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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May 10. 2023

낭만적 허무주의

넌 소시오패스가 되지마라

실상은 그렇다.

어제 오늘 내일 할 것 없이 100프로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몇 프로가 될까? 중요한 점은 이해가 와전되어 오해로 극을 치루면 당사자끼리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해당 사건은 큰 파국으로 이어진다.


이 글을 작성하는 이유는 2년 전부터 타인들과 이야기를 해보았던 경황과 과정을 그윽하고 주관적이되 최대한 객관적으로 작성하고자 하는 나만의 일기이다. 그동안 참다가 이렇게 터져버리는 경우는 처음이기에 삭혀왔던 앙금을 산화시켜 버리겠다.


사실 난 타인들과 이야기를 할 때 생각보다 말이 앞선 경우가 많다. 선천적인 유전 결함일까 고민이 많았던 과거사를 끄집어내면 끝도 없다. 다만 부모님께 이러한 고민을 사실직고하니 그건 너의 문제가 아니라 요즈음 모든 젊은이들이 거의 다 그렇다고 하셨다. 부모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던 청개구리 심보인 나는 직접 유튜브 뉴스를 보면서 어느 정도 공감과 신뢰가 갔다. 내용인즉슨 밀레니얼세대부터 점차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점이 수면 위로 스멀스멀 대두된다는 게 큰 화제였다.


<밀레니얼 세대, 나, 너, 친구들. 모두 의사소통에서 오해가 생긴다. 이성보다 감성에 의존. 환경적인 영향이 대다수. 빨리 일처리 해야 하는 기성세대의 잔재물. 그로 인한 낭만적 허무주의 발생. 이를 바통터치받는 Z세대>


.


뉴스 내용을 요약하면 위와 같다. 조금 더 쉽게 이야기하면 환경적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그 배경에는 급격한 산업화 발달로 IT기술의 역효과 영향이 있었다.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 디지털 기기물은 선진 문물의 발전사에서 비롯되었다. 선진국가가 되기 위한 개발도상국이었던 지난날의 한국이 오직 IT기술의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그 과정이 곧 현재의 결과물이었다. 삼성과 LG. 이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기술 랜드마크가 더 있을까.


허나 세상이 아무리 편리해져도 결국 대화를 입으로 열까. 목구멍에서 비롯된 어조와 말투, 사람의 표정과 제스처에서 비롯된 비언어적 표현까지 현장에서 직접 사용하는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이를 이행할까.


생각해 보자고.

24시간 중에 자는 시간 제외하고 16시간 정도 잡는다. 일반적인 인사와 회의, 미팅, 점심시간 덕담, 영업 중 고객과의 대화, 야근 후 집에서 연인 혹은 부모님과 대화 등등 온전히 목구멍을 열고 대화를 한 적이 많이 있냐는 것이다.


이제 손이 익숙해져 타자기 하나로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MZ세대들이다. 정작 실질적인 입으로 타자로 작성한 글을 완벽히 소화하지 못하는 것도 그들이다. 방구석 여포처럼 정보 사회에 찌들어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은 SNS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 과시를 하며 나르시시즘을 느끼는 우리들인데 행복한 대한민국의 미래상이 그려질 수 있을까?


난 문제점 하나 더 지목하고자 한다.


<낭만적 허무주의>


이 말 굉장히 유식하고 좋은 말 같지만 사실 무섭고 어두운 문구이다. 삶이 힘들고 지치다 보니 사람 간의 대화가 점차 줄어들고 오롯이 편한 시스템에 최적화된 우리 세대는 손가락 몇 번 두들기니 멋진 말이 완성된다. 그런데 한 심리학 전문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이 힘들수록 자신을 위로하는 글에 빠지지 마라. 우울증이라면 병원에 가서 현실적인 치료를 받아라. 자신을 스스로 치료한답시고 자기 위로와 자기 자위, 자기만족 추구를 한다면 오히려 자존심과 자존감 확보보다 나르시시즘에 빠질 명분이 생긴다. 그리고 우리는 서서히 철학병에 걸려 중2병처럼 변질된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예술 기질이 있는 문학가들이 자신을 위로하는 일기와 글을 작성하는 데에 몰두하다 보니 스스로 일상의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를 정신적 자위라고 하지. 현실은 이상과 다르니 자신의 또 다른 제2의 인격 페르소나를 만들어 감정이입을 하려고 한다.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유토피아지. 온갖 아름다운 말과 생물체, 가시적, 비가시적, 비언어적 표현이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그 속에 낭만이 있다고 스스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해리성 인격장애자의 탄생의 서막이다. 이를 더 극단적으로 명칭 하자면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어쩌면 당신일 수도 있군요."


예술로 삶의 전환점을 찾고자 추구한 그들이지만 정작 잘못된 방향이 그들을 더 사로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런 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확실히 나다움을 추구하는 낭만 나르시시즘이 있는 반면 본인을 더 꾸미기 위해 은근히 상대방의 격을 깎아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알면 편한 우리들이지만 정작 그런 현실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세대들이라 더 안쓰럽고 딱할 뿐이다.


하지만!


 


.


대화를 할 때 제발 오해살만 한 말을 하지 말자. 특히 불필요한 관용어구나 수식어구 따위는 글에만 작성하고 이를 실제 대화에 적용하면 괜스레 불편한 분위기만 형성한다. 예술병이 여기서 비롯된다. 문제점이 많다. 글로만 작성하다 보니 실제로 말의 됨됨이와 대화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웅변 학원이 왜 있겠나 싶을 정도다. 이 정도면 우린 가식과 허망 사회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적어도 현실에서는 페르소나를 꺼내지 말고 그냥 순수하게 앞담을 해도 좋으니 웃는 얼굴로 뒤에 칼을 숨기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는 허무함을 느낀다. 결국 대화로 서로 간의 공감을 이끌어내 더 진득한 대화로 연결할 수 있다만 쉽게 소비되고 냄비처럼 식어버리는 1회용 은어와 현대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다음에 서로 대화를 또 시작하면 다른 화제로 이어가지만 여전히 영양가 없는 대화들이 난무한다. 그래서 대화의 허무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참에 내가 했던 부질없던 말들이 적어도 세상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었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잠에 청한다.


그것이 바로 낭만적 허무주의이다.


우리는 사실 너무 많은 정보 데이터에 의존하고 살았다. 신기술이 선사한 편안함에 익숙해 점차 근본적인 문제점을 당연시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블로그를 보아라. 정작 그들은 일기를 작성한답시고 은근히 유료광고를 서슴지 않게 하고 있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적어도 모난 톱니바퀴가 되지 않으려는 자신들의 발버둥인 것이다. 사회란 전체집합 안에 적어도 여집합이 되기 싫을 뿐이다. 오히려 있으나마나 신경 안 써주는 공집합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관계만 지향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해지고 있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MZ세대가 개인주의라고?]


일본이 개인주의라고? 절대 아니다. 그들은 군국주의라는 과거사 치욕아래 문화적인 답습 결과 전체주의 일원화가 된 국가일 뿐이다. 다만 일본 청년들은 정형화된 그런 문화에 반대하여 점차 개인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 청년들은 이를 보고 고민해야 한다. 각 장단점이 있다는 점이다. 조직사회 문화 변화는 일본에서 비롯되었으나 이를 거부하는 국뽕 오지는 우리나라 자문화중심주의자들 때문에 그런 이국적인 문화 또한 거부하는 꼴이 되어가는 것이다. 스스로 흥선대원군처럼 선비가 되지 말자. 뒤늦게 왕권강화를 위해 경복궁 중건한답시고 수많은 백성들의 피와 땀을 그 누가 보상해주랴. 나라 유지를 고수한다고 쇄국정책하는 조선 구한말 역사를 보며 우린 반성하되 절대 자책히자말자.

 

일본은 좋은 나라다. 동시에 일본 정치인들의 입담이 문제인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나쁘다는 편견은 윗사람들의 대화에서 구전되어 전해진 전례일 뿐이다. 우린 그런 정보 사회와 카더라 문화에 익숙하다. 다이소 불매운동을 해서 바뀐 게 있을까? 독도 관련 이슈 또한 올바른 신념과 교육 결함이 있는 극우파 단체들이 자국의 역사 세뇌정책에 당하여 이행했던 것뿐이다. 국민들을 서로 욕할 처지는 없다.


아쉽다면 멋도 모르고 곧이곧대로 믿는 아래 후배들과 어린이들이 이를 보고 내리답습할까 봐 걱정이란 것이다. 내로남불이랬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이런 걸 이기주의라고 한다. 이에 따라 역사적으로 일본 자체가 이기주의이며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에 불온전한 사상 파급력을 준다는 개소리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윗 대가리들이 문제인 점이다. 난 그래서 아직 386세대를 믿지 못한다. 1980년대 운동권에 참여한 정당한 이유는 있다만 당시 보복심리로 현 청년들을 갈구하는 그들의 나르시시즘은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군대 노예 자랑처럼 본인이 어느 족쇄에 걸린지도 모르고 자기가 제일 불쌍하다는 노예 코스프레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옛날에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자며 운동권을 자처했지만 비로소 지금은 너희들은 맞아야 싼다며 앞으로 훌륭한 주인 명에 따른 셰퍼드견이 되더라도 당시 우리만큼 우직한 대한민국을 만드라고 탁상행정을 하는 그 꼬락서니를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르기 전에 참으로 불쌍하다. 아니 연민 자체가 부질없고 쓸모없다. 그런 동정 심리 또한 어쩌면 그들의 노예 자랑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니까.


세상을 밝게 만들고 싶으면 일단 청년들과 대화부터하자. 소통이 중요한데 다들 이건 뭐 SNS로 헐뜯고 부모님 안부 전하고 근거 없이 비난한다. 현 청년들도 문제가 있긴 하다만 앞서 환경에 근거한 첫 화제의 뉴스를 다시 언급해 본다.


우리 청년들의 문제점은 결국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고 가장 중요한 핵심은 대화와 의사소통 관계에서 근원 한다. 점차 현대어가 영양가 없는 1회용 언어로 변질된 이유는 선진 기술이 세상을 그렇게 바꾸면서 도파민 충족에 갈망하는 현세대들이 마치 담배를 못 피워 요요 현상에 안달 난 중독자를 양산하는 데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때 눈을 보는 사람들과 안 보는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걸로 예의를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 아직도 충격이다. 대화를 하기 전부터 벌써 싹수없고 예의 운운하며 선비짓하는 기성세대들의 잘못일까 아니면 애초에 SNS에 찌들어 스스로 데이터 세상과 제2 페르소나에 갇힌 현청년들의 문제일까.


환경은 그렇게 바뀐다. 트렌드에 맞추되 온고지신하고 싶다. 엄마 말투 싸가지 없다고 비난하는 자식이 있듯이,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 허나 이제는 그 반대가 되는 세상이니 우린 어쩌면 소시오패스가 되는 게 정상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모르는 척을 하는 게 편한 세상.

알다가도 모르는 게 더 무서운 세상.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정보들이 많았으면 하는 세상.

온전히 뇌를 망각시키는 선진 기술의 폐해.

그리고 그 영향으로 인한 예술가들의 변질성.

변질된 힙스터의 출몰과 세대 갈등론 대두.

탈서울과 지방 정착.


수많은 연결 고리 속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 또한 두서없이 정리하다 보니 정리가 덜 된 느낌이다. 날 것 그대로 작성했기에 누군가 이 글을 보면서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기보단 어느 한 청년의 하소연으로 보길 기대한다.


아 생각하지 마라. 오히려 독 된다. 다시 한번 경고한다. 힘들다고 스스로 자위하지 마라. 오히려 나르시시즘 빠진다. 그리고 철학책을 오질 나게 파고 결국 극단적인 변질적 예술옹호론자가 된다. 그게 전문 심리학 용어로 나르시시즘이다. 병적 증세도 있다고 최근에 보고되었다. 본인의 결핍을 본인이 애써 해결하지말고 전문가한테 부탁해라. 결핍은 잘못이 아니지만 메꾸려고 애쓰다보면 또 다른 방어기제 자아가 너를 사로 잡을테니 말이야.


주의해라. 내면에 잠긴 또 다른 너를.


그러니 정신 차려 이 세상아 너희들아 윗사람들아!!! tlqkf!

매거진의 이전글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헤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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