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일상을 재료 삼아 시 쓰기
끝이 없는 터널 속을 걸은 적이 있다라고 나는 썼다.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을 지나면 너는 분명 그 터널의 길이만큼 성장해 있을 거야라고 누군가가 귓속에 대고 말했다 그 말을 길게 늘어뜨려놓고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정착지가 없는 비행기 안. 도착 예정 시간은 이미 한참을 지난 상태에서
곧 비행기가 착륙할 예정이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앉아 기다리세요 비행기는 여전히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것도 일련을 잇는 거겠지 과정이라는 게 그러니까
부스럭 비닐 소리가 들렸다 창 밖에는 바람이 불었고 차창이 조금씩 흔들렸던 거 같은데
여자는 두 손가락으로 빵을 조금씩 떼어 아이에게 나눠주었다 흘러내리는 머리를 대강 묶은 여자가 빵에만 온 신경을 몰두하며 야금야금 빵 한쪽을 아이와 나눠먹고 있다
입을 벌려 빵을 달라고 하는 아이에게 여자는 마침내 한쪽 손바닥을 펴 보이고 빵이 없다고, 감쪽같이 사라진 게 빵이라고 빵이라고 발음했다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다가 뒤에 앉은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뻐끔뻐끔 무언가를 발음하지만 나는 그 뜻을 여자처럼 단번에 알아맞히지 못한다
아이와 나 사이에 벌어진 틈으로 아이가 하는 말을 입으로 받아 적는다
모방은 최고의 걸작이다 그런 것을 믿은 적도 있었다 사람은 고유한 것을 갖고 있대
가진 것은 셀 수 없이 적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
당신의 말투를 따라 하고 한없이 느리게 모방하며 네 것이라고 명명되는 그것을 훔쳐내서 내 것이라고 말하며
비행기는 순회한다 어떠한 도착점 없이 하늘에 네 것이 어디 있어
구획을 하지 않으며 경계는 흐려진다 눈을 떴을 때 텅 빈 극장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올라가는 단어를 하나씩 발음해 본다 영화를 만든 사람 영화를 처음 시작한 사람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것인데 그것은 경계가 흐려지고 잠시 시간을 벌이는 것과도 닮았다 크레딧에 글자들이 모두 올라가고, 내가 앉은자리에 뒤를 돌아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행기의 바퀴가 땅 위를 기어가다 미끄러진다 땅과 비행기의 틈이 좁혀지면 여기는 땅, 여기는 하늘
구획된 장소와 시간. 비행기가 정착하며 시끄럽게 달렸을 때 방금까지 과거였던 것들이 현재의 시간으로 맞춰진다 미래라고 여겼던 시간이 낱낱이 밝혀진다
영화에선 몇 개월 후라고 자막이 달린다 몇 개월 후에 사람은 터널의 길이만큼 성장해 있고 시간이 흐른다는 건 분명 좋은 거야 보장된 미래이니까 난 가끔 영화처럼 내 삶을 편집하고 싶더라 과정 없이, 누군가와 지내는 시간 동안 모방 없이 초점이 나간 그 순간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