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영영 잃어버리고 싶다.
손에 든 짐이 많으면 꼭 한 가지는 잃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흘려들은 채로 ‘내가 얼마나 꼼꼼한데 소지품 하나 못 챙기겠어.’라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요즘에는 도서관에 다닌다. 점심도 도시락을 싸고 다니는데 나에겐 예쁜 도시락 가방을 대롱대롱 들고 다니는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백팩에 도시락 가방을 놓지 않고
일부로 손바닥만 한 도시락 가방을 따로 마련해서 들고 다니고 싶었다. 내 도시락 가방은 연두색 배경에 잔잔한 꽃무늬가 그려져 있고 손잡이는 나무로 되어있다.
‘이름도 어쩌면 도시락 가방이지.’ 귀여운 그 이름을 생각하며, 가방에 애정을 가지던 참이었다.
도시락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탔는데, 내리고 나니까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이다.
무엇보다 그날은 유독 더운 날이었고 가방에 도시락 가방 외에도 책을 몇 권 들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내린 곳보다 한 정거장 전에 내리게 되었는데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홀랑 두고 나온 것이다. 거기엔 도시락 가방 말고도 휴대폰을 놓고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휴대폰으로 노래를 들고 있었겠지만 요새는 버스에서 그날 읽어야 할 분량의 책을 읽어서인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내가 버스에 두고 내린 후에 든 생각은
당혹스러움도 있겠지만, 약간의 해방감도 있었다. 휴대폰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당장 핸드폰이 없어진다면?’이라는 주제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휴대폰을 산다. 그런데 사게 된다면 어떤 휴대폰을 사게 되지?라는 생각에 미치자 내가 갖고 있는 휴대폰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갖고 있는 휴대폰에서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휴대폰에 등록된 번호, 갤러리에 있는 사진 등을 떠올려 봤지만 크게 중요한 거 같진 않았다. 갤러리는 보관함에 연동되어있었고, 번호는 다시 전달받기만 하면 되는 일들이었다. 그렇다면 휴대폰 메모장에 적혀있던 단상들은? 조각조각 키워드만 적어 두었지만 아직 날 것이기에 다시 모으면 그만이었다.
하루에 피부처럼 옆에 두는 휴대폰이 이렇게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니. 그런데도 길을 걸을 때 음악을 듣거나, 심심하거나 외롭다는 이유로 SNS를 들락날락거렸던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또래보다 핸드폰을 늦게 가지게 된 편이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에야 핸드폰을 가지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번호를 교환하고 단톡방을 만들고 집에 간 후에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나누었던 대화들이 궁금했고 부러웠다. 그때 나는 내가 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가 스마트폰을 가지지 못해서.라고 느꼈다.
그래서 부모님께 핸드폰을 사달라는 편지도 쓰고, 울면서 부탁도 해봤지만 엄마는 완고했다. 스마트폰은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성인이 된 이후에 다시 생각해 보니 최근에 너무 쉽게 물건을 손에 쥐고, 끊임없이 연결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마주할 때면 부모님의 고집이 약간은 이해되기도 했다.
그래서 잠깐의 깨달음을 얻고 나서, 내가 한 일은 우습게도 버스 회사에 전화를 한 일이다. 영영 못 찾는 상황을 바라면서도 당장은 없이 살 순 없었나 보다.
다행히도 버스 회사에서 도시락 가방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고, 몇 시간 후에 내가 탄 버스가 순회를 한 후에 전달받게 되었다. 스마트폰 없었던 몇 시간 동안 아예 연락도 할 수 없고 뭔가 보는 행위를 멈추니 해방감이 들었다는 생생한 기분을 남긴 채로. 어렸을 때의 호기심처럼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오래 간직하는 마음을 얼마나 잊고 살았는지 스마트폰을 쓴 지 8년이 지났고 어쩌면 8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을 영영 잃어버린 것만 같다. 없었을 때는 스마트폰이 생기면 ‘한 사람의 세계가 다시 생겨나는 게 아닐까.?‘라는 순수한 호기심도 어느새 사그라들고. 그저 빈 화면에 갇혀 있는 내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보는 것을 내려놓고 생생하게 살아야지.라는 마음을 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