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스트 Mar 29. 2022

춤은 못추지만 살사댄스는 인생취미

못해도 괜찮아. 배우는 과정이 더 의미가 있으니까



춤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잘 추지 못한다. 외적 흥보다는 내적 흥이 더 많은 사람이랄까?

스우파에서 춤을 추는 댄서분들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몸이 움직이는지 정말 신기할 정도다. 마음은 늘 스우파 댄서분들처럼 춤을 추는데.. 춤을 추는 내 모습은....ㅎ 흥은 있는데 그루브는 없어서 그냥 박자에 맞춰 춤을 추는 데에 감사하며 만족하고 있는 중이다. 


춤을 좋아했지만 비보잉, 케이팝 등 댄스 지식은 없다. 그런 와중에 나는 어떻게 살사댄스를 배우게 되었을까? 배워볼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댄스를 배우고 즐기기까지 약 6년 정도가 된 것 같다. 그래서 20대 후반에 배우기 시작했던 그 시절을 다시 떠올려봤다. 


그 시절에는 늘 당연히 해왔던 일만 하고 일적으로 고민이 많은 상황이었다. 맡은 일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 같은 신입사원 시절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재능도 없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고만 생각하다 30대가 되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어떤 시도도 해보지 못할 때였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는 살사댄스 이야기를 했다. 

"아는 언니가 살사댄스를 배우고 왔는데 정말 재밌대!! 그래서 나도 가보려고!!"

라고 하는 친구의 말을 처음에는 흘려들었었다. 무슨 살사댄스?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좀 거리감이 들었다.

그리고 친구는 살사댄스를 다녀와서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진짜 재밌어!! 처음에는 무슨 카바레 같긴 했는데 막상 배워보니까 재밌더라고!!"

"근데 나는 안 맞을 것 같아.. 못 할 것 같아..."

재밌다고는 하는데 살사댄스가 무엇인지 아무 정보도 없었기에 조금 겁이 나서 거절을 했다. 그런데 그 뒤로도 친구가 혼자 다니니 심심하다고 딱 한 번만 가보자고 했다. 

체험수업으로 들어볼 수 있으니 한 번 같이 가보자고 했고, 그러던 중 30대가 되기 전에 뭐라도 한 번 해보자고 다짐했던 게 떠올라 눈 한 번 딱 감고 가기로 했다.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춤에 대한 것도 잘 모르기도 하고 게다가 라틴음악에 추는 춤? 거리가 먼 취미라고 생각했다. 친구랑 약속 한 당일에도 안 간다고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다시 설득당하기도 했지만 결국 살사댄스 학원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뭔가 맞지 않을 것 같은 기분에 걱정뿐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였던 사이키...ㅎㅎ 촌스러운 색깔이 알록달록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카바레야...ㅎㅎ 나이 든 분들이 가는 곳 같은 느낌 같은데... 나랑 안 맞을 것 같아... 확실해...

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일단 여기까지 나온 게 아까워서 배우고 가야 하니 마음을 먹고 체험수업을 시작했다.

선생님의 지도하에 기본 스텝을 배웠다.

"살사의 기본은 스텝이야. 8박자 스텝만 알면 살세라는 살세로와 어느 정도 출 수 있어"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여기서 살세라는 살사를 추는 여성, 살세로는 살사를 추는 남성을 말한다)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

스텝과 합께 기본 동작들을 알려주셨다.

레프트턴, 라이트턴, 인사이드 턴, 아웃 사이트 턴 등등... 제대로 배우려면 자세까지 잡고 배워야 하지만 처음에는 기본 스텝을 익힐 수 있도록 스텝과 동작을 간단히 알려주셨다.

그리고 옆에서 연습하고 있던 살세로와 함께 연습을 해봤는데 (상대방이 기본을 알고 있다면) 파트너가 신호를 주면 내가 동작을 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신호와 스텝만 알고 있으면 한 곡을 출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살세로의 신호에 집중하며, 한 곡 춤을 추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대부분 춤은 혼자 춘다고만 생각했는데 파트너와 함께 추니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호흡이 중요했다.

"와!! 재밌다!!"

시작 전부터 안 맞을 거라고 단정 짓고 벽을 치려했었는데 그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수학도 기본 공식만 알면 응용해서 풀 수 있는 것처럼 살사도 기본 스텝을 배우면 응용해서 춤을 출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몸이 뻣뻣하고 춤을 못 춰도 기본 동작을 알고 있으면 누구나 출 수 있었다. 아름답게 보이거나 자연스럽게 출 수는 없어도 일단 춤이라는 것을 출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의 내적흥이 외부로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그루브가 있어서 라틴음악에 멋지게 출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주 뻣뻣한 자세로 춤을 추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렸다.

살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추기보다 춤을 추는 두 사람이 음악을 즐기고 재밌게 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살사댄스에 빠졌고 매주 2번은 꼭 살사 바에 가서 동호회 분들과 춤을 췄다. 


난 전형적인 4박자 한국사람이라 외국분들의 그 그루브 있는 박자를 못 타서 그런지.. 호흡이 잘 안 맞았다. 이럴 때는 조금 좌절을 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이게 난걸...이라고 생각하며 훌훌 털어버린다.

음악을 잘 들을 수 있고 박자를 탈 수 있다면 더 재밌었을 테지만 그래도 안 해봤던 경험들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호기심과 재미를 충족시켜줬던 것 같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쉬고 있지만 시국이 괜찮아진다면 다시 살사댄스 학원으로 향할 생각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지만 내가 즐길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는다. 욕심부릴수록, 잘하고 싶어 질수록 재미 없어지면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과 도전이 좋은거지 살사댄스 강사가 될 건아니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즐기는 것도 나의 선택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꼭 필요한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가봐야겠지만 그 과정에 필수사항이 아니라면 경험해보는 것으로 만족할 줄 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나 자신에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다 주고 싶었다. 30살 전에 뜬금없이 시작한 살사댄스가 나의 편견도 없애줬으니까. 어떤 일이든 도움이 안 되는 취미나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한 몫 한 것 같다.


나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살사댄스가 나에게 준 의미를 정리해보자면 

첫 번째는 해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살사댄스에 대해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 정말 재밌었다. 사람에 대한 편견이 가장 컸었는데.. 춤을 추는 사람들도 열정적이고 음악을 즐기며 행복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못 춰도 누구나 배우면 출 수 있는 춤이었다. 그리고 파트너에 대한 배려가 필수여서 기본 예의는 꼭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곳이었다. 이상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서 경험해보지 않고서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첫 취미였다.


두 번째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는 것이다. 나는 도전하고 싶다고 그렇게 외쳐대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주변에 무언가를 해보자고 하는 친구들은 많지만 내가 흘려들어 그냥 지나간 기회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친구의 제안으로 살사댄스를 배웠고, 그 경험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어떤 재밌는 일들이 다가오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촉을 세우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 기회를 잡고 도전해보느냐 아니면 내 일이 아닌 듯 그냥 넘어가느냐는 본인의 관심과 선택이 이니까.

그래서 sns에서 친구들이 올리는 취미나 일 중에 호기심이 생기는 일들은 꼭 먼저 물어보고 한 번 같이 해볼 수 있는지 물어본다. 그렇게 늘려갔던 관심사도 꽤 많아졌다.

해보기 전까지는 내가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닐지도.. 재밌을지도.. 재미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뭐든 해보면서 나의 경험치를 쌓기 위해 기회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


세 번째는 잘 추든 못 추든 상관없이 내가 재밌으면 된 거라는 마인드가 얼마나 많은 동기부여를 주는지 알았다.

살사댄스를 배우면서도 "저 사람은 나보다 늦게 배웠는데 잘하네?" 라던지 잘하는 사람과 비교를 하는 순간 재미가 없어졌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뽐내려고 배우는 게 아니라 내가 재밌게 배우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인생 취미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이 배우는 과정에 필요한 것 같다.


이렇게 배우면서 나는 또 다른 목표가 하나 있는데 해외여행을 가서 살사 바를 가보는 것이다.

외국인 친구들과 말로 대화는 못해도 춤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살사댄스니까. 

해외여행은 아직 못 갔지만 코로나 이전에 제주도 살사페스티벌에 갔었고, 전 세계의 살사인들이 모인 곳에서 춤을 춰 봤다. 그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춤도 추고 이야기하며 새로운 경험치를 쌓아나갔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나는 몰랐다. 살사 하나로 세계 각국에서 이렇게 모일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잘 추는 사람들은 분명히 더 즐거웠을 테지만 잘 추지 못해도 서로 예의를 지켜가며 상대방의 수준에 맞게 즐겁게 출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초보시절이었지만 함께 췄던 파트너 분들에게 참 많은 배려를 느꼈던 것 같다.

(참고로 그 와중에도 이상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분들은 내가 거절하면 되니까. 적당히 눈치껏 살피면 즐겁게 출 수 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살사 하나로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기도 하고 목표를 만들기도 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되었고, 라틴음악을 들을 줄 알게 되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전혀 모르던 세상은 또 다른 점을 만들어 나의 세상과 연결해줬다. 그렇게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도 넓어져 갔다.

살사댄스를 배웠던 것처럼 새롭게 도전하고 받아들이는 이 과정이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달리기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달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