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무척이나 좋아했던 한 배우의 마약 사건이 터졌다. 아직 사실관계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라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은
'도대체 왜?'라는 것이다.
돈과 명예를 다 가진 사람이 왜 불나방처럼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는 드는 걸까?
그에 대한 해답은 우연히도 최근에 읽게 된 헤르만 헤세의 고전소설 '데미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머리를 도끼로 한데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책은 도끼다'라고 했던 박웅현 작가의 말이 실감 났다.
우선 '데미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에 대해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헤르만 헤세는 여러 가지 정신적 문제를 치료하면서 융의 심리학을 접하게 되고 이에 심취했다고 한다. 데미안 속에는 융의 심리학 이론들이 등장인물을 통해 녹아들어 있다.
융은 사람에게 '이중적인 모습'이 있으며 이는 페르소나와 그림자로 나뉜다고 한다.
페르소나
페르소나는 원래 가면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사람의 자아가 성장하는 과정 중에 사회적 요구들에 의한 반응으로 형성되어 밖으로 표출하는 공적인 얼굴이다. 실제 성격과 다를 수 있으며 타인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한다. 한 개인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가치관이 생겨나고 그에 맞는 페르소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림자
페르소나의 반대개념으로 인간의 마음 중 무의식의 측면에서 존재하는 또 다른 열등한 나를 의미한다.
결국 사회적으로 바르고 선하다는 이미지의 페르소나를 쓴 사람은 자신의 그림자인 열등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감추면서 결국 나쁜 유혹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가 이 개념을 정확하게 드러내준 예라는 생각이 든다.
목소리도 좋고 연기도 잘하고 가정적인 이미지 - 페르소나
(무엇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열등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약사건에 연루 - 그림자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사회 지도층의 예상치 못한 탈선도 마찬가지이고, 악플러 중에 의외로 평범한 사람이 많다는 것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이제 소설 데미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인공 싱클레어는 10살 무렵 이 세상이 두 세계로 되어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부유한 부모에게서 완전히 보호받는 세상(온화한 광채, 맑음과 깨끗함, 청결한 옷, 정돈된)과 함께 어두운 세상(무시무시하고, 유혹하는, 무섭고, 술 취한 사람들, 악쓰는 여자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우리도 10살 무렵이 되면 부모의 손을 점점 떠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며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되므로 이것은 싱클레어가 성장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상황을 묘사한 것 같다.
싱클레어는 남자들이 흔히 하는 세 보이려는 생각 때문에 사과를 도둑질을 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크로머라는 동네 양아치로부터 이를 어른들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을 당하게 된다. 결국 싱크레어는 크로머에게 종속되어 일종의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일종의 빵셔틀 같은 입장이 됨)
그때 구원자 같은 '데미안'이라는 친구(실제로는 몇 살 많음)가 나타나 싱클레어에게 크로머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것을 가르쳐준다. 여기서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성장을 이끌어주는 인도자를 상징하고, 크로머란 친구는 융의 심리학에서 그림자를 의미한다. 결국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그림자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행동과 그가 처한 상황을 부모가 알고 실망하게 될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 너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어떤 사람 앞에서 그렇게 두려워 떨면, 그 사람은 생각을 해보기 시작하는 거야. 이상하게 생각이 되는 거야, 궁금해지지. 그 사람은 생각하게 돼, 네가 이상하게도 잘 놀란다고. 그러고는 계속 생각하지. 사람이 저러는 건 바로 겁이날 때인데라고. 겁쟁이들은 언제나 불안하지.....
그게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 없어.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주었다는 것에서 비롯하는 거야. 예를 들면 뭔가 나쁜 일을 했어봐, 그리고 상대방이 그걸 알고. 그럴 때 그가 너를 지배하는 힘을 가지는 거야...."
이 글을 읽고 내가 그동안 두려워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나는 도대체 왜 그들이 두려웠을까?
결국 내가 두려워했던 이들은 내가 밝히기 어려운 그림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 '페르소나'를 벗겨 내 치부인 '그림자'를 드러내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힘 있는 사람들(선생님, 팀장, 특정 빌런)이 나를 비난하거나 협박할 때 내가 진짜 두려워했던 것은 사람들이 나를 부족하고 약하게 그리고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같다. 한마디로 그들이 내 그림자를 드러낼까 봐 전전긍긍하며 나를 지배하도록 힘을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이 OO 배우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협박을 당하고 돈을 갈취당했다고 한다. 그 사람을 두려워했다기 보단 자신의 그림자가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누군가에게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주었다'는 말이 강한 울림을 준다. 주변 사람들 중에 명품을 두르고 화려한 삶만을 SNS에 공유한다거나,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필사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겐 그것들이 일종의 갑옷 같다. 물질적인 가면이 벗겨지면 벌거벗은 사람처럼 초라한 자신의 그림자를 남들이 알아챌까 봐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SNS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듯 보인다. 흡사 노예 같다. 소셜노예. 그건 SNS를 보는 이들에게 나를 지배하는 힘을 주는 게 아닐까?
이제는 페르소나가 벗겨질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의 그림자 역시 자연스럽게 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지질한 구석도 있고 친구가 잘되면 축하해 주는 척하지만 엄청 질투도 한다. 게으르기도 하고 탐욕도 있다. 손해 보기 싫어하고 덤벙되기도 하고 소심한 성격이라 이불킥도 많이 한다.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이고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
결국 융의 말대로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 그리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는 길인 것 같다. 내가 좋아했던 그 배우분도 이번기회를 통해 자신의 양면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좀 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 좋겠다. 진심으로...
*데미안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
사실 이해하기 무척 어렵네요 ㅠㅠ 책을 통해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되면 또 공유하겠습니다.
단 한분이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