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하기까지
제주 여행은 퇴사의 기폭제가 된 모양이다. 오랫동안 앓는 이를 가진 심정으로 고민했으나 제주의 푸른 바다를 보자 많은 것이 명료해졌다.
월정리 해수욕장에서 서핑을 가르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는 서울에 위치한 대기업에서 수년간 일하다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제주로 이주했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아홉 살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고 둘은 자식 없이 강아지와 사는 중이었다. 그를 떠올리자 떠날 곳이 어디든 응당 함께할 사람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네이버 클라우드에서 5년 전 찍은 것이라며 보여준 사진에는 과거 만났던 남자의 뺨을 깨물며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내가 있다. 개중에는 터키 휴양지의 바다 위 정박한 작은 요트 위 샴페인을 마시는 사진도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집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꼭 붙어있는 서로의 모습이다. 그를 사랑했나? 그랬던 것 같다.
최근 바람 느끼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고 있다. 자전거를 대여해 한강공원까지 내달린다. 반포 아파트를 오른쪽에 끼고 돌아가는 길목에는 언제나 꽃이 흐드러져 있다. 낮게 자란 수풀이 자전거를 탄 나의 무릎과 발을 스치면 때로 이슬이 묻는다. 우연히 자연과 마주할 때면 마음이 수채화로 물든 듯하다. 무슨 일이든 간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꿈을 꾸기도 한다. 좁다란 길 따라 열심히 페달 굴리면 미끄럼틀 같은 터널을 통과해 한강에 도착한다. 운이 좋으면 분홍색으로 물든 석양을 볼 수 있는데 이 장면으로 하여금 나는 영원히 서울을 싫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할 정도다. 문득 이 순간을 함께할 사람이 누구라면 좋을지 묻는다. 여러 얼굴이 스치지만 한 사람도 고르지 못한다.
동료에게 퇴사 의사를 밝혔다. 놀라는 사람이 있었고 무덤덤한 사람이 있었다. 그간 보여줬던 놀라운 재능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동료들 역시 퇴사할 생각이었다며 입을 열었다. 그들에겐 저마다 빛나는 계획이 있었다. 도시 생활에 피로를 느끼던 한 명은 농업전문학교에 입학해 결국 농부로 살 것이라 했다. 눈부신 바다와 산을 앞에 둔 아파트 한 채를 가진 그녀에게 걸맞은 꿈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마음이 넉넉하지 못할 때 수일 쉬었다 올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며칠 전 다녀온 제주든, 강릉이든, 바다가 있었으면 좋겠다. 책상에 놓인 많은 물품을 매일 조금씩 옮겨야 한다. 귀찮은 일을 몇 번 정도 반복했을 때쯤 완전히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