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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난감공장 Jan 17. 2023

나 대신 머리를 조아리던 처장님

< 스물다섯 살, 2012. 10. 17. 수요일 >

< 스물다섯 살, 2012. 10. 17. 수요일 >

#부서 이동 #선배 #책임

#좋은 선배가 될 수 있을지 고민될 때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나에게 김 OO 씨가 찾아왔다. 평소 얼굴만 알고 지내는 사이라 반가움보다는 웬일인가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커피나 한 잔 하자는 그의 너스레를 그냥 넘기기 불편해 믹스커피 두 봉지를 뜯었다. 우리는 뜨거운 물이 담긴 종이컵을 하나씩 들고 사무실 구석에 놓인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인스턴트 가루들이 다 녹기도 전에 커피를 젓던 스틱을 입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저희랑 같이 일 하실 생각 없으세요?"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그 직설적인 물음만큼이나 분명했다. 사무실에 공석이 하나 생기는데, 사람을 충원을 해야겠으니 자신들이 일하는 부서로 옮길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인사를 담당하던 사람도 아니거니와, 그럴 권한이 있는지도 모르겠는 사람의 말이라기엔 너무나 직설적이었다. 더구나 이제 일을 시작한 지 채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신입에게 소위 상위부서라고 하는 곳에서 일을 하자는 제안이라니. 복잡한 마음에 답을 바로 하지 못하자 그는 "저희 처장님이 직접 연락드리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하며 자신의 제안에 힘을 실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내 대답이 화근이었을까. 김 OO 씨가 다녀간 이후로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내 이름이 적힌 인사발령 문서를 받아보게 되었다. 같이 근무하던 현장부서 사람들은 아쉬워하면서도 마치 내가 승진이라도 한 것인 양 치켜세워주기 바빴다. 반장님은 일은 어려워도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라 했다. 어떤 동료는 구석에 박혀 있는 것보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백번 잘 된 일이라며 부러움 섞인 축하를 해주기도 했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새로 옮긴 부서는 숨이 막히는 공간이었다. 새로운 환경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누구 하나 조언을 해주는 이가 없었다. 다들 자신의 담당 업무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야근을 해도 끝나지 않는 일,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는 일들이 하나 둘 쌓여만 갔다. 현장에서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슈를 해결하던 생활이 금세 그리워졌다.



  이런 시간이 계속될수록 내 마음속에서는 불만의 씨앗이 커져갔다. 일을 못하는 자신을 나무라기보다는 주변을 탓했다. 빈자리에 사람을 채우고 인수인계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새로운 부서에 대한 원망. 도저히 혼자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에도 도움을 주지 않는 주변 동료들에 대한 야속함. 그리고 현장에서 멀쩡히 잘 지내고 있던 나를 무 뽑듯 쑥 데려간 처장님에 대한 원망.



  불만의 씨앗은 점점 커져 내 생활마저 잡아먹게 되었다. 말 수는 줄어들어 남들과 밝게 지내지 못했다. 긍정적인 모습은 오간 데 없고 방어적으로 바뀌었다.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을 내고, 협업 부서 사람들과 다툼이 잦아졌다. 내 태도에 대해 조언해 주는 옆 사무실 부서장에게 대들었다가 꾸중을 듣기도 했다. 나는 계속해서 김 OO 씨가 나를 찾아오던 날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다 감사를 받던 기간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상위 부서에서 한 해 동안 우리가 진행해 온 일들에 대해 점검을 내려왔다. 우리 부서에도 머리를 반듯하게 넘긴 감사관 한 명이 방문했다. 부서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긴장하며 그가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고 설명하기 바빴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문득 소홀히 처리했던 몇 가지 일들이 떠올랐다. 제발 그것 만은 들춰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지없이 감사관에게 들통나고 말았다. 내가 제시한 자료는 부실했고, 감사관의 날카로운 몇 마디 질문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정신을 부여잡고 보니 나는 '사실확인서'라고 적힌 서류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이쯤 되니 그동안 자신의 업무 이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부서 동료들도 그 상황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또각또각 빈 종이를 절반 정도 채웠을 때, 처장님 방문이 열렸다. 거의 울상이 되어있는 나를 처장님은 한 번 흘끔 보시고는 감사관에게 인사하셨다. 감사관은 그 인사에 대꾸하며 내 잘못들을 설명해 나갔다.



  처장님은 그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신 후 갑자기 머리를 조아리셨다. "다 제가 관리를 잘 못 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잘 못 가르친 탓입니다. 어떻게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감사관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원칙대로 처리하고 결과는 추후에 통보해 주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그럴수록 처장님은 감사관에게 더 고개를 조아리며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사실확인서를 쓰겠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더욱 울상이 되어갔다.






  감사관은 내 잘못에 대해 구두 경고로 갈음하고 사무실 문을 나갔다. 그 뒤에는 그를 향해 아직도 머리를 숙이고 있는 처장님이 계셨다. 사무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고개를 든, 처장님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처장님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셨고, 한 동안 나를 포함한 모든 부서원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감사라는 것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다지만 우리 같은 피감 기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확실한 건 감사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어야 할 사람은 처장님이 아닌 나였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퇴근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모두가 다 집에 간 사무실에 혼자 남은 나는 처장님께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어 밀려왔다. 그러나 그다음 날도 나는 처장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같은 일상은 반복되고, 그렇게 한 해가 마무리 되었다. 우리는 인사발령 문서에 적힌 대로 또 각자의 일터로 옮겨갔다.



  그 일이 있고 10년이 지난 2022년 마지막 날, 나는 처장님께 10년 만의 사과의 문자를 드렸다. 처장님의 답장은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이 담백했다. "야, 원래 선배는 그러는 거야. 기죽지 마" 같은 인터넷의 오글거리는 답장은 없었다. 처장님은 지금도 자신의 배려와 관심을 내색하지 않으셨다. 



  누군가는 이런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관계를 무관심이라고 표현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직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갖는 이중적인 태도를 떠올려 본다. 내가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길 바라면서 그 외의 관심은 간섭이라고 느끼는 그것.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일을 해내고, 그 속에서 스스로의 영역을 만들어가 나고 있는 중이다. 제 역할을 못했을 때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나에게 일 할 기회를 준 사람이 아니고 사실은 나 자신이다. 따지고 보면 후배가 잘못한 일에 반드시 선배가 머리 숙일 이유는 없다.



  현장에 업무 지시를 잘 못해 항의 전화가 빗발칠 때 나는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처장님은 방에서 얼마나 많은 불만들을 응대하고 계셨을까.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나만 제일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그때가 후회된다. 시간을 돌릴 수는 없다. 그저 지금, 같이 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제 몫을 해낼 시간을 주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면 나서서 대신 머리를 숙여줘야겠다. 처장님이 그러셨던 것 처럼, 생색은 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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