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은별 Apr 19. 2022

유년시절 장래희망 리스트

또 퇴사하고 살펴보는

퇴사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직장에 출근할 때마다 머리를  채웠던 어두운 생각은 사라지고 앞날의 기대로 가득하다.  날씨를 만끽할 때면  없이 시름시름 앓던 꽃이 마침내 만개하듯 기분이 좋다. 50년의 역사와 업계의 긍정적 평판을 지닌 회사를 퇴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쓰는 직업을 원하는 구직자가 현업 종사 중이던 내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물었던 일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간절함과 달리 나는 기사 쓰는 일에 심드렁했고 기획 회의를 하며 열정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선배들 사이 우두커니였다. 깎은 나무를 땅에 단단히  박듯  가지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개월을 버텼다. 하지만 몸을 씻고 단장해야  시간에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깨달았다.



이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날의 꿈을 하나씩 짚어보기 시작했다. 늘 모났던 내가 평범하게 자라길 바랐던 어머니는 타의 모범이 되는 경찰이나 선생님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타고난 반골이었던 나는 가정통신문 장래희망에 대통령을 써냈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게 분명했지만 그 만한 포부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드러내는 것만으로 뿌듯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이 되자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패션 센스는 남달랐지만 두꺼운 뿔테 안경을 썼던 유년의 외모로는 승산이 없었다. 연예인만큼 많은 사람의 주목받는 일로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코미디언이 되기로 했다. 그때 쓴 일기장 첫 페이지에는 많은 사람을 웃게 하고 싶다 적혀 있는데 사실 거창한 이유보다 그냥 사랑받고 싶었다.



사랑을 갈구하는 몸짓은 왜 우스꽝스럽고 서글픈 걸까.



사랑받기 위해 애쓰면 애쓸수록 외려 외로워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입을 닫고 귀를 열자는 생각으로 중학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몰려다녔지만 외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 대신 책에 기대기로 했다. 수업 시간에도 책상 밑으로 야마다 에이미나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숨겨 읽곤 했는데 그들의 글이 숨 막히게 좋았다. 야마다 에이미는 도쿄의 클럽에서 서빙을 하거나 모델 활동을 하며 경험했던 일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집필했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솔직하고 대담한 성애 묘사가 일품이었다. 나는 그녀가 쓴 이야기 중 열대기후성 국가로 휴양을 간 여성 화자가 현지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연애담을 구석구석 기억한다. 많은 문학청년의 성경 같은 작품을 쓴 다자이 오사무야 덧붙일 말이 있을까? 대다수의 선생님이 무척 불쾌해하며 책 숨겨 읽는 나를 혼냈지만 내가 제일 싫어했던 과목인 수학 선생님만큼은 모른 체해주셨다. 언젠가 그 선생님을 번화가에서 만난 적 있는데 되바라진 제자를 너무나 반가워하며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겠다고 하셨다.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다. 이렇게 점점이 찍힌 기억들이 기다란 선 되어 나를 살게 하는 것 같다.



그때 읽었던 소설의 영향일까. 백일장과 공모전에 참가하는 족족 큰 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사진 찍혀 지역 신문 1면을 장식한 나를 알아본 선생님들이 관심 가져주는 것이 달콤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단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 예쁘고 글도 잘 쓰잖아" 하는 농담에 다정하게 "당신이 무엇이 되어도 좋아"라며 사랑을 하고 받는 것의 진짜 가치를 알려줬던 애인이 생각난다. 예술고등학교를 다녔던 시절에는 꿈이 보다 명확해졌다. 섹스 칼럼으로 이름깨나 알린 잡지 <코스모폴리탄>의 편집장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야구 방망이로 창문을 깨부숴가며 후배들의 기강 잡는 선배가 득시글하던 그곳에서 내 꿈을 이루기란 요원해 보였다. 자퇴를 하고 또 다른 문제아였던 고등학교 선배와 친해져 고향과 서울을 오가며 놀았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길쭉해 릭 오웬스 하이탑이 잘 어울렸던 그와 함께 당시 가장 화려한 사람이 즐겨 찾던 신사동에서 미성년자 신분으로 칵테일을 마시고 물 담배를 피웠다. 허영을 좋아했던 선배 덕분에 일찍이 청담동과 압구정의 분위기를 파악했다. 가진 돈은 없어도 그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애들이 우리여야 했다.



이후 술 마시며 실컷 방황하고 여행 다니다 마침내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천방지축이나 다름없는 내 삶을 용인할 단 하나의 직업이 바로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대학교에 들어가 합평을 하고 문학 작품을 읽으며 불현듯 어린 날의 꿈을 돌아보게 되었다. 종이 속에 파묻힐 듯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글은 내가 아닌 존경하는 작가들이 써야 했다. 언젠가 본 사주에서 나의 단점은 지구력이 떨어지는 것이라면 장점은 기동력이 좋은 것이라 했다. 교양 수업을 들으며 관심이 생겼던 현대 미술계에 겁도 없이 발을 들였다. 그때 일했던 갤러리의 관장님은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처세술과 성숙함이 있는 나의 가능성을 높게 사 함께 일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우연히 미술과 인연을 맺었다.



인턴 큐레이터로 일하며 전시 개최를 돕는 것이 좋았다. 본관을 런던에 두고 있던 갤러리의 서울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나 한 명이었다. 아끼던 비싼 옷에 페인트를 묻혀 가며 허둥지둥 울상이었다가도 오프닝 파티를 개최하고 샴페인을 딸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짜릿함을 느꼈다. 이 감각에 중독된 것을 눈치챈 도시재생사업의 총괄 감독님께서 전시 기획자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주셨다. 졸업을 앞둔 학부생이었지만 몸을 갈아 넣어서라도 매듭지을 자신이 있었기에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좋아하는 일이라면 밤낮과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성미가 있다. 작은 도시지만 정치인과 권력을 탐하는 자들로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던지 전시 하나를 개최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마침내 정장 차려입은 지역구 인사가 레드 카펫을 밟고 입장하는 개막식이 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전시를 기획했음이 지역 방송국의 전광판을 통해 곳곳에 알려졌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지만 좋아하는 일이 아니고서는 성공할 수도 없다. 안 그래도 긴 글이 더욱 길어질 것 같아 성공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돌고 돌아 다시 미술계에 입성하기로 했다. 문학을 전공하고 전시에 기웃댄 것이 전부지만 다시 한번 성역에 발 들이밀려고 한다. 전시를 기획하는 일은 아니지만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만족할 일이리라 기대하고 있다. 이단아를 자처하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타고난 본때 정신이 있다. 그들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쳐놓은 이 업계에서 비전공자이자 경력도 별로 없는 나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때맞춰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고 나자 음흉한 미소를 짓게 된다. 내게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할 때처럼 자신감으로 가득한 일상을 보냈으면 한다. 상상과 다른 일이었다고 할지언정 예전처럼 쓰기 싫은 글을 억지로 쓰느라 괴로운 날보다는 행복할 것이다. 지난 글에는 이렇게 썼다.



마음과 몸이 말하는 것을 모른 체하고 사는 사람의 고통이 뼈 깊다.



언제나 관심의 중앙에 있어야 하는 나의 유아적 성향을 더는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곧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이 온다.

작가의 이전글 비 새는 구멍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