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매주 친정집을 간다. 내가 마음 놓고 쉴 수 있고 그때만큼은 나도 엄마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정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엄마가 허리가 많이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 운동도 꾸준히 하고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던 엄마가 아프다는 이야기가 왜 대수롭지 않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병원에 가보면 되지!"
너무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하는 나를 보고 이 한 마디가 엄마는 서운했던 모양이다.
딸에게 위로받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였을까?
엄마가 내비친 서운함에 '아차, 너무 남처럼 이야기했나?'라고 생각을 하며 당황한 나머지 어색한 저녁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친정집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엄마가 근처 운동 간다고 하길래 따라나섰다. 평소 같으면 따라나서지 않겠지만 이날은 가야 될 것 같았다. 운동을 가게 된 그 구간은 우리가 자주 다니는 산책 코스이다. 하지만 요번에는 다른 길로 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와 이야기를 한 뒤 자주 가는 코스가 아닌 새로운 길로 동네 마실을 가게 되었다. 나에게는 걷기가 피곤한 운동이지만 엄마에게는 건강을 위해 매일 걸어서 그런지 가뿐한 걸음이었다. 지치고 힘든 나에게 그 길은 나에게 새로운 카페를 찾는 탐색의 시간이 되었다. 같은 곳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며 같이 나란히 걷는 그 길은 언제나 아름답기만 하다.
그렇게 새로운 곳을 찾아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자주 보는 엄마에게 다 큰 딸이 얼마나 할 말이 있겠냐만은, 눈빛만 보고 발걸음만을 보고도 어떤 기분일지 알 것 같이 느껴졌다. 커다랗고 든든했던 엄마는 나에게 항상 커다란 존재였지만 어느새 나와 비슷한 존재가 되나 것 같아 어느 때는 마음이 울컥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길가에서 문득 발견한 신발 가계가 눈에 띄었다.
"엄마, 여기 한번 들어가 보자."
아마 혼자 지나쳤으면 절대로 들어가지 않았던 그런 평범한 매장이었지만, 왜 그날은 내 눈에 띄었던 것일까? 내 신발을 산다는 핑계로 엄마 신발을 사드리고 싶었다. 서운하게 만들었던 그 순간도 떠오르면서 한편에 죄책감도 들었다.
아주 명품 신발도 아니고, 엄청 편안한 기능성 신발도 아니지만,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행운인 듯 선물처럼 드리고 싶었다. 매번 엄마는 딸에게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화장품을 많이 샀다며 나누어주고, 음식도 많이 했다면서 나누어주신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도 보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날 엄마는 파란색 스니커즈 한 켤레를 딸에게 선물 받았다.
엄마와 나는 취향도, 선호하는 색도 모양도 모두 다르지만 서로를 위한 마음은 한결같은지 서로에게 더 어울리는 신발을 찾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삶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 날도 그냥 지나가던 길의 한 부분이었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그러한 곳이었다. 그러나 서로를 향한 아낌없는 생각과 행동으로 모두 행복한 시간이 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엄마는 행복한 얼굴로 내가 골라준 신발을 신으며 가계를 나오게 되었다.
나는 항상 나를 위해 헌신하는 엄마에게 매번 받기만 한 존재였다.
신발 한 켤레로 수많은 세월을 보상받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만으로 고 부모는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어색했던 순간은 바로 잊은 채 다시 사이좋은 모녀가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평범하지만 다행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