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갓혁 Feb 13. 2023

꽃, 자전거, 제민천, 눈, 사장

나홀로 공주

12/17 (공주 EP3 기록)


소쿠리 매거진에 그대로 심취한 나머지 공주 로컬 감성에 몰매 맞게 맛 들인 난 그저 그런 무의식 감성으로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할 것이라 예상했던 지하 1층은 생각보다 밝았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조도 -30프로 분위기와 함께 반쯤 허물어진 콘크리트 인테리어가 제 분위기에 맞추듯이 나를 흥겹게 반겨주었고 편하게 감상하기로 한 나의 마인드는 여전했다. 여기서 덧붙이면 더 이상의 감성과 감동, 그리고 기분 전환을 붙이기도 뭐 하다. 어차피 관람은 온전히 내 스스로 맡겨야 하는 부분이니까 말이야.





[, 자전거, 제민천, , 사장님]


'꽃'이라는 매개체와 함께 진행되었던 전시회. 어떤 울림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저 내가 무색할 정도로 감성이 있을지 없을지 스스로 판단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난 감성지수가 예전보다 -20 하락했다는 것 아니더냐.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꽃'에 대해 궁금해하면 당장 옆에 있는 테이블에서 안내 리플릿을 보라는 문구 사항을 보고 말았다.


김혜정 개인전_Vis a vis fleur


김혜정 개인전_Vis a vis fleur


'꽃에 대하여'


당신들은 얼마나 잘 인지하고 있는가. 사계절 꽃이란 의미를 인생에 비유하자면 뿌리에 물이 얼마나 담겨있냐에 따른 기본적인 접근보다 우리의 인생 색깔론이라는 철학적인 관점으로 전하고 싶다. 천천히 발을 내딛고 곳곳에 있는 꽃을 살펴보는 동안 잠시나마 잊고 있던 전시회의 의미를 나에게 부여하고자 한다.


전시회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문화 힐링 요소가 아니었던 것, 더 나아가자면 사람들이 이 의미를 읽고 현실에서 어떠한 변화를 주고받을 것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손의 건더기가 꽃에 닿을 때 비로소 사유보다 소유에 지극히 와닿는 것이고, 이 작품의 의도를 분석한 결과 사람은 심리적으로 종이 한 장처럼 꽃을 보고, 만지고, 식용으로 만들고 나서야 자신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반어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꽃을 하나의 인격체로 부여한다면, 어쩌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일회용적인 자신의 피사체로 투영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겠지. 사람마다 고유의 특성을 부여받고 있는데 사람들은 워낙 이기적이라 그저 가지고 싶다는 소유욕만 득실하거든.


[소유욕은 금물, 인간 7대 죄악의 일부임은 분명하거든.]


[리플릿 내용을 읽고 함축적인 분석을 통해 얻어낸 나만의 사유]


집에 있는 들장미와 꽃들, 어머님이 손수 제작하신 인공적인 화분일지라도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소유욕은 더 깊어진다. 그저 편하게 보고 싶은 장소를 더 추구했던 현대인들의 이면적인 모습은 배제한 채 꽃 그 한 송이, 여러 송이 그 자체만으로 이 자리에 고이 머문다면 이 또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부여받을지도 모르겠다. 편하게 보자고 했던 이 전시에 사로잡혀 한발 두발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꽤 고군분투했다. 인생은 어쩌면 꽃처럼 아름다울지도, 허나 죄악이 가득한 소유욕에 사로잡힌 순간 그저 피해자에 불과함은 용서 못 하지.


바깥으로 이동한다.


눈이 아직도 그치지 않는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내 발걸음은 여전히 사분하게 이동하면서 그렇게 멈췄던 곳은 나지막이 내 시야를 훤하게 트게 하였다.


서서히 길들이 하나씩 뚫리기 시작했다. 눈 덮인 고가도로와 제민천 인근 골목 곳곳에 카페 사장님들이 눈을 쓸기 시작했다.


질퍽질퍽한 곳곳을 뚫기 위해 서슴지 않게 무겁고 짙은 어두운색의 패딩을 입고 마대자루와 빗자루로 눈을 제민천 구석으로 쓸고 계셨다. 다들 하늘을 응시했다. 눈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지만 난 그 맑은 골목을 걷기에 충분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이고 더러운 바지 다 버렸네!"


순간 내 입에서 무심결에 나온 막말이었지만 이마저도 좋았다. 그 반응을 지켜본 사장님들은 그저 내심 없이 다시 눈을 쓸기 시작하셨다. 여전하다. 서울에서 미처 구경하지 못했던 눈을 여기서, 바로 옆 제민천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니 이 또한 하나의 축복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왼쪽 : 공주 / 오른쪽 : 서울 망원동



둘 다 내가 무심결에 찍었던 사진들. 어떤 인쇄업으로 보이는 낮은 건물 앞에 하늘색 자전거가 떡하니 서 있었다. 소소하게 읽고 싶다면 망원동 테라미수가 먹고 싶어서 따릉이 끌고 가다가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본 순간이었을까. 데자뷰였다. 평소에 망원동 하면 떠올랐던 그 느낌을 공주에서도 물씬 느낄 수 있었다니..



밤이 되자 제민천 일대가 갑작스러운 폭설에 휘말렸다.


평소 깨끗하고 조용한 하천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는데 이날은 내가 좀 컨디션도 저조했던 터라 술 한잔하기 좋은 곳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하며


-왜 하천 근처에 사장님들이 계셨는지 의아했다. 6명 중 2명에게 이 질문을 던지니 그저 눈을 쓸어야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허무맹랑한 소리하지 말라며 나를 나무랬다.


-사람들이 오는 기준에 앞마당에 눈이 가득하면 아무리 인테리어가 예뻐도 올 것이냐는 질문에 나 또한 할말이 없어서 그저 쓸쓸하게 제민천 일대를 지나갔다.


-제민천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아기자기한 벽화길이 즐비했다 누가 그렸을지 모르는 곳을 탐방했다. 조용하게 귓가에 맴도는 아늑한 소리는 여전했다. 누가 나를 부르는 것처럼. 코방귀 흥얼거리며 깊게 파지는 폭설의 흔적 사이로 난 조용하게 걷기 시작했지.


-질퍽하기 짝이 없는 봉황로 곳곳에 학생들이 떡볶이를 먹기 위해 어느 분식점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저 먹을거리가 없어 보였던 내 착각은 금물이었다. 나도 그들 뒤를 미행했다.


-편하게 걷고 싶은 곳을 탐방하다가 결국 맞이한 곳은 눈이 쌓인 제민천 일대였다. 한 바퀴 돌기 시작했지만 이윽고 폭설이 내렸다. 바지는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만 솔직히 쉽지 않았지.


-크게 보면 제민천이 있기에 원도심이 더 아름답게 보이더라. 왜 이리 없을듯한 독립서점 5-6개 남짓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경솔한 생각은 잠시 앙금처럼 묵혀두기로 했다.


공주를 탐방하고 어쩌다 기록

작가의 이전글 서천상회, 느리게 책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