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 Jun 28. 2024

우수 King


 얼마 전 회사에서 새로운 승무팀 편성 발표가 났다.

우리 회사는 승무원들이 팀을 이뤄 팀 단위로 비행을 간다. 우리는 이걸 ‘라인팀’이라고 부른다.


 팀 구성은 라인팀 팀장이 있고, 그 밑으로 약 10-11명가량의 승무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번 팀이 되면 1년 동안 거의 80% 정도의 비율로 팀 비행을 하게 되는데, 팀장의 성향에 따라 누군가에겐 1년 동안 천국 같은 팀에서 지내는가 하면 반면 천국의 팀에 속하지 못한 다른 이들은 안타깝게도 지옥 같은 팀에서 다음 해에 새로운 팀 배정이 나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 아주 기이한 현상이 펼쳐진다. 대부분의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작년의 나는 아주 운 좋게도 좋은 라인팀 팀장과 팀원들을 만났다. 내 기준에서 좋은 팀장이란, 단체 카톡방을 운영하지 않는 팀장이다. 좋은 팀원이란, 내가 눈빛만 보내도 내가 뭘 지시하는지 그래서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요즘 표현으로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이 되는 팀원들을 말한다. 누가 이런 사람들을 싫어하랴!


 유독 이번팀에 한 번도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비행하며 친해지고 예뻐하고 아끼는 후배승무원들이 많았다.

내가 예뻐하는 한다는 표현이 웃기긴 하지만 이에 딱 걸맞은 표현 외엔 달리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성격이 성격인지라 기본적인 업무도 숙지 못하고 일은 뒷전으로 미루며 내게 호감을 사려고 아양 떠는 사람, 선배에겐 무척 잘하면서 뒤에서 몰래 후배들한테 못되게 구는 사람. 그냥 한마디로 인성이 별로인 사람들에겐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12년 동안 사람 상대하는 일을 하다 보니 딱 보면 척 알아보는 묘한 능력이 생겼달까. 나도 이렇게 요즘 소위 말하는 ‘젊은 꼰대’인 것 같다. 불편하지만 인정.




 나는 작년에 아주 큰 일을 겪었다.

멀쩡하게 건강하던 우리 엄마가 갑자기 아프시게 됐다. 병원 입원 치료가 불가피하던 상황이었고,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내 직장일도 병행하며 엄마가 벌여놓은 일을 혼자서 처리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 3번이나 기절해 응급실에 실려가보기도 했을 정도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생지옥 같은 날들을 보냈다.


 거의 매일을 눈물범벅이 되어 출근했고, 비행 중에도 의자에 혼자 앉아 질질 짜다가 컴플레인도 받는가 하면 탑승권을 검사하다가 엄마와 연배도 비슷하고 성함도 같은 손님이 딸이랑 함께 여행 가는 모습을 보며 갑자기 울기도 했고, 감정노동자인 나는 그 시기에 감정상태가 정상적으로 컨트롤되지 않을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프로페셔널하지 못했지.




‘얘 잘 나가다가 갑자기 왜 이래?’가 발단이 되어 우연찮게 내 개인사정을 알게 된 회사의 객실팀 팀장님, 그룹장님들, 편조 스케줄러, 라인팀 팀장님 등 정말 많은 분들이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많이 주셨었다. 받은 도움 중에 가장 손꼽아 감사한 점은, 엄마가 퇴원하신 후에 충분히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넉넉한 휴직 기간을 주셔서 집에서 온전히 엄마만 돌보며 지내실 수 있게 해 주신 것.




 1년의 팀 운영 기간 중 거의 삼분의 일 이상을 휴직으로 보내 이렇다 할 성과를 이룬 것이 없었다. 다음 해, 그러니까 올해 진급 대상자였던 나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와서 영어 성적을 내기도 늦었다.


 성과 평가는 라인팀의 팀장의 영향이 컸는데, 보통 1년에 상반기, 하반기를 나눠 자아성찰식 셀프로 자신이 기간 동안 무얼 했는지 적어서 제출하면 그 자료를 바탕으로 평가를 주는 식이다.




 복직하고 나서 오랜만에 내가 속해있는 라인팀 팀장과 올 팀원으로 구성된 ‘완전체 팀 비행’이 나왔다. 목적지는 방콕.


 항상 해외 나가서도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비행 멤버에 가깝게 지내는 후배가 먼저 함께 다니자고 권유를 2-3번은 해야 겨우겨우 함께하는 그런… 개인플레이 성향이 짙은 나다. 프로 혼밥러! (후배가 권유해도 거절하는 이유는, 예의상 함께 다니자고 물어봤을 뿐인데 눈치 없이 같이 따라다닌 일부 사무장들의, 선배들의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거절하는 것이 슬프게도 습관화 됐다. 내가 남의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함.)




 방콕 비행은 자주 나오는 스케줄이 아니라서 승무원들 사이에선 인기 많고 아주 귀한 스케줄이다.


 방콕에서의 원래 나의 계획은 내가 무척 아끼는 후배승무원과 점심 식사하고 네일아트 받고 커피 한잔하고 마사지받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저녁 즈음 호텔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평소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해버렸다.


‘팀장님, 내일 계획 없으시면 저랑 하루 씨랑 셋이서 점심식사 같이 하실래요?’




 세상에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같이 밥 먹자고 제안했던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도 기억 안 날 만큼 지독하게 개인플레이 주의자인 내가 팀장에게 같이 밥 먹을 것을 제안한 것이다.


 사실 줄곧 식사를 한번 정돈해야겠다고 생각해 온 이유는 라인팀 팀장에게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왜 휴직을 해야 했는지 한 번도 직접적인 연락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함께 식사를 하며 그동안 직접 내입으로 전하지 못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됐다.


 다행히 팀장은 내 제안을 거절하긴커녕 오히려 반갑게 맞아줬다. 다른 승무원들에게도 함께 식사하고픈 사람은 같이 가도 괜찮다고 했으나 다들 이미 각자 정해온 개인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와 후배 그리고 팀장 셋이서 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오히려 잘된 일일 지도?




 다음날, 셋이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식당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팀장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식사가 끝나고 ‘커피 한잔 하는 게 어떠세요?’라는 팀장의 제안에 우리는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것 참 잘된 일이었다.

나의 본심을 조금 더 드러내자.


‘팀장님, 저 이번에 근무평가 제출해야 할 텐데 그동안 이렇다 할 실적이 없어서 좀 걱정이 되네요. 제가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무얼 어떻게 더 하면 좋을까요?’


 아주 노골적이었다.


‘사무장님,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셔도 돼요. 지금처럼 팀원들 잘 챙겨주시고 좋은 분위기를 팀 기간 마지막까지 유지해 주신다면 더는 바랄 게 없습니다. 후배들이 사무장님이랑 비행하러 올 적엔 확실히 표정이 밝은 채로 출근하는 게 눈에 보여요.’


 팀장의 그저 다 괜찮다는 말에도 의구심이 들었다.


‘아, 그래도 저는 사실 성과평과란에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작년에 잘한 일? 글쎄 생각해 봤는데요. 이런 걸 써낼 순 없지만, 제가 제일 잘한 거라… 음. 힘든 상황에서 자살생각 않고 잘 버텨낸 것.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 이게 제일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순간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구 하나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세명 모두의 눈동자엔 진하고도 깊은 슬픔이 서렸다.




 얼마 전, 팀 내에서 팀원들의 익명 투표를 통해 상반기 우수 승무원을 뽑는 ‘우수왕’ 선정이 있었다.



1. 대상

ㅇ 객실승무원으로서 평소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자
ㅇ 팀 공헌도가 높고 팀워크 정신이 뛰어나 타의 모범이 되는 자

2. 부상

ㅇ 사외비


아주 놀랍게도 내가 선정 됐다고 한다. (딱히 해준 것도 없는데 고마운 친구들…) 



 기분이 몹시 이상해졌다.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며칠 안 남은 팀 운영 기간을 앞두고 과분한 선물을 받은 게 아닐까 요 며칠간 순간순간 몇 번이고 생각에 잠긴다.


 솔직히 말해서 생각만 해도 갑자기 마음이 참 따뜻해지고 몽글몽글하고 뭐 그렇다.




 마지막으로 내가 브런치에 연재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회사 내에서 유일하게 혼자만 알고 있는 (가명) 하루 씨에게. (=작년 하반기 우수왕)


 나는 이번에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우수왕으로 너를 뽑았어. 팀장에게 아주 대차게 ‘저는 우리 똑순이 하루 씨에게 투표합니다!!!!‘라고.
항상 너와 함께하는 비행은 든든했고 즐거웠고 너만 있다면 나머지 멤버가 누구였든 상관없을 정도였지.(너는 알지? 여기엔 거짓이 조금 보태져 있다는 거ㅎㅎ)
내가 처음에 너를 좋아했던 이유는 선후배 관계를 떠나서 너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가끔은 너의 깊은 생각과 내면에 나보다 동생이지만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게 하는 모습도 한몫했지!
작년에 내가 겪은 나의 어둡고 슬픈 사연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너’였기에, 내 개인적인 고충을 가감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참으로 의지가 되는 사람이기도 했어.
그거 아니? 7-8년 전까지만 해도 비행에 종종 간식을 챙겨갔다가 어느 순간 마음상하는 일이 있어 챙기는 것을 그만두었어.
그런데, 그랬던 마음을 접고 몇 년 만에 누군가와 갤리에서 각 잡고 같이 먹을 간식을 챙겨갔던 건 하루 너였기 때문이란다.
얼마 전, 부산 호텔에서 네가 보낸 카톡을 내가 빨리 확인하지 않아서 급한 대로 로비에 맡겨두고 간 너의 선물이랑 쪽지를 받았지.
참나, 우리 비행 몇 번 더 남았는데 진짜 그날이 마지막이었던 것처럼 써놔서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 혼자 눈물이 또 그렁그렁해져서 참느라 혼났잖아. 다시 보니 마지막인듯한 저런 표현을 왜 썼는지 지금은 이해가 돼.
본사에 볼일이 있어 가게 되거든 연락할게.
새롭게 적응해야 할 오피스 근무에 이미 걱정근심이 가득하겠지.
하지만 너는 내가 본 그 누구보다 기억력 좋고, 일머리 하난 끝내주게 야무지고, 옳고 그름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멋진 사람이니까 누구보다 잘 해낼 거야. 그곳에서도 분명 너의 진가를 금방 인정받고 예쁨 받는 막냉이가 될 거라 확신한다!
멋진 내 친구, 정말로 고마웠어. 엄지 손가락 척 치켜들고 따봉 날리면서 ‘울 회사 여자 사무장님 중에서 내 최애! 1등은 Sunny 삼이야!’ 했던 모습은 잊지 못할 것 같네.
월 비행 할 때 꼭 내 비행 스케줄에 신청할 거라던 약속 꼭 지켜줘.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자칭 ‘애기’를 기다리고 있을게-!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 여자 혼자 떠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