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그림을 그려나가야겠다
요즈음 카페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글을 쓰다 보면 글의 규격 안에 갇히는 일이 종종 있다.
손바닥만 한 일기장에 글을 쓰면 생각이 딱 거기서 멈춘다. 호흡의 길이가 적당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느 순간 글을 멈춰버린다는 게 단점이었다.
방에서 이리저리 할 일을 하다 보면, 창문을 열고 싶어진다. 바람이 불고, 바깥의 향이 들어오면서 잠시 경계가 흐릿해진다. 안인지 밖인지 구분이 덜하게, 그렇게 환기라는 이름을 붙인다.
카페에 가는 것은 방 안에만 갇혀있기 싫어서 라는 단순한 이유도 있지만, 정돈된 카페에 가면 나도 조금 정돈된 채로 바깥을 구경하며 산만한 생각들이 점차 없어진다.
투명한 물 잔을 가만히 응시한다. 손으로 세게 쥐면 금방 쨍그랑하고 깨져버릴 것만 같다. 필터 커피를 한 잔 시키고 커피를 기다리며 물 한잔을 마신다.
투명하고 맑은 유리잔을 거뭇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나 약간 탁해졌었구나 알아차리며. 카페에서는 쳇 베이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내가 느끼기에 낮고 약간 루즈해지는 음성이다. 비로소 내 시간을 얻은 기분이다.
에어팟을 새로 샀다. 기존의 에어팟과 다른 점은 노이즈캔슬링이 잘 된다는 것과 음악을 들을 때 귀가 덜 아프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귀에 꽂아놓기만 하면서,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로지
소리의 질감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람이 세게 불면 바람의 결만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소리가 들린다.
외부의 소음을 잠시 조용히 시킨 채로 내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 선물로 받은 크레용과 펜. 종이에 요새 느꼈던 감정을 그려나간다.
그림을 그릴 때 중요한 것은 글자를 전혀 적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내 마음의 상태를 그림으로만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단어를 쓰고 싶은 마음을 지웠다.
꽃과 화분. 꽃은 봄이 오길 기다리면서 선물했던 꽃다발들을 떠올렸다. 내게 선물해 주기도 하고 지인에게 당신을 떠올리며 골랐다고도 하면서.
작은 사치를 부리며 꽃을 산다. 수명이 짧은 꽃이 더 오래 펴있길 바라며 오히려 꽃을 자주 들여다본다. 내 방에 키우는 분재 화분이 있는데 들여온 지 얼마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잎에 분무를 안 해줘서 그런지 잎이 시들시들 건조하다. 그 친구와 한 달가량 지내면서, 내 마음도 비슷하게 건조하고 무기력했다. 햇살이 드는 지금. 봄이 오니 조금 정신이 들었는데 이제야 내 상태를 헤아려본다. 급하게 물을 주고 자주 들여다본다. 창가에 두길 반복하는데, 괜스레 속상했다.
달빛에 환했던 날. 달빛을 보며 염원하던 것을 읊어보고 달빛 만으로 거리를 훤히 비출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방 안이 훤히 드러난다는 것을 안 날. 잠들기 전 달을 바라보며 한동안 있었다.
근 한 달을 돌아보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 이렇게 치유가 되다니 자주 그려야겠다.
그 후로도 가볍게, 순간의 기분을 나타내는 그림도 그렸다. 날이 풀리고 따뜻한 공기를 느꼈던 하루
봄이 왔음을 실감하고 소매에 꽃무늬 포인트가 있는 노란 셔츠를 꺼내 입었다. 그림에는 달달한 디저트와 커피, 밝은 마음을 켜주는 인상들을 그렸다.
작고 단순한 마음을 바라게 되는 요즘
길을 걷다 보면 차츰 복잡한 마음이 스르르 풀어진다
해가 갈수록 짧은 격언이 와닿는다.
결국 돌고 돌아 규칙적인 생활과 행복의 강도보다
빈도를 높이기. 무리하지 않고, 마음을 잘 돌봐주기
작은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