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갓혁 Feb 18. 2022

나혼자 제주 여행 EP4

사려니숲길과 고난의 추억

어제 한라 토닉과 감귤의 조합에 흠뻑 빠져버려 나도 모르게 체크아웃 시간 즈음에 일어나게 되었다. 대략 오전 11시. 얼른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며 새로운 하루를 맞이해야겠다. 그리고 가장 가고 싶었던 장소를 하나 골랐다. 피톤치드 향이 물씬 풍기는 곳이자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순수한 장소, 그리고 솔직히 제주도까지 왔는데 둘레길도 구경해야지 않나 생각이 무척이나 들더라. 나는 과연 트래킹에 대한 참맛을 알게 될 것인가?


트래킹 뚜벅이 코스 : 제주 시내 어반스테이 - 미풍 해장국 - 사려니숲길 - 물찻오름 - 월든 삼거리 숲길 - 출구 (3시간 완파)


그래도 타지에 있다 보니 뭔지 모르게 1분 1초가 아깝다는 생각에 잠깐 눈을 뜨게 되었다.

혹시라도 비가 조금 그치고 구름이 걷히면서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얼른 후다닥 씻고 밖으로 나오기로 결정. 여기는 1인 숙박형 오피스텔이라 1달 이상 거주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대부분 제주 출장 및 홀로 장기 여행하러 오신 분들이다.

마주치면서 눈인사로 하루를 맞이하였는데 확실히 육지와는 다르게 여유로운 표정과 안부 인사를 통해 서로 거리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낭만적인 곳. 더 있고 싶었지만 얼른 자리를 떴다.




미풍해장국


사실 우진 해장국 먹으려고 했는데 거리가 너무 멀고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하여 인근에 있는 미풍해장국에 입장. 그렇지만 나는 선지 해장국을 좋아한다. 선지도 좋아하고 그냥 고기는 거의 다 좋아해서 혹시라도 호불호 갈리시는 분들은 유의하길 바란다.


사실 어제 한라 토닉 살짝 과음해서 머리가 띵해서 급하게 왔던 곳인데 후회가 없더라. 그리고 이번 주부터 방역 패스 적용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안전하게 큐알 찍고 입장. 아 참고로 혼자 오면 큐알 안 찍어도 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찍고 들어갔다. (사실 당시 2021년 12월 기준이라 거리두기가 덜 했으리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디론가 이동한다.

제주 시내는 변함이 없구나. 그리고 뭔지 모르게 오키나와 느낌 풍기는 제주 시내. 길을 걷다 보면 거의 다 현지 도민들, 그리고 어르신들이 산책하러 많이 나오셨더라. 날씨가 좋지 않은 관계로 조금 망설였는데 시간대를 보니 2시 30분이었다. 너무 늦게 일어났나 싶기도 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여기서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다.


제주 버스 터미널로 입장했다. 여기서 서귀포까지 가거나 혹은 한라산 자락까지 갈 수 있는 버스가 무궁무진하다. 시간대에 맞춰서 잘 가야 하니 잘 참고해야 했다.




사려니숲길


도착하자마자 바로 앞에 사려니 숲길이 아니었다. 도보로 10분 정도 길 따라 한라산 방향으로 쭈욱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짐 맡기는 곳이 따로 없다. 가끔 1분마다 차량이 한 대씩 지나간다. 인적은 1도 없었다. 아마 날씨가 안 좋아서 다들 이 근처로 구경하러 오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더 좋았던 느낌.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살짝 벗고 힐링하기 시작.

다만 아쉬웠던 점은 인도가 없다. 저기 옆에 샛길 따라 그저 올라가야 해서 혹시라도 눈이 내리거나, 비가 올 때, 어두울 때 오면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곳에 세워주신 버스기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있는 곳은 한라산 둘레길 입구 쪽이다. 그리고 조금만 들어가면 관리소가 나오고 이제부터 3시간 동안 자연의 풍경에 내 몸을 온전히 맡기면 된다. 벌써부터 설렜다. (+ 살짝 긴장감)



사려니숲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_.


무조건 오후 5시까지는 마치란다. 그 이유는 동절기라 해가 일찍 지기 때문에. 그리고 심지어 통신도 잘 안되었다. 이동하면서 사려니숲길에 대한 내용 표지판을 읽는 재미도 있더라. 특히 피톤치드 관련 이야기가 참으로 신기했다. 피톤치드란 식물이 방출하는 특수한 효과라고 한다. 내가 확실히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시에서는 이런 길이 많이 없다. 온전히 자연 생태계를 벗 삼아서 함께 인간들과 걷는 곳이란 찾기 어려웠다.


10분도 안되어서 느껴지는 사려니숲길의 참맛을 맛보았다. 해발고도가 평지보다 높다는 증거였고, 여러 고목에서 풍겨져 나오는 이 이끼의 아우라는 말로 형용이 안된다. 땅바닥부터 벌써 신발 벗고 걷고 싶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말 걷다가 사람들이 보일까 말까 하더라. 내가 구경했던 분들만 해도 대략 5명 정도. 벌써부터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괜히 왔다고 생각할 수가 없음. 진짜 마스크를 벗는 순간 마음의 힐링이 고스란히 찾아온다.


자연에 동화되고 싶어서 안달 났다. 예전에 친구들과 북한산 갔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와 비슷하다.

그런데 온전히 혼자 왔으니 누가 이 마음을 알아줄까 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제주도 여행, 그러니까 나 혼자 여행 오면서 이런 어려운 도전을 누가 알아줄까라는 것 자체는 사실 부질없다. 그것 또한 편견이고 눈치 보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온전히 내가 걷고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기록으로 남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


얼마나 걸었을까. 대략 30분 정도 걷다 보면 또 막다른 샛길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동절기라 위험하다고 막은 곳도 있다. 또한 사유지라는 지리적 특성도 한몫했다.


제주도 올 때 추울까 봐 가져온 청색 두꺼운 남방 때문에 고생 좀 했다. 꽉 찬 가방 안으로 채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것 또한 추억이 되었다. 장애물을 하나하나 이겨낸다는 과정이었지.



한라산 자락의 천미천


중간에 한라산 자락에 흘러 퍼진다는 조그마한 내천 발견. 그러나 물은 이미 말랐고 그 흔적만 잠깐 볼 수 있었다. 가을에 오면 대박이겠다. 쓸쓸해 보이는 이 개천도 봄이 되면 더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길 간절히 기대한다.


중간 코스 : 사려니숲길 안내소 - 새왓내숲길 - 천미천 - 물찻오름 - 월든삼거리삼나무숲 - 붉은오름, 사녀니숲길입구 (대략 3시간 정도 걸리더라.)


내가 도착했을 때 시간은 대략 오후 3시였다. 그러니까 오후 6시 안에 무조건 완파해야 한다. 통신도 잘 터지지 않는 미지의 구역이라 솔직히 무서웠다. 다행스러운 건 중간중간에 긴급 전화할 수 있는 방법도 있긴 한데. 내가 여기서 낙오할까 봐? 절대 아니지.


얼마나 걸었을까. 중간중간 제주도 고유의 침엽수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보게 되는 자생 식물. 얘네들의 정체는 뭘까. 양 사이드로 계속 발견된다.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건 당연히 느낌이더라. 그리고 하늘에서 조금씩 싸릿 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눈 내린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조그마한 눈이 내리니 뭔가 영화에 나올법한 장면도 연출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 혼자 낭만적인 숲을 만끽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이동하다 보면 사려니숲길 만의 본능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말 열대우림과 같은 느낌이 등장하더라. 가을에 오면 정말 예쁠 듯한 느낌. 여름에는 뭐 말 다 했지. 그래서 다들 여름에 오려는 이유가 있구나. 점점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해발고도가 높을수록 날씨가 좋아지나? 정말 구름들이 뭉게뭉게 피더니 먹구름은 사라지는 신기한 곳이다.


-

오 딱 중간 지점에 왔다!

현재 4.5km (도보 약 1시간 7분 소요)

남은 지점은 5.5km (도보 약 1시간 23분)


물찻오름에 가다.


어느덧 물찻오름이라는 큼지막한 오름에 도착했다. 조천읍과 남원읍, 표선면 등 3개 읍면의 경계선이 마주치는 정점에 있는 이 오름은 표고가 717m이고, 비고가 167m이다. 정상의 굼부리에 물이 고여 있고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는 오름 둘레가 '잣'과 같다는 데서 '물찻오름'이라고 했다. 연중 물이 검푸르게 넘실거리는 연못이 있는데 기생화산에 있으며, 몇 안 되는 화구호 중 하나라고 한다.


인근 남원읍으로 빠지는 샛길이 있긴 한데 굉장히 위험한 구역인지 펜스로 막아놓은 흔적이 있다. 원래 인근에 성판악으로 꺾는 지름길이 있지만 그곳을 막아놓은 셈이다. 또한 중간에 쓰레기 버리는 곳이 없다. 그리고 매점도 없고 화장실마저도 없다. 진짜 자연친화공간이라 최대한 비워주고 와야 한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녹이 낀 의자만이 사려니숲길 사이에 존재한다. 정말 사려니 숲길이 잘 돼있는 점이 중간중간 10분마다 이정표가 있다. 아주 친절해. 혹시라도 배터리 방전되거나 하면 이 길 따라 이동만 하면 거의 90프로 성공한 거라 보면 된다.


이름 모를 침엽수림


이 푸른 아이들은 생김새가 정말 날카롭고 두껍다. 알로에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야생식물. 뭔가 귀엽지만 겨울에 굳건히 버티고 있는 이 군락지가 나에게 뭔지 모를 동질감과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게 해 주더라.


자기들도 힘들게 여기에 있는데 '나' 혼자라고 못할 것이냐고. 얼른 우리들 구경하면서 완파하라고. 거의 다 왔다고. 그렇게 나를 응원해주는 하나의 든든한 매개체였다. 덕분에라고 할까. 이동하면서 이 어린 친구들을 구경하면 참 힘들지가 않았다.


특히 혼자 있다 보니 진짜 자문자답하고 혼자 놀기 마스터해서 육지로 돌아갈 듯하다. 이것이 자연과 벗 삼는다는 관동별곡 현대판인가.




월든삼거리숲길 (내 기준으로 사려니숲길의 마지막 코스이다.)


참나무 숲이 울창한 곳. 월든 삼거리 숲길에 온 것을 환영해. 여기도 사려니 길인데 날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그 느낌도 황홀하더라. 다시 등장하는 황톳길. 그래그래 다시 만나서 반가웠어. 아까는 돌덩이 천지더만. 날씨 어두워지고 배터리도 없으니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달려 나아갔다. 지금 사진 보니까 좀 웃기네. 그런데 당시 내 상황은 이러다가 여기서 낙오하고 인생 하직하는구나 생각을 어찌나 했는지 남들은 모를 것이다.


그렇게 그리고 겨우 도착한 사려니숲길 도착지점. 배터리가 겨우 2프로 정도였다니. 인근 화장실에서 재빠르게 고속 충전을 하고 옆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사람 1도 없고 도착하니 밤 6시. 진짜 어스름해지는 제주 밤. 또 숲이라서 불빛 금방 꺼지는 그런 동네. 버스 확인해 보니 배차간격 30분. 정말 제주도가 제주도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싫지가 않았다. 그래서 애월 쪽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면서 잠시 인근 벤치에 앉아 노래 감상하였다.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 그리고 무려 3시간 만에 완파한 사려니숲길.


다행이었던 건 정말 밤늦게 도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여기서 1시간 더 늦게 출발했으면 난 중간 2/3도 안되어서 거기서 노지 캠핑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 또한 추억이지만 적어도 우리 인생 행복하고 편안하고 힐링해야 하잖아. 아무튼 사려니숲길 완파 대만족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버킷리스트를 하나 성공했지.

사려니숲길 완주! (경험치 + 10, 경험도 + 20, 숙련도 +30, 두려움 + 2)



<아래 클릭하면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05화 나혼자 제주 여행 EP5 (brunch.co.kr)



#갓혁의일기 #나홀로여행 #나혼자여행 #나홀로제주여행 #남자혼자제주여행 #남자홀로제주여행






이전 03화 나혼자 제주 여행 EP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