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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떡꿀떡 Feb 17. 2022

약 한알에 울고 웃는…

  아무리 찾아도 찾아도 없다. 아마도 먹지 않고 어디로 숨켜다가 버리는 모양이다. 이번에 새로 바뀐 맛은 너무 시다고 했다. 그렇다고 캡슐을 통째로 삼키지도 못했다.


  수면장애를 앓고 있는 나는 전날 밤 먹은 신경안정제들의 작용으로 아침에는 정신이 혼미하다. 그래서 아이의 아침 식사, 학교에 가져갈 준비물, 옷가지 등등을 전날밤 다 챙겨놓고 자는데 아마도 아침에 내 감시가 소홀한 틈에 약을 버려버리는 모양이다.


  ADHD가 있는 아이들은 아무리 간곡한 부탁을 하고 이유와 동기를 설명해줘도 순간의 충동성을 이겨내지 못한다. 스스로 집중해 학교 갈 준비를 하지 못하는 아이를 난리를 내고 채근해 겨우 내보내고 나도 나갈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아차 싶었다. 아 근데 약껍질은 어디있지? 얘가 쓰레기를 스스로 버리는 애가 아닌데 약껍질만 안보이네?


  쓰레기통을 이잡듯이 뒤지며 절망만 밀려왔다. 당장이라도 학교에 전화를 걸어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의사선생님이 하루도 빠트리지 말고 2주를 꼭 먹어야 약효과를 알 수 있다고 신신당부 했는데 정말로 안 먹고 버렸느냐고. 아니면 있다 돌아올 아이를 후드려팰 몽둥이라도 준비해 놓고 싶었다.


  이도저도 할 수 없었다. 나갈 준비를 하던 나는 그만 절망에 빠져 넘어지고 말았다. 겨우 감았던 머리만 다시 말리고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다시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한알씩 챙겨먹고 안대를 쓰고 누웠다.


  어떻게 해야 내 정서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었다. 밖에 나가 볼일을 본다 해도 제정신이 아닐터였다. 그 마음상태를 바깥에서 추운 날씨에 달달 떨며 점심한끼 사먹을 돈 없어 초코렛이나 몇알 먹고 말 몸으로 겪어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방구석에 드러누워서 아무리 마음을 진정시켜보려 해도 진정될리가 없었다. 아이가 약을 잘 먹고 병세가 좀 호전이 되야 내가 나가서 제대로 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가 있는데……. 따위의 생각들이 줄줄이 이어져나올 것이기 때문에, 잡생각들을 피해 나가볼까 했던 거였기 때문에 방바닥이 절대 나를 진정시켜줄리 없다.


  역시 날 진정시켜줄 건 신경안정제 뿐인 것이다. 이 조그마한 것이 효과는 또 신통방통하게 좋다. 한알만 말고 한웅큼 집어 삼키고 수면제도 또 통하나 탈탈 털어 꿀꺽꿀꺽 먹으면 배도 부르고 얼마나 맛있고 좋을까 싶다. 그 유혹을 이겨내고 한알씩만 먹었다. 아이 데리러 갈 시간에 맞춰 알람도 맞추고 눈도 가리고 귀두 틀어 막았다.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도움인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들에게 내 모든 소원을 빌어본다. 자고 일어나면 아이를 보고 화내지 않게 해줘. 자고 일어나면 절망스러운 생각들이 몰려오지 않게 해줘. 오늘도 내일도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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