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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별 Jan 04. 2023

1월 1일

월미도에서 

올해 1월 1일엔 월미도에 갔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아래와 같이 남겼다.



신년이면 괜히 수다스럽다. 지난해를 회고하며 반성할 일과 맞닥뜨려야 하고, 은근한 기대와 비장함으로 올해를 상상하며 부산하기 때문일 테다. 1월 1일. 월미도에 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 소리를 들었다. 서해 바람은 매섭도록 추워 공들여 만진 머리카락을 다 망쳤다. 디스코 팡팡에서 엉덩이를 수차례 내리찧으며 즐거운 젊은이들을 지켜보았다. 그들 기운을 받아서인지 나도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노래에 맞춰 발재간을 부렸다. 오뎅으로 몸 녹이고 돌아오던 차에 하늘을 붉게 물들인 낙조를 보며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초현실적 풍경을 마주한 인간은 도리 없이 소원을 빌게 된다. 무엇을 빌었든 연말이 되면 필시 까먹을 것이다. 그래서 남긴다. 이 넓고 큰 세상이 좁고 작아 보일 때까지. 나아가게 하소서. 



월미도에 함께 간 사람에게 위 글을 읽었다. 그는 감탄하며 내가 무슨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 괴로웠던 과거의 내게서 벗어나려 단순해지는 연습을 해왔다. 머리가 복잡할 때면 운동을 했고 가슴 사이 땀방울이 흐르고 호흡이 가빠지면 전에 없이 개운했다.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졌다. 우울과 비관보다 단순과 낙관을 중시하는 사람 곁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외로움과 미친 듯 싸우고 있다는 것을. 나의 아픔은 나의 것이지만 인류의 고독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나의 내면에 관심을 기울여 준 그에게 고마웠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다. 만지면 닳을까 해사하게 빛나는 여인의 머리칼을 조심히 쓸어내리듯. 지나친 묘사와 수식으로 이입을 할 수 없어선 안된다. 여러 번 다듬고 매만져 얼핏 건조해 보이는 문장을 곱씹을 때마다 여운이 남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글을 읽은 게 언제였던가. 한창 박연준 시인의 에세이에 빠져있던 때인 것 같다. 그가 힘주어 쓴 글을 잊을까 두려워 머리맡에 책을 두고 잠들었다.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인도 서부 지역의 하나인 케랄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공들여 쓴 작가의 묘사가 돋보인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는 페이지만 들여다보고 또 봐 낡았다. 마음에 드는 단어에 동그라미 그리며 밑줄 친 흑심 연필의 흔적이 자욱하다. 다른 이야기지만 노희경 작가가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고 남긴 짧은 서평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조금은 날긋하게 닳은 여자에게 순수는 반갑지 않다' 이때 본 '날긋하다'는 표현이 인상 깊어 검색해 봤지만 표준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번 펼쳐 손때 묻고 나달해진 종이를 표현하는 것 중 '날긋하다' 만큼 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내가 방금 쓴 '나달하다'조차 표준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재미있다.



아룬다티 로이로 돌아오자. 그는 이런 문장을 썼다. "에스타가 수도꼭지를 틀자 물이 소리 내며 플라스틱 양동이로 떨어졌다. 윤이 나게 닦인 욕실에서 그가 옷을 벗었다. 흠뻑 젖은 청바지를 벗었다. 뻣뻣한, 짙은 푸른색의, 벗기 힘든. 짓이긴 딸기 빛깔 티셔츠를 머리 위로 잡아당기느라 매끈하고 늘씬하면서도 근육질인 팔을 위에서 교차시켰다" 글만 읽고도 선명히 느껴지는 색채 묘사와 색뿐만 아닌 질감을 이토록 세밀히 묘사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쓴다. "그가 젖은 티셔츠를 벗을 때 배가 안으로 들어가고 흉곽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꿀빛의 젖은 피부가 드러나는 것을 라헬은 지켜보았다. (중략) 옅은 꿀빛 옷을 입은 암갈색의 남자. 커피색이 섞인 초콜릿. 튀어나온 광대뼈와 쫓기는 듯한 눈. 눈 속에 바다의 비밀을 품고. 하얀 타일이 깔린 욕실에 선 어부" 이쯤 되면 번역가의 미감에 찬사를 보내야 할 지경이다. 꿀빛과 암갈색. 번역가는 분명히 세상에 존재하는 색과 촉감을 기민하게 감각하고 이에 자신의 언어를 더하는 이일 테다. 



정부 정책으로 나이가 줄었다. 원래대로라면 서른이지만 다시 20대가 된 셈이다. 원래대로라면 서른을 맞아 어른답게 말할 생각이었다. 지난날엔 나 자신의 슬픔과 불운에 몰입했지만 이제 그럴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다고. 



시간을 벌었으니 앞으로도 조금은 천방지축으로 살아도 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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