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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떡꿀떡 Feb 20. 2022

나는 가끔 정글 속 모글리를 꿈꾼다

  우리 아들은 4.3kg의 우량아로 태어났는데 정말 얼마나 튼튼한지 말도 못한다. 여태 9살까지 키우면서 38도 이상의 열이 난 적은 세 번정도인 듯하고, 당연히 응급실에 간 적도 없다. 싱글맘으로 혼자 키우다보니 늘 마음 한켠 걱정거리였다. 애가 만약에 열이 나서 갑자기 응급실에 가거나 입원하게 된다면 짐을 어떻게 싸들고 가지? 출산가방 준비할 때처럼 항상 집 한쪽에 싸두어야 하나?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이제 아이는 9살이 되어 잠깐 엄마가 집에 가서 짐 챙겨오는 정도는 혼자 기다려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또 몸을 만져보면 뱃살도 많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딴딴하니 근육질의 느낌이다. 장롱 면허인 나는 원체 몸쓰는 일에는 자신이 없어 앞으로도 운전을 할 마음이 전혀 없다. 운전 연수도 받아보긴 했는데 받는 내내 그냥 무서워서 눈물이 줄줄 났다. 그래서 항상 뚜벅이로 지하철에 버스로 돌아다녀야만 했는데 얼마나 잘 따라다니는지 아이가 다섯살일 때는 2만보를 걸어다닌 적도 있었다. 항상 튼튼하고 체력이 받쳐줘서 인지 짜증도 적고 잘 웃는 밝은 아이였다. 내 처지에 너무 다행인 아이라고 생각했다.


  또 우리 아이는 정말 밝고 순수하다. 영리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인지 영악이라고는 없다. 요즈음 아이들 같지 않은 아이다운 아이라고 칭찬도 많이 들었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도 얼마나 예뻐해주셨는지 마지막 날에는 서로 같이 사진을 찍으시겠다고 난리셨다. 나 또한 세상 이문에 빠른 사람이 못되놔서 인지 이런 순수함에 아이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너무 좋았다.


  학교에 입학을 하고 ADHD로 진단을 받게 되면서 선생님들께 전화가 정신없이 걸려올 때마다 나는 자그마한 공상에 빠져들었다. 어느 아마존 열대 우림 속에서 빤스만 걸치고 자유롭게 정글을 누비며 뛰어다니는 상상을. 체력도 좋고 활동적인 우리 아이가 얼마나 밝게 웃으며 날으듯 뛰어다닐까 하고. 나 또한 매일 집걱정에 돈걱정 없이 과일이나 따먹으면서 사람들 시선 신경쓰지 않고 세상과 단절 되어 맘 편하게 살아가는 상상을.


  안다. 나도 말도 안되는 상상인거. 아이의 뇌가 발달하는 속도가 세상에서 요구하는 속도보다 느려서 그렇지 언젠가는 발달하고 따라잡고 비슷해지는 날이 올거라는 것도 확신한다. 여태 잔병치레 없이 엄마 속썩이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줬으니 이 정도 아픈거는 다행으로 알고 열심히 잘 키워보자고 늘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그런데 그래도 나는 자꾸만 정글이 생각난다. 그냥 세상과 단절해 버리고 정글에 가서 어떠한 평균의 속도도 요구하지 않고 아이의 속도를 즐기고 싶다. 내가 아이의 속도에 맞춰 사는 건 힘들지 않다. 세상의 속도에 너무 뒤처지지 않게끔 아이를 끌고 가는 것이 힘들지, 내 맘 같아선 아이의 속도에 다 맞춰서 아이랑 싸울 일 없이 즐겁게 웃기만 하며 살고 싶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정글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덜 발달된 사회성과는 별개로 얼마나 친사회적인지 사람들을 너무 좋아한다. 아직도 실망하지 않고 ‘엄마 나도 2학년 되면 친구들 잘 사귈 수 있겠지?’ 하고 묻는다. 정글 얘기는 눈물과 함께 내 가슴 속에만 묻어두고 ‘그럼! 그래서 항상 해마다 반도 바뀌고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거야. 2학년 가서 친구들 얘기도 잘 들어주고 규칙도 잘 지키면 당연히 친구들이 좋아하지!’라고 밝게 웃으며 대답한다. 나는 이제 일주일 후면 시작될 2학년에는 ‘정글? 그런데를 왜 가?!’하고 말할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또 다른 공상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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