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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Feb 18. 2022

나혼자 제주 여행 EP5

소심한 이층 그리고 예술 철학

사려니 숲길을 빠져나와 내가 이동한 곳은 성산 쪽이다. 몸이 너무 뿌둥해서 차 안에서 뻗어버렸다. 그냥 아이버즈끼고 내가 좋아하는 싸클노래 듣자마자 몸이 스르르 녹아내려갔다. 참 신기하다.


기분 좋게 버스에서 몸이 녹아버린 적은 없었는데, 제주도는 시골버스와 순환버스마저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심지어 기사님들도 매우 친절하셔서 혼자 왔다는 걸 인지하셨는지 내가 앉을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가끔 말동무가 되어주셨다.


이런 소소한 소통이 정말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게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제주도 지진이 나서 나한테 먼저 연락 온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웃님들 중에서도 나에게 지진 피해 괜찮냐고 걱정해 주신 분들도 계셔서 마음이 정말 따듯하고 세상은 아직 살맛 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사려니숲길 3시간의 노고가 세상 일에 대한 성찰과 이번 마지막 제주도 여행. 내일이면 이 여행도 끝날 상황에서 나홀로 제주 여행은 나의 도전 의식을 불태운게 분명하더라.



그런데 성산에 바로가는 버스가 아니었다고 한다. 뒤늦게 알았는데 표선이라는 곳에 잠깐 30분 동안 쉬었다가 가더라. 경유비행기 무슨 그런 개념같았다. 기사님께서 시간이 조금 남아서 밥 먹고 오라고 하셨다.


갑자기 웨이팅 요청하신 기사님? 아무래도 기사님도 배가 많이 고프셨는지 나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도시였으면 욕먹고도 남았을 텐데 이미 탑승했던 도민분들도 알고 있단 듯이 잠깐 눈을 붙이시거나, 조용히 담배 한 모금 피시거나, 잠깐 마실 구경나가셨더라. 참으로 진기한 장면이어서 아직도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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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순이

인근에 있는 조그마한 흑돼지집인데 1인 흑돼지 세트가 따로 없어서 여기서 그냥 1인 흑돼지 김치찌개를 먹었다. 어떤 아저씨가 혼자 운영하시던데 정부로부터 안정적인 평가를 받아서 나름 별점도 후하고 후기도 괜찮았다. 흑돼지 어차피 비싸서 못 먹을 줄 알았는데 그나마 김치찌개 안에 있다고 하니 그걸로 만족해야 했다.


시뻘건 김치찌개 안에 입맛을 돋우는 제주도 묵은지가 푹 담겨있고 흑돼지도 푸짐하게 들어가 있었다. 사장님께서 나에게 혼자 여행 왔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니 일부러 더 많이 넣어주셨다고 한다. 뭔지 모르게 뭉클했다. 사려니 숲길에서 사색하고 성찰했던 순간이 긍정적인 소통으로 발휘된 듯하다.


그리고 귤 6개를 서비스로 주시고는 푸짐하게 먹어야 여행에 대한 아쉬움이 없으니 이왕 다녀오는 거 잘 먹고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 인생 맛집의 하나로 정하게 된 곳이 바로 여기다. 솔직히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하루 종일 걸었다는 노고와 사람의 정, 더욱이 잘 챙겨주셨던 서비스의 만족도가 더 오감을 자극하게 하였고 앞으로도 이러한 식당은 꾸준하게 유지되길 간절히 간곡히 빌고 빌었다. 사장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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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차간격이 상당히 길었던 201번 버스를 놓치기 싫어서 사장님께 눈인사와 함께 얼른 나왔다. 201번 버스는 제주 외곽(해안가)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버스라고 한다. 이걸 놓치면 제주 뚜벅이 여행은 망친 거나 다름없다.


낮에는 몰랐는데 밤에 보는 제주도 정류장은 굉장히 아담하고 소소한 여운을 남겨주더라. 좋은 점은 거의 모든 정류장은 이렇게 칸막이가 있어서 기상악화 시 대피할 수 있다는 점. 아마 계절적 변화가 심한 곳이라 이렇게 만든 듯하다.


성산에 살어리랏다.


성산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대략 8시 30분. 이 근처에서 하루를 맞이하려고 한다. 성산 일출봉이랑 우도도 근처에 있어서 이쪽으로 잡았다.


성산은 하귀, 애월과 다르게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여기는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술집과 카페가 아직까지 열려있더라 ! 애월은 굉장히 소소하게 조용했는데 뭔가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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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핫플게스트하우스


그리고 도착한 어느 고즈넉한 게스트하우스. 작년 추석에 나 혼자 여행 왔을 때 우도에 가려고 한번 예약했었다. 여기 좋았던 점은 포틀럭 파티(내가 사 온 음식과 주류로 소소하게 정해진 시간 내에 파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서로 혼자 가기 좋은 여행지가 어디인지 공유하는 좋은 시간이었고 한편으로는 타지에서 모인 모르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생긴다는 점도 굉장히 각인되었기 때문에 한 번 더 오고 싶었다. 그리고 인근에 전기차 충전기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두 번째 게하.

도착했을 때에도 이미 몇 스태프분들과 혼자 여행 온 사람들, 그리고 친구끼리 온 사람들이 포틀럭 파티를 열고 있었다. 여기 게하는 참고로 사람들과 소소한 이야기와 우도를 가고 싶다면 꼭 추천해 주고 싶긴 하다. 다만 성산 자체가 조금 핫플레이스, 관광지 위주라서 아마 일부러 놀러 오고 파티를 즐기러 오신 분들도 대다수라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리고 만났던 멤버들 중에 우도에서 유명한 짬뽕집 운영하는 직원도 있었다. 잠깐 휴무라서 여기 놀러 왔다고 한다. 이야기 들어보니 우도에 놀 곳도 많고 전동 자전거 타고 이곳저곳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한나절 정도 걸리는데 그 감성 때문에 일부러 연박하는 사람들도 있고, 특히 마지막으로 떠나는 배 (오후 5시)를 바라보면서 노을 지는걸 구경하면 한 번 더 연박하게 된다는 신기한 곳이라고 한다.


뭔지 모르게 우도 직원의 말에 훅한 느낌. 시간이 안되어 결국에는 숙박 예약을 우도로 하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내일 갈 예정이니 미리 네이버 지도에 찍고 저장하였다.


한 2시간 동안 떠벌떠벌 이야기하더니 사장님이 들어오셨다. 역시나 전에 예약한 문자 내역 보시고 날 기억하시더라. 이건 좀 감동이었다. 그리고 여유롭게 담배피시러 밖으로 나가시는 게하 사장님.


순간 모든 사람들 분위기 3초 정적이었다가 웃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 뭔가 어색함이 없어서 더 좋았다. 게하는 조용하고 정적이 지속되는 순간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


그리고 다음날 우도에 갈 예정이라 사장님께 땅콩 아이스크림 쿠폰 받았다. 무려 10프로 할인이다. 직접 받아서 지미스에 가서 사장님께 보여드리면 된다고 한다. 아마 1인당 한 장씩인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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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이층


밤 11시 30분였을까. 그때 파티가 끝났고 조금 아쉬웠던 분들끼리 입장했던 곳이었다. 시간은 새벽 1시까지. 사실 당일 만났던 모르는 사람들이라 코로나 걱정이 좀 있었다. 당일 아무리 친해졌다고 해도 장기간 술을 같이 마신다는 것 자체가 조금 두렵다면 굳이 올 필요는 없는데 당시 내일이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뭔가 아쉽지 않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온전히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거다. 내일 회사 오전 사이버 교육이 있어서 오늘은 뒤늦게까지 마시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감성 책방인 것 같지만 아니고, 술집 같지만 감성 있고 아늑하고, 전시회 느낌 나기도 하고.

소소한 이층이라는 이름답게 정말 이층에 있고 소소하지 않을 법한 소소한 것들이 무덤덤하게 디피되어 있어서 뭐랄까 제주도에 왔다는 그 증거와 흔적을 고스란히 동기부여해 주더라.


사장님께 물어보니 그냥 '감성 펍'이라고 하는데, 서울에 이런 곳 많이 없다. 이태원 빼고. 무덤덤하게 전시시되어 있는 와인 뚜껑들과 사장님만의 자화상과 풍경화, 그리고 포스트잇으로 포스팅할 수 있는 엽서칸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느낌 자극하는 그런 곳. 한 번 더 인생 장소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심지어 배경음 또한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마틸다의 OST였다. 추천곡 받고 싶으면 사장님께 따로 말하면 된다고 한다. 간혹 커플들도 이 황홀한 분위기에 만취해 있었다. 아주 좋았다.



우리 남자 4명이서 와인을 시켰다. 그것도 오늘 당장 만난 사이끼리 말이다. 사실 와인을 평소에 안 마셔봐서 모르는데 화이트 와인이 더 달달하지 않나? 글쎄 모르겠다. 난 소주파니까. 남자끼리 와인이라니. 주문하고 모두들 살짝 허무함과 헛웃음의 연속. 이런 거 또 언제 느껴보겠는가.


그리고 어느 20대 스태프분과 이야기를 했는데 뮤지션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렇다. 게하 스태프들은 대부분 끼가 많거나 개성이 넘치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더라.


생각도 굉장히 깊고 묵직하고 특히 사람들을 보는 안목이 긍정적이라서 심리적으로 많이 배웠던 분.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더라. 나도 과감히 이 지긋지긋한 사회의 틀을 깨부수고 이 분처럼 멋지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 잠깐 와인을 한 번 더 들이켰다.


달달한 레드와인이다. 목구멍으로 넘어갈수록 숨 막히도록 짜릿하게 느껴지는 이 숙성된 포도맛과 달콤함에 어느새 인생썰까지 풀게 되는 오늘 당장 만났던 모르는 사람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혹시라도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꼭 다시 여기 오자고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우도에서 일하시는 직원분도 피아노를 배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약 10분간 그 사람의 피아노 연주를 구경하였다. 뭔지 모를 감성 돋보이는 클래식 영화와 함께 무르익으면서 서서히 우리는 마지막 성산의 밤에 취해갔다. 그렇게 산미구엘에 한 번 더 취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돌아와 인근 편의점에서 해장은 덤. 그리고 바로 뻗어버린 나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렇게 성산의 밤은 끝나갔다.


<아래 클릭하면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06화 나혼자 제주 여행 EP6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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