뱀은 아주 길잖아, 꿈에 뱀이 나오는 것은 키 크려고 하는 거래. 의사 선생님이 그랬어."


지어낸 말이었지만 딸은 뱀이 실제로 '길다'라는 사실과 '의사의 말'이라는 권위를  믿었다. 그리고 한동안 키가 큰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 웃으며 놀다가 갑자기 또 독뱀 생각이 난다면 울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독뱀의 이미지를 바꿔 승화해 보기로 했다. 귀여운 독뱀 캐릭터를 찾아서 보여주며 아기 독뱀은 이렇게 생겼다고 그려 주었다.

그리고 꾸덕꾸덕한 질감의 유화물감으로 며칠 동안 꼼꼼히 같이 칠해 보았다. 아이는 자기가 칠한 독뱀이 귀엽다며 방에 걸어 달라고 했다.

그렇게 '독뱀'이 생각날 때마다 독뱀을 함께 그려댔다. 그렇게 아기 독뱀들이 모였고 딸의 방에 전시되었다. 딸은 독뱀 생각이 난다고 해도 예전처럼 울지는 않았다. 대신 아기 독뱀을 떠올리며 다시 웃곤 잊어버렸다.


승화시 대면하기는 성공이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이 독뱀을 그려나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딸과 함께 직면한 귀여운 독뱀들


그리고 기도했다. 딸이 앞으로도 이렇게 자아를 공격당하는 불편하고 두려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성숙한 방어기제로 쳐 나갈 수 있게 되길... 그리고 나는 딸에게 그런 힘이 생길 수 있도록 옆에서 든든히 지지하고 묵묵히 응원해 줄 것이다.



P. S.  

2주 만에 집에 온 남편에게 딸의 독뱀 악몽과 극복과정에 대해 말했다. 남편은 단박에 깜짝 놀라며 말했다.

"뱀 꿈? 로또 샀어? 안 샀어? 즉석복권이라도 샀어야지! " 남편은 당장 당첨금이라도 잃은 것처럼 못내 아쉬워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대체 헬륨 풍선을 왜 사는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