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매년 여름 가족여행을 떠났다. 동생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라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기왕 나가는 거니까 서울에서 보기 힘든 자연 속으로 가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너무 멀지 않고, 동생이 먹기 좋은 음식을 파는 식당과 동생이 누워 몇 바퀴 돌 만큼 거실이 넓은 숙소를 원한다. 휠체어 밀기 수월한가? 가는 길에 들르는 장애인 화장실은 어떤가? 따지다 보면 우리 집 가족여행은 힐링과 거리가 먼 여행이 된다. 다른 가족들보다는 쭈니가 편하고 즐거우면 됐지, 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다녔다.
(*쭈니 = 동생을 부르는 애칭, 희귀 난치병 질환인 미토콘드리아 근병증과 함께 살고 있음.)
쭈니는 앉아서 이동하는 걸 불편해한다. 오래 앉으면 척추 측만이 심한 탓에 엉덩이 한쪽이 빨갛게 변하고, 앉은 채로 기저귀에 오줌을 싸면 찝찝해서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거리가 멀지 않으면서도 여행 간 느낌은 나는 바다로 자주 떠났다. 안 보이고 안 들리는 쭈니도 바닷바람에 날려오는 짠내만으로 여행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쭈니가 매년 여행 때마다 ‘우와~ 올해는 좀 업그레이드됐는데? 엄마, 아빠, 히야, 누나가 신경 좀 썼는데?’하는 느낌을 받았으면 했다. 그래서 어느 해는 차를 카니발로 바꿨고, 다음 해에는 괜찮았던 숙소를 또 예약하고, 병원 동료 추천으로 수유쿠션도 사보았다. 몇 개는 확실히 실패고 몇 개는 대충 좋아하는 듯하다. 말 못 하는 동생에게 괜찮은지 물을 수는 없지만..!
갈 때마다 느낀다. 가족 여행도 무척 품이 들고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친한 사람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여행에 갔다가 싸우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지 않나. 여행에서 하고 싶은 일은 다 다른 반면에, 여행을 통해 만족을 추구한다는 점은 다 같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이걸 하고 싶은데, 쟤는 저걸 하고 싶대. ‘하.. 왜 저래?’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해본 적.. 나만 있는 건 아닐 거다. 여행 중 싸움을 피하려면 대화하고 양보하면서 '중간'을 찾아야 한다. 우리 가족은 ‘쭈니에게 맞추자’ 생각하고 나서 여행과 관련된 선택이 편해졌다. 한 명에게 맞추면 빠르게 선택할 수 있다. 결국은 엇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라 결과도 좋다.
담배 아니고 빨대임. 안전벨트 했음.
[호텔에서 울고 싶어지다]
어느덧 쭈니가 163cm에 56kg다. 누군가에게 안겨야 하는 쭈니이기에 여행이 쉬운 일은 아니게 됐다. 다행인 건 쭈니 덩치가 작았을 때 엄마가 웬만한 여행을 다 시도했다는 거다. 엄마는 쭈니가 세상에 태어난 이상, (못하면 어쩔 수 없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쭈니가 엄마 품에 폭 안길 만할 때에 기차여행, 배 여행까지 다녀오고, 마지막 비행기 여행을 떠났을 때다. 해외는 엄두가 안 나서 삼촌네와 제주도를 갔다. 아빠가 출장으로 끌어모은 마일리지가 있어 서귀포에 있는 칼호텔에 묵을 수 있었다. 그때 엄마는 일부러 사람이 적은 8월 중순을 택했다. 혹시나 사람 많은 곳에 쭈니를 데리고 갔다가 그들의 여행을 방해할까 걱정이었다고 한다. 아마 그때는 장애인에 대한 노출도가 그리 높지 않았을 때라 그런 걱정을 했을 만도 하다. 그런데, 그 호텔에서 엄마의 걱정을 덜게 해 준 일이 있었다.
오빠와 나는 호텔 수영장에서 웃으며 노는데 엄마는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쭈니도 수영장에 발을 담가봐야 할 텐데’. 비수기라 사람이 적긴 했지만 어쨌든 호텔에 묵는 다른 사람들도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엄마는 고민하다가 ‘일단 해보자’ 정신이 발동해 호텔 직원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제가 장애 아이를 키우는데요. 아이가 지금 호텔 방에만 있어요. 형이랑 누나는 저기 아빠랑 수영장에서 노는데, 얘도 수영장에 발 담그고 저도 같이 담가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만약에 수영장 이용하는 다른 손님들한테 문제가 되면 안 하고요. 근데 괜찮다면 아이 발은 한 번 담가보고 싶어요.”
“아무 상관없습니다. 아이와 어머님 또한 저희에게는 손님이십니다. 지금 수영장에 다른 객실 손님이 몇 분 안 계시니까 제가 가서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직접 할게요.”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직원분께서는 엄마의 걱정이 무색하게 흔쾌히 답변했고 직접 수영장으로 나가서 손님 한 분 한 분께 양해를 구했다. 손님들은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엄마 쪽을 바라보며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어 보내셨다. 얼굴엔 미소를 띤 채였다.
엄마는 호텔방에 들어가 쭈니를 데리고 내려왔다. 썬베드 두 개를 이어 붙여 쭈니를 눕혀 놨다가 바닥에 수건을 깔고 물을 끼얹기도 하고, 엄마가 품에 안고서 발도 담가주었다. 엄마가 하는 대로 얌전히 있었던 걸 보면 쭈니도 싫지 않았던 듯했다. 손님들은 쭈니와 엄마에게 특별히 눈길을 주지 않았고 엄마는 그래서 편하게 물놀이를 즐겼다. 엄마는 그때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좀 과장된 표현인 것 같지만 엄마에게는 그날 햇살이 유독 밝아 보였겠구나, 그런 생각은 든다.
[공항 갈 때 챙기세요, 솔직함을]
엄마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공항 검색대 통과도 쉽지 않았다는데, 그건 쭈니가 여행마다 들고 다니는 약이 향정신성의약품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미리 대학병원에 가서 관련 서류를 받아 놓았다. 공항에서는 아이 상태를 진단하고 약도 확인했다고 한다. 잔걱정이 많은 엄마지만, 해결할 때는 늘 정면돌파를 택한다.
“뭔가 불안할 때는 그냥 솔직하게 물어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아빠는 '뭐, 가다 걸리면 얘기하지' 이 정도였거든? 근데 엄마는 걱정이 되는 거야. 만약 얘기를 안 했다가 걸리면, 나 혼자만 부끄럽고 끝나는 게 아니라 너희가 뭐 때문인지 모르는데 '우리가 잘못했구나' 느껴야 되잖아. 그게 싫어서 일단 당당하게 얘기하고, 저기서 '안 되면 안 된다고 얘기하겠지' 이런 마음이었어. 상연이는 그냥 좀 불편한 아이지, 부끄러운 아이는 아니거든."
엄마는 동생을 키우며 벽에 가로막힌 듯한 순간을 여러 번 지나왔을 것이다. 그때 내가 성인이었다면 엄마의 걱정을 좀 덜어줄 수 있었을까? 옆을 쳐다봐도 다 챙겨야 하는 식구들만 있는데 엄마는 어떻게 늘 웃을 수 있었을까. 엄마의 과거는 늘 미스터리다.
솔직하게 말하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자랐는데도 나는 그다지 솔직한 사람으로 크질 못했다. 글을 쓸 때도 잘못이나 민망한 감정은 감추느라 바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해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솔직하게 다가가야 읽는 사람도 공감한다. 더 나아가 자기 이야기를 시작할 용기가 생긴다. 무엇보다 나는 솔직하게 살아온 엄마의 삶을 너무나 존경한다. 엄마처럼 살고 싶은 내가 그렇게 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걸 쓰는 지금, 올해 여름엔 가족 휴가를 가지 못했다. 가족여행에 큰 역할을 하는 아버지가 바쁘기 때문이고, 장마가 길었기 때문이고, 오빠의 스케줄도 나의 스케줄도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올해 가족여행은 첫 가을 여행이 될 것 같다. 동생이 좋아할 만한 곳으로 목적지를 정한다는 건 그대로겠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바다를 좋아한다. 이제는 이 취향이 동생 것인지 우리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 전부의 취향이 같아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지. 취향이 비슷하다는 건 우리 가족이 그만큼 함께했고 마음이 같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공통된 취향이란 가족이 주는 소속감 중 하나다. 나는 오래도록 이 소속감을 차에 태우고 함께 여행하고 싶다.
가족여행을 다녀오면 몸은 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쭈니가 잘 놀다 왔다는 만족감이 근육통을 이긴다. 우리가 아니면 여행을 갈 수 없는 존재가 있어 내 몸을 일으키는 삶. 살아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다. 다른 가족들이 동생에 발 묶여 살 것 같지만 오히려 더 능동적으로 살게 된다. 남을 먼저 챙기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기쁨이 상상보다 크다. 신경 쓸 게 많아서 주변을 자주 둘러보니 여행의 기억은 생생히 남는다. 휠체어가 자갈에 걸리거나 경사로 없는 식당을 마주할 때는 막막하지만,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다고 머리를 굴리니까 위기 대처 능력도 는다. 무엇보다 그걸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함도 몇 배가 된다.
이렇게 떠나기 힘든 가족도 가족여행을 한다. 가족여행을 미뤄왔다면, 많이 생각하지 말고 한 명의 취향 따라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