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언가 Apr 18. 2023

무위자연 無爲自然

노자 <도덕경>

유교(儒敎)라는 말은 한국에서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전통과 인의예지에 따라 이상적 질서를 갖춘 사상을 빗댈 때 사용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유교걸, 유교보이라는 말로 회자되며 새로운 문화에 당황하는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유교는 공자의 유학을 이어온 것으로 인간을 미완성의 존재로 인식한다. 그리하여 이상적인 기준을 세우고 학습을 통해 쉼 없이 부족함을 채워가야 한다고 본다. 그중 인(仁)을 중요시 여기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인(仁)은 한 사람이 두 개로 나눠지는 상형 문자이다. <논어>에 그 뜻이 나오는데, 번지가 인을 묻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공자가 말했다는 부분이다. <논어>엔 군자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과 행실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즉, 유교의 중심인 공자는 학습을 통해 인간은 질서를 배우고 인(仁)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교(道敎)의 대표 사상가는 노자와 장자이다. 공자가 인간은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면 노자는 인간이 갓 태어난 아기일 때 이미 완전한 상태라 어린 아기로 회귀하는 것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이야기한다. 노자를 잘못 이해하면 자연으로 돌아가 무소유 하며 유목민으로 사는 것이 옳다고 착각하는데, 이는 노자를 완전히 곡해한 해석이다. 동양고전서를 읽다가 가끔 놀라는데 생각보다 고전 학자들은 현실주의자이며 방구석 외골수가 아닌 실천파들이라는 것이다. 노자의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흘러가는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기라는 것이다. 도교의 도(道)는 우주 만물의 운행 법칙이다. 계절이 변하고, 낮이 밤이 되고 살아있던 존재는 죽음으로 돌아간다. 무위는 그 흐름을 역행하지 않는 것이다. 유위로 전환되는 순간 인간의 사사로운 욕망이 개입된다. 권력을 놓기 싫어 욕심을 부리고, 더 많은 것을 얻고자 남을 해하며 늙지 않기 위해 인위적인 화학용품들을 몸에 주입하는 일 등이다. 


노자는 공자의 인의예지를 거부한다. 노자는 언어란 한쪽면만 바라보는 이분법 구조의 악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경 18장에 '대도가 사라지자 인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나타나자 큰 거짓이 생겨났고, 가족이 불화하자 효도니 자애니 하는 게 생겨났고, 국가가 혼란해지자 충신이 생겨났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예()를 선으로만 생각하기에 그 반대되는 것은 모두 악으로 규정하여 엄벌하거나 손가락질한다. 대중교통 노약자석에 젊은이가 앉았다고 그 젊은이를 폭행한 노인의 이야기나 상사의 부당한 요구에도 거절하지 못하여 고통받는 직원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 이중성을 본다. 이런 행동과 사고는 지(知)와 연결되는데 노자가 본 지(知)는 이분법적인 ‘앎’이며 이기적인 ‘앎’이다. 우주의 순환하는 질서 속에서 진실은 양극단 모두에 닿아있다. 노자는 지(知)를 버리고 명(明)을 보라 한다. 지(知)가 한쪽만을 보는 앎이라면 명(明)은 해와 달이 공존하듯 양쪽을 고루 생각하는 넓은 사유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노자의 무위자연 관점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자율적인 ‘나’들이 드러나고 그 개인이 모여 형성된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는 텅 빈 그릇과 같아 온갖 것들이 모두 거기에서 나오네'란 말처럼 이 세상은 이제 보이지 않는 것에서 무수히 생성되는 '창조와 디자인'의 세상이 되었다.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수없이 태어나는 세상이다. 노자의 <도덕경>과 공자의 <논어>를 모두 읽고 두 사상을 결합하여 공空 속에 숨은 찬란한 삶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한결 편해진 마음을 마주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림자 없는 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