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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별 Mar 07. 2022

베를린이 그리워

베억하인부터 싸구려 호스텔까지

두 번째 퇴사를 결심하곤 마음이 한결 가볍다. 독일에서 유리로 조각하는 친한 작가 분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내게 슈테델슐레라는 학교를 추천해 줬다. 예술에 대한 일념으로 모여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학교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든다. 



학교는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해 있지만 몇 년 전 베를린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도 입장 기준을 알 수 없다 테크노 클럽 베억하인Berghain   있다. 오래된 발전소를 개조했다는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들어갈 수 있기를 고대하는 중이었다. 내 앞에 서 있던 덴마크 출신의 동성 연인과 친해져 " 내가  동양 여성  가장 예뻐"라는 칭찬을 들고 기분이 좋아진 참이었다. 둘 중 키 작은 남자가 "알고 보니 이성애자였어?" 하며 제 남자 친구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출입문 앞에는 덩치 좋은 보안관  명이  있었다. 그들이 " 나는 들여보내 주지 않냐" 항의하는  남자의 멱살을 잡고 내팽개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와 함께 끊임없이 떠들었던 덴마크의 동성 연인도 출입 불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죽어 돌아갔다.  차례였다긴장했음을  내지 않기 위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여 들어가도 좋다는 신호를 줬다. 친구와 나는 몇 발자국 걷다 마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 클럽은 검은 옷에 후한 점수를 준다고 한다. 그때 나는 칠흑 같은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올랐다. 점잔 빼는 들짐승이 모여있는 듯한 서울의 클럽과 달리 춤추는 데 여념 없는 사람들이 모여 밤을 즐기는 중이었다. 다른 층은 손으로 허공을 만지며 걸어야 할 정도로 사방이 어둠이었다. 스모그 머신의 안개가 걷히자 상의를 벗은 채 하네스에 연결한 가죽 바지를 입은 남성 여럿이 보였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다 그들 근육에 압사할 듯해 멀찍이 서 난생처음 보는 광경을 감상했다. 내가 낄 곳이 아니었다. 발전소 기둥이 앙상한 뼈대처럼 남아있는 공간에는 낡은 소파가 있었다. 친구와 파묻듯 누워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물었다. 베억하인을 떠나기 전 요의를 해결해야 했다. 남녀 구별 없는 화장실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은 총 서너 칸이었으나 그중 한 개의 문만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음악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던 끈적한 신음소리와 사람의 몸이 칸막이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푸른 잔디 위 누군가의 기타 연주를 듣는 사람, 노천카페에서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 지하철에 앉아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동성 연인, 억압적인 아버지와 같이 살며 신경증을 앓던 여자가 결국 미치광이 된 영상 작품이 있던 어느 갤러리, 베를린에서 본 모든 것이 그립다. 지금에야 무리해서라도 괜찮은 호텔에 값을 치르지만 그때는 좋은 잠에 미련이 없을 때였다. 젊은 배낭여행객이 물품보관소처럼 예약하는 호스텔에서 이틀 머무르며 도시를 즐겼다. 하루는 아침까지 술 마시느라 돌아오지 못했지만 하루는 들어가 밀린 잠을 보충해야 했다. 싸구려 목재로 만든 이층 침대 아래에서 잠을 청하는 내 위에 젊은 연인이 한 침대를 나눠 쓰고 있었다. 새벽 내내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던 그들의 대화 내용 중 "걱정하지 마. 저 동양 여자애는 잠들었어"하는 말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미간을 한껏 좁히며 내적 갈등 중이었다. "제발 닥쳐!"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는 것과 곱게 잠드는 것 두 가지 중 무엇을 선택할지였다.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동이 트자마자 가방을 챙겨 떠났다. 베를린 찾은 젊은 연인의 뜨거운 순간을 함께한 것이라 위로했다.  



베를린. 베를린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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