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억하인부터 싸구려 호스텔까지
두 번째 퇴사를 결심하곤 마음이 한결 가볍다. 독일에서 유리로 조각하는 친한 작가 분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내게 슈테델슐레라는 학교를 추천해 줬다. 예술에 대한 일념으로 모여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학교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든다.
학교는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해 있지만 몇 년 전 베를린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도 입장 기준을 알 수 없다는 테크노 클럽 베억하인Berghain에 간 적 있다. 오래된 발전소를 개조했다는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들어갈 수 있기를 고대하는 중이었다. 내 앞에 서 있던 덴마크 출신의 동성 연인과 친해져 "넌 내가 본 동양 여성 중 가장 예뻐"라는 칭찬을 들고 기분이 좋아진 참이었다. 둘 중 키 작은 남자가 "알고 보니 이성애자였어?" 하며 제 남자 친구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출입문 앞에는 덩치 좋은 보안관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이 "왜 나는 들여보내 주지 않냐"며 항의하는 한 남자의 멱살을 잡고 내팽개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와 함께 끊임없이 떠들었던 덴마크의 동성 연인도 출입 불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풀 죽어 돌아갔다. 내 차례였다. 긴장했음을 티 내지 않기 위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여 들어가도 좋다는 신호를 줬다. 친구와 나는 몇 발자국 걷다 마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 클럽은 검은 옷에 후한 점수를 준다고 한다. 그때 나는 칠흑 같은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올랐다. 점잔 빼는 들짐승이 모여있는 듯한 서울의 클럽과 달리 춤추는 데 여념 없는 사람들이 모여 밤을 즐기는 중이었다. 다른 층은 손으로 허공을 만지며 걸어야 할 정도로 사방이 어둠이었다. 스모그 머신의 안개가 걷히자 상의를 벗은 채 하네스에 연결한 가죽 바지를 입은 남성 여럿이 보였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다 그들 근육에 압사할 듯해 멀찍이 서 난생처음 보는 광경을 감상했다. 내가 낄 곳이 아니었다. 발전소 기둥이 앙상한 뼈대처럼 남아있는 공간에는 낡은 소파가 있었다. 친구와 파묻듯 누워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물었다. 베억하인을 떠나기 전 요의를 해결해야 했다. 남녀 구별 없는 화장실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은 총 서너 칸이었으나 그중 한 개의 문만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음악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던 끈적한 신음소리와 사람의 몸이 칸막이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푸른 잔디 위 누군가의 기타 연주를 듣는 사람, 노천카페에서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 지하철에 앉아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동성 연인, 억압적인 아버지와 같이 살며 신경증을 앓던 여자가 결국 미치광이 된 영상 작품이 있던 어느 갤러리, 베를린에서 본 모든 것이 그립다. 지금에야 무리해서라도 괜찮은 호텔에 값을 치르지만 그때는 좋은 잠에 미련이 없을 때였다. 젊은 배낭여행객이 물품보관소처럼 예약하는 호스텔에서 이틀 머무르며 도시를 즐겼다. 하루는 아침까지 술 마시느라 돌아오지 못했지만 하루는 들어가 밀린 잠을 보충해야 했다. 싸구려 목재로 만든 이층 침대 아래에서 잠을 청하는 내 위에 젊은 연인이 한 침대를 나눠 쓰고 있었다. 새벽 내내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던 그들의 대화 내용 중 "걱정하지 마. 저 동양 여자애는 잠들었어"하는 말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미간을 한껏 좁히며 내적 갈등 중이었다. "제발 닥쳐!"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는 것과 곱게 잠드는 것 두 가지 중 무엇을 선택할지였다.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동이 트자마자 가방을 챙겨 떠났다. 베를린 찾은 젊은 연인의 뜨거운 순간을 함께한 것이라 위로했다.
베를린. 베를린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