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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스트 May 11. 2022

TV가 없는 이유


신문에 편성표가 나오던 시절 형광펜 밑줄 그어본 적 있는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TV를 정말 정말 좋아했다. 예능, 드라마, 아이돌 등 TV에 나오는 모든 것들을 다 봤었다. 그리고 다시 보기가 어려웠던 때는 비디오 녹화를 해놓고 집에 와서 돌려보곤 했다. 드라마, 예능을 다 꿰고 있던 나는 고등학생일 때는 PD가 꿈이었다. TV를 열정적으로 보는 것처럼 공부도 했어야 했는데 공부를 안 해서 결국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ㅎㅎ

 어린 시절부터 TV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던 신혼집에 우리 부부의 선택으로 TV를 구매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우리 부부가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우리 부부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즐겨보는 것들이 조금 다르다. 신랑은 EBS 다큐나 뉴스,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 예능, 스포츠 등 시사교양이 아닌 것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양한 OTT가 나와서 영화를 보는 취향도 더 달라졌다. 넷플릭스로 강철부대를 보고 있으면 나는 옆에서 디즈니 마블 영화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보고 싶은 것이 다르기 때문에 TV가 아닌 아이패드나 핸드폰으로 각자 시청을 한다. TV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TV에 나온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거니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같은 시간에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더 효율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다 같이 보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 프로젝터로 함께 본다. 프로젝터는 TV가 없다고 하니 지인이 저렴한 것으로 선물해줬다.  함께 보고 싶은 게 있으면 프로젝터를 설치해서 보고 있다. 프로젝터도 연결하는 게 일이라 자주 꺼내지는 않는다.


 두 번째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고 싶었다. TV를 늘 켜놓고 살았지만 결혼을 하면서는 좀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생산적인 삶을 보내는데 TV는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은 승진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고 나도 대학원을 다니고, 다양한 도전을 하면서 내 길을 찾고 싶었다. 이렇게 부부끼리 목표를 설정하니 TV는 없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우리 뇌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뇌라고 들었고 뇌를 위해서도 TV와 공부 중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부부는 TV를 구매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실에 넓은 책상 하나를 두었다. 그렇게 살게 된 지 150일 정도 지났다. 지금까지 지내면서 장점을 말하자면 진짜 시간을 알차게 쓴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운동을 가거나, 자연스럽게 책상에 앉는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일단 책상에 앉아서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로 보고 싶었던 것들을 보고 할 일을 한다. 핸드폰을 보다가도 책상에 앉으니 자연스럽게 책을 보게 되는 점이 좋았다. 퇴근 후 TV를 보는 삶이 아니라 함께 운동을 하거나 책을 보고, 서로 대화를 한다. 그리고 가끔은 소파에서 뒹굴뒹굴하기도 한다. 뒹굴뒹굴도 아주 잠깐이지 결국 다른 일을 하게 된다. 

 반면에 단점은 세상 돌아가는걸 잘 모른다. 뉴스를 가끔 보거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보면 세상 돌아가는 걸 알기도 했는데 지금은 전혀 알 수가 없다. 포털사이트를 들어가게 되면 내가 보고 싶은 기사들만 찾아보기 때문에 조금 바쁘면 기사 자체를 못 보기도 해서 요즘 돌아가는 이슈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부부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신문 하나를 구독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아니라 관심 없는 분야도 보면서 세상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문을 모두 정독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제목과 소제목만 읽어도 좋았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조금은 아는 척(?)도 할 수 있다. 

TV가 없는 삶은 무료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정말 바쁘다. 퇴근 후 일정이 많이 생겨서 잠도 잘 잔다. 우리 부부는 TV를 구매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TV 없이  재미있는 일을 하나씩 늘려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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