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
20살이 되던 해 친구랑 단 둘이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갑자기 성사된 해외여행의 동기는 이제 성인이 된 우리에게 가장 큰 숙제인 군대가 남아있는데 군대 가기 전에 여행이라도 한 번 가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서로의 물음에 '까짓 거 한번 갔다 오자' 덥석 물어버린 것이었다. 우리의 청춘은 즉흥적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디로 갈지, 가서 무엇을 할지, 가면 뭘 먹으면서 즐겨야 할지 하나하나 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4박 5일의 여행지를 홍콩으로 선택했다. 이유는 그냥 밤에 레이저를 쏘아대는 높은 건물 속 아름다운 야경이 보고 싶어서였다. 음식은 가서 먹고 싶은 걸 먹기로 했고 이왕 간 김에 홍콩의 구경거리는 다 하고 와보자라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첫날은 힘드니까 면세점에서 사 온 컵으로 된 신라면을 먹었고 둘째 날은 먹을게 마땅하지 않네? 맥도날드를 먹었고 셋째 날은 현지 음식이 잘 맞지 않아 신라면을 먹었다. 좁고 좁은 숙소에서 자리도 마땅치 않아 화장실 변기에 한 명 침대 위에서 한 명 자리를 잡아 햄버거를 라면을 먹으면서도 우리의 순간순간은 하나의 추억이 되어갔다.
짧게만 느껴졌던 우리의 첫 해외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비행기 타는 곳을 헤매다 타지 못해 어거지로 하루를 더 머무를 뻔했으나 운이 좋게도 마감 직전에 탑승할 수 있게 됐다. 마지막까지 우당탕탕 정신없이 흘러간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새벽에 출발해 아침 일찍 한국에 도착한 우리는 분식집에서 간단한 아침을 해결한 뒤 집에서 그대로 기절한 채 저녁이 되어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농구가 하고 싶어졌다. 나는 가끔 '갑자기'의 힘을 빌린다. 갑자기 무엇이 하고 싶고 갑자기 무엇을 먹고 싶다. 불과 24시간도 안 돼서 나는 홍콩에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갑자기 농구가 하고 싶어 그대로 집 밖을 나온 채 문방구에서 농구공을 산 뒤 혼자서 집 뒤편 학교 운동장에서 한 시간을 혼자 농구공을 튀기고 나서야 한국으로 다시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캄캄한 밤하늘에 무수히 떠있는 별 아래 덩그러니 놓여있는 농구공을 두고서는 벤치에 앉아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오는 무수히 많은 노래들과 함께 같은 하늘 아래 다르지만 같이 흘러가는 시간들을 흘려보내다 친구의 전화에 또 다른 시간들을 보내러 갔다.
이후에 갑자기 사진이 찍고 싶었다. 정해져있지 않은 틀의 여러 사진들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필름카메라,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쿠팡을 통해서 제일 싼 값에 파는 제품들을 곧바로 구매했다. 보통 갑자기 일어나는 일들은 금세 질린다는 것을 알기에 제일 싼 제품들을 고른다.
날이 좋은 날이면 항상 필름카메라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챙겨나가 사진을 찍었다. 민들레가 흔들거리는 날에는 민들레 사진을 꽃이 피어오르는 날이면 꽃 사진을 찍었고, 이 후로 수많은 동물들과 내 주변 인물들이나 높거나 낮은 건물들을 찍어댔다. 폴라로이드는 찍는 즉시 나오는 필름이 시간이 지나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이 매력적이었고 필름카메라는 내가 잘 찍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채 카메라를 들고 가 스캔을 한 뒤 결과물을 보면서 못 나온 사진에 탄식과 웃을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그랬기에 20살부터 들고 다녔던 카메라는 29살까지 나와 함께하다 이제는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매력적인 분실물이 되었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패션에 빠져 이 옷 저 옷 사면서 여러 조합으로 코디를 하는 것을 즐겼다. 내가 잘 입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당시 유행을 따라 생겨난 수많은 유튜버들에게 직접 코디한 사진을 보내주면서 옷 평가를 받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꽤나 괜찮은 조합이라는 칭찬을 받아 화면 너머 얼굴이 빨개지는 현상을 많이 받기도 했다. '나 패션에 감각이 있는 건가?'라는 웃긴 생각도 하면서 옷에 관련된 일을 해볼까?라는 시답잖은 농담도 툭 던질 때도 있었다. '도전이나 해볼걸 그랬나? ㅋㅋ'
군인 시절 휴가를 나왔을 때면 항상 잔돈 천 원짜리 5장을 들고서는 집에서 20분 거리의 전북대 거리로 향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시절 꽤나 넓은 그물망이 펼쳐져 있는 배팅장이 있었다. 천 원에 공 20개니까 항상 나는 100번을 휘둘렀다. 어렸을 적 야구선수가 꿈이었던 나에게 배팅장은 꿈을 허상으로나마 실현시킬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물론 100분의 1밖에 실현을 하지는 못하지만 휘둘러지는 배트에 공이 맞아 나아갈 때면 짜릿함과 쾌감은 가득해 내 안에 차 있던 스트레스가 밖으로 내쫓기는 듯했다.
항상 무언가에 즉흥적이었고 항상 낙천적이었다. 하고 싶으면 하고 부정에 부딪히면 긍정으로 되받아쳤다. 하늘을 보고 싶으면 마음껏 올려다보기 위해 눕기도 했고 새벽 공기를 맡고 싶으면 누워있다가도 잠옷만 입은 채 밖에 나가 돌아다녔다. 이제는 그런 시절들이 지나오면서 20대 후반이 되었고 그 시절들을 그립기도 두려워하기도 하면서 30대를 맞이했다. 내가 생각한 30대와는 맞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갑자기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갑자기 무엇을 하기에 귀찮았고 갑자기 무엇을 하고 싶을 때는 재미가 없을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책 한 권의 한 페이지에 한 줄만 읽고서는 '재미없겠네'하고 덮어버리는 것처럼 나를 덮어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실은 그 책 진짜 재미있는 책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한국을 떠나 홍콩에 발을 디디고, 농구공을 튀기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고, 마음껏 배트도 휘두르며 다니고, 친구들과 웃통을 까고 바다에 입수해 물을 코로 잔뜩 먹기도 하고, 다 같이 웃긴 사진도 찍고, 첫 사회생활에 첫 월급에 첫 성과를 이루며 엄청 뿌듯하기도 때론 웃기도 때론 울기도 하며 참으로 재미있었는데 계속해서 나는 덮어만 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나는 추억이 담겨있는 한 편의 산문집을 다시 펼쳐 읽어보았다. 재밌었고 한 없이 웃겨서 시간 가는줄 모른 채 한 동안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기 시작했다. 시절 지난 추억들이 한 페이지에 가득 담겨있었다. 한참을 웃고 울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깨끗한 공백만이 있었다. 그래서 채우기로 했다. 책 옆에 놓인 까만 펜을 들고 한 문장 한 문장, 한 페이지씩 채워나가기로 했다. 나의 산문집은 여전히 무수하게 많은 공백들이 가득했고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채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멈춰버린 페이지를 다시 채워나가다 보니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결 가볍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제서야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안고 오랜만에 포근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이 시절도 가네요
내 손 꼭 잡아요
그저 우리 훨훨 날아가자구요"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 구절 중-
<신지훈 -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