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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Feb 03. 2024

정치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정말 뽑을 사람이 있냐 없냐의 분기점.

현대사회는 다변화하고 있고 그 중점에 사회 개념이 각종 분파로 여러 갈래 나누어지고 있다.


그중 OECD 메커니즘에 도달한 개도국 외로 선진국은 나날이 바뀌며 정체성이 희미해져 간다.


우리나라 또한 선진국 부류 중 하나이다.

그럼 잘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의구심이 철학 꼬리의 꼬리를 문다.


당장 미국, 러시아, 일본만 보아도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다만 본보기는 그들이다.


이를테면 정치적 분기점에 갈라서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당만 보았던 기성세대를 탈피하고, 순수히 정치인들의 사회적 발전에 대해 논하고 옹호한다. 허나 지금은 전자와 후자 모두 정체성을 잃었다. 어떤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봐야 하는지, 나에게 정말 정치란 무엇인지 근본을 파헤치기보단 정말 사회가 삭막해져 가는 그런 스탠스 속에서 "나에게 이 정치인이 조금 더 수익이 되고 이득이 될 것이다."라는 공감 호소와 공감 자본주의에 묻혀 가는 중이다.


이 사회, 현대 사회는 미래를 내다보았을 때 그 누구도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기 어렵다.

각자도생의 시대는 시작되었고 결코 하나의 입장만 보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개개인 입장에서 이 정치인이 이득이 될 것이다라는 기조를 깔고 정치인을 뽑을 것이다.


이를테면 기득권은 보수가 좋아서, 청년세대와 빈곤 세대는 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정말 수많은 이면과 수익성, 즉 정치의 미래적 발전과 효용성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 그러했다.


"옛날에는 당을 보고 뽑았지만, 이젠 참된 정치인을 뽑고 싶어. 하지만 이제 그것마저도 판단하기 힘들어. 그냥 개개인이 판단할 때 나에게 딱 매칭되는 정치인을 뽑겠어."


솔직히 이기적인 말일지라도 어쩌면 불분명한 사회로 더 진입할수록 결국 각자 생존과 직결된 정책을 더 바라보고 선출하지 않을까.


나 또한 그렇다.


지금 사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동이란 동네는 한때 민주당 텃밭이었지만, 이젠 국민의 힘의 텃밭으로 이전하였고 다음 상황은 두 정당을 보고 뽑는 게 아닌 순수히 내가 이 마곡에 살면서, 서울이란 스펙에서 어떤 효율성이 있고 미래 가치 자산이 있는지를 생각할 것이다.


두 정당의 좋고 나쁘다를 떠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저 서울이란 이 스펙을 얼마나 끌고 가져갈 수 있게 해 줄 정치인이 있냐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이기주의가 만연해서 어쩌면 경쟁이 불공정하지만 오히려 시장 방임주의가 잘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한때 난 서울을 탈출하려 했지만 결국 인간은 성악설이 맞나 싶다. 아닌척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고, 하지만 나중에 내가 탈서울을 할지라도 떳떳하게 서울 신분이었으며, 이미 모아놓은 돈으로 떵떵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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