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찾아도 찾아도 없다. 아마도 먹지 않고 어디로 숨켜다가 버리는 모양이다. 이번에 새로 바뀐 맛은 너무 시다고 했다. 그렇다고 캡슐을 통째로 삼키지도 못했다.
수면장애를 앓고 있는 나는 전날 밤 먹은 신경안정제들의 작용으로 아침에는 정신이 혼미하다. 그래서 아이의 아침 식사, 학교에 가져갈 준비물, 옷가지 등등을 전날밤 다 챙겨놓고 자는데 아마도 아침에 내 감시가 소홀한 틈에 약을 버려버리는 모양이다.
ADHD가 있는 아이들은 아무리 간곡한 부탁을 하고 이유와 동기를 설명해줘도 순간의 충동성을 이겨내지 못한다. 스스로 집중해 학교 갈 준비를 하지 못하는 아이를 난리를 내고 채근해 겨우 내보내고 나도 나갈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아차 싶었다. 아 근데 약껍질은 어디있지? 얘가 쓰레기를 스스로 버리는 애가 아닌데 약껍질만 안보이네?
쓰레기통을 이잡듯이 뒤지며 절망만 밀려왔다. 당장이라도 학교에 전화를 걸어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의사선생님이 하루도 빠트리지 말고 2주를 꼭 먹어야 약효과를 알 수 있다고 신신당부 했는데 정말로 안 먹고 버렸느냐고. 아니면 있다 돌아올 아이를 후드려팰 몽둥이라도 준비해 놓고 싶었다.
이도저도 할 수 없었다. 나갈 준비를 하던 나는 그만 절망에 빠져 넘어지고 말았다. 겨우 감았던 머리만 다시 말리고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다시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한알씩 챙겨먹고 안대를 쓰고 누웠다.
어떻게 해야 내 정서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었다. 밖에 나가 볼일을 본다 해도 제정신이 아닐터였다. 그 마음상태를 바깥에서 추운 날씨에 달달 떨며 점심한끼 사먹을 돈 없어 초코렛이나 몇알 먹고 말 몸으로 겪어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방구석에 드러누워서 아무리 마음을 진정시켜보려 해도 진정될리가 없었다. 아이가 약을 잘 먹고 병세가 좀 호전이 되야 내가 나가서 제대로 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가 있는데……. 따위의 생각들이 줄줄이 이어져나올 것이기 때문에, 잡생각들을 피해 나가볼까 했던 거였기 때문에 방바닥이 절대 나를 진정시켜줄리 없다.
역시 날 진정시켜줄 건 신경안정제 뿐인 것이다. 이 조그마한 것이 효과는 또 신통방통하게 좋다. 한알만 말고 한웅큼 집어 삼키고 수면제도 또 통하나 탈탈 털어 꿀꺽꿀꺽 먹으면 배도 부르고 얼마나 맛있고 좋을까 싶다. 그 유혹을 이겨내고 한알씩만 먹었다. 아이 데리러 갈 시간에 맞춰 알람도 맞추고 눈도 가리고 귀두 틀어 막았다.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도움인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들에게 내 모든 소원을 빌어본다. 자고 일어나면 아이를 보고 화내지 않게 해줘. 자고 일어나면 절망스러운 생각들이 몰려오지 않게 해줘. 오늘도 내일도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