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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eng Oct 25. 2022

한없이 가벼운 관계

11. 영영 보지 못한다는 것은




관계라는 것은 그렇다. 위태로워 보이던 관계도 위기를 극복하면 더 단단해지기도 하고,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끈끈해 보이는 관계가 한순간에 끊어지기도 한다. 끈끈하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닥치지 않았다는 말일 수도 있다. 위기가 없었던 관계는 오히려 하나의 사건으로 모든 게 틀어지고 만다. 결혼생활은 어떤가. 평생을 약속한다고는 하지만, 한순간에 남이 되어버리고는 한다. 결혼은 피가 섞이지 않은 두 존재의 서약이다. 서약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결혼이라는 안전장치가 없다면 한 없이 가벼운 관계가 되어버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뿐이다.




나는 상처를 잘 주는 사람, 누군가 그랬다, 모든 건 돌아온다고. 상처를 받는 건 항상 관계를 가벼이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 관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 모두에게 믿음을 주되 그 누구도 믿으면 안 된다. 사람은 언젠가 떠나간다. 하지만 아무리 내게 악하게 대했던 이들에게도 시간이 지나면 가여운 마음이 들어 용서를 하고는 했다. 나는 이런 성격이 싫었다. 냉정해지고 싶었지만 유독 인간에게는 모질지 못했다. 왜냐하면 잊는다의 의미는 내겐 아직까지도 크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만나는 빈도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닌 남은 생 동안 영영 만나지 못한다는 것. 나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슬픈 것과는 별개로 평생이라는 말의 무게를 아직도 모르겠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절교해”라고 했었던 어린 시절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때는 절교라는 말을 쉽게도 하곤 했다. 무관심이 제일 무서운 것이라고 했던가. 내게 잘못을 지적한다거나 화를 내는 것은 슬프지 않다. 그건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 무엇이든 고장이 나면 수리를 하면 된다. 하지만 영영 보지 말자는 말에는 해결책이 없다. 그건 관계가 수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더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해 폐기된다는 말이다. 행복은 약속할 수 없어도 오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는 약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약속에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사람은 자신이 소유했던 것의 결핍으로부터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지 않아야 하는 걸 알면서도 관계가 평생 유지될 것만 같아서 해야 할 말들을 나중으로 미뤄버리고 만다. 나는 당신이 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했어야만 했다. 인간관계가 얕은 나로서는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만 느껴진다.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신뢰를 주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많은 마음을 주었다. 잘 지내라는 말은 서글프다.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암시가 들어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자책을 하다가 가슴이 너무 아파와서 눈물이 났다. 오늘따라 입 안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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