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잘 가시게
"나 너 좋아해..! 나랑 만나자"
"어..? 응... 좋아"
어느 한 시골마을에서 고등학생 시절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투박하면서 가지런한 머리칼을 가진 순수한 여자였고 그 모습에 반해 몇 개월을 따라다니다 용기 내 고백했다. 그녀는 왜 이제야 고백했냐는 듯 웃어 보이며 당황한 척 연기를 하며 나를 받아줬고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을 하는 그 시절까지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친구들의 놀림에도 우리는 2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됐고 그녀는 대학교를 나는 직장에서의 돈벌이를 선택하며 우리는 서로서로 맞춰가며 교복 입은 서로의 모습에서 아리따운 사복과 정갈한 정장으로의 만남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다들 '너네는 대체 언제 결혼해?' '너네가 결혼 안 하면 누가 결혼하냐!'라는 듯 우리의 결혼을 부추기게 되었고, 우리는 주변인들의 기대 덕분인지 그녀를 너무 사랑한 탓인지 결국 결혼에 골인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 결혼하자, 내가 앞으로 더 아끼고 더 사랑할게. 우리 잡은 이 두 손 다시는 놓지 않을게."
"응!!! 좋아! 나도 결혼을 한다면 너 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어."
스물넷 우리는 평생의 약속을 하게 되어 자그마한 집 하나를 겨우 구할 수 있었고 그 집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돕고 이해하며 서로에게 평생의 힘이 되어가고 있었다. 직장에 출근을 할 때면 항상 그녀의 아리땁고 곱디 고운 하얀 손은 나의 넥타이를 매어줬고 나는 그녀의 아리따운 손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스물 다섯 우리는 첫 째를 가지게 되었다. 그녀 따라 곱고 하얀 손을 가진 딸이었다. 출산으로 인한 후유증인지 잠들고 만 그녀를 보자 닭똥집만 한 눈물이 뚝 뚝 떨어지다 우리 예쁜 딸을 보자 닭똥집만 한 눈물이 탁구공이 되어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무럭무럭 아프지만 말고 건강하게 자라주렴', '고생했소,, 우리 예쁜 딸 낳느라 고생했소..' 첫째 아이는 나의 바람 덕분인지 우는 목소리도 우렁찼고 집안을 울려댔다.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딸아이는 고맙게도 어디 하나 아프지 않았다. 건강해도 너무 건강한 모습으로 무사히 초등학교를 입학할 수 있게 됐고, 친구들도 정말 많이 사귀게 되어 우리 집은 항상 딸아이의 친구들의 방문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애교 가득했던 우리 딸아이는 남들에게도 예쁨을 많이 받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예쁨 받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 나 오늘 친구들이랑 놀러 가는데 맛있는 거 해주세요!'
"얼마든지!"
서른셋 우리는 둘째 아이를 갖게 되었다. 첫째 아이와 다르게 듬직하고 우람한 남자아이였다. 이제는 두 번째라 그런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여전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고 우람한 덩치의 둘째 아이를 보자 여전히 탁구공만 한 눈물을 흘리느라 바빴다. '나도 참 주책이다. 애는 여보가 낳았는데 나는 울기만 하는구나'
아내는 두 아이를 집에서 케어하고 키우느라 늘 바빴음에도 내가 집에 오는 시간이면 항상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었다. 그럴 때면 항상 고맙다는 인사는 빼먹지 않고 우리 아이들을 불러 다 같이 식사를 했다. 우리 가족은 항상 밝았다. 감사함에 감사할 줄 알았고 아이들은 엄마에게 애교가 가득했고 내게는 왠지 무뚝뚝했다. 그럼에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과 웃음은 잃지 않았다.
어느덧 이 녀석들이 세월을 지나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되었고, 서로 티격태격했지만 동생이 괴롭힘 당할 때면 어디서 인지는 몰라도 딸아이가 지켜주었다. 우리에게는 사춘기가 왔어도 늘 잘 따라주었고 우리는 그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일을 해서라도 그 아이들이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이뤄주기 바빠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머리칼에는 하나 둘 흰머리가 자라났다.
"여보, 우리도 세월이 많이 지났네요. 흰머리가 자라나는 거 보니"
"그럼에도 우리 여보는 여전히 예쁘고 곱네요."
옆에서 듣던 딸아이가 온몸에 소름이 끼친 듯 몸을 감쌌고 우리를 앉히고서는 당당히 말했다. 옆에는 누군지 모를 건장한 사내아이를 두고서는. "아빠! 엄마! 나 결혼하고 싶어요! 결혼할래요."
아내는 손으로 입을 막고서는 눈은 놀란 토끼 눈을 가지고 입꼬리는 귀까지 당겨지듯 환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지만 나는 건장한 남자를 경계하지만 결혼한다는 딸아이를 보고 있으니 또 한 번 닭똥집 같은 눈물을 흘리자 아내는 이제 그만 좀 울라며 나를 다그쳤다. 딸아이가 내 곁을 떠나는 게 슬프기도 했고 저 옆에 앉은 남자 녀석이 우리 딸을 잘 지켜줄지 의문도 드는데 그만 울으라는 아내가 미웠지만 우리 딸아이라면 우리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만 같아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스럽던 큰 딸아이의 결혼식이라는 거대한 숙제가 끝이 나자 우리에게는 새로운 숙제가 하나 더 늘었다. 저기 방 한구석에서 문을 꼭 닫은 채 밥 먹을 때나마 잠깐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는 우리 작은 아들의 대학 공부였다.
"이 놈이 운동을 하든 공부를 하든 건강하게만 자라기를 바랐는데 나름의 욕심으로 공부를 선택한 것이 내심 장하기도 하고 종일 앉아서 책만 보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네." 겉으로 앓지 않고 속으로만 앓는다 생각하니 아내 앞에서 한 번더 눈물을 훔치려다 꾸중을 들을 것 같아서 겨우 참고만 있었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서로 초조하며 아들이 어떤 결과를 만나더라도 크게 낙담하지만 않기를 서로가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아빠!! 엄마!! 저 합격했어요!"
초조함의 기다림이 아들의 기대에 닿았을까, 아들은 당당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우리에게 기쁨을 매우 만끽했다. 어쩌면 우리 옆집 이후 옆옆집까지 들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이 놈의 자식이 매우 행복해하고 있었다. 아내와 두 손을 맞잡고 서로의 초조했던 마음을 그제야 내려놓고 같이 아들과 행복할 수 있었다. 기쁨에 떨리는 아들의 손을 잡고서 고생했다는 아내의 손을 보자 곱고 흰 손은 어느새 주름지고 늙어가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큰 딸의 결혼식 작은 아들의 대학 시험 크나큰 숙제를 끝내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에게 잃어가던 관심을 다시 줄 수 있었다. "여보, 흰머리가 좀 늘었소?, 그럼에도 예쁘네요"아내는 뭣이가 예쁘냐며 괜스레 내 가슴을 툭 치고서 내게는 흰머리가 늘었다 못해 다 뒤덮었다고 맞받아쳤다. '잘생겼다는 말은 빼먹네' 가볍게 웃으며 내 눈에 여전히 고운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여보, 세월이 많이 흘렀소 어느새 큰 딸 녀석이 자신과 똑 닮은 아이를 낳았지 뭐요 어찌나 귀여운지, 우리 작은 아들도 큰 딸 따라서 장가를 갔네 그것도 매우 예쁜 배우자와 함께 말이오. 물론 여보보다는 못하지만 말이오"
"내 흘러댔던 눈물들을 기억하오? 내 잘생긴 흰머리 덮은 모습을 기억은 하오? 지금은 수염도 흰 수염으로 덮어갑니다. 세월이 진짜 많이 흘렀소. 황혼은 기댈 만 하오? 아직도 자네의 곱고 하얀 손은 잊을 수가 없네, 많이.. 많이 보고 싶소 자네의 긴 머리 자네의 고운 손 자네의 웃음을. 여보 이제 아프지 말고 있으시오 내가 꼭 그 손 다시 잡으러 갈 테니."
"당분간은 걱정 말고 여기는 내게 다 맡기시오. 우리 아이들 내가 더 많이 보고 얼마나 잘 자랐는지 실컷 떠들어대겠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