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헴. 다들 알런지 모르겠다. 나 어렸을 때 인기였던 천계영의 ‘오디션’이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그 만화 속 명대사를 따라해보았다.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실은 정확히 따라해보자면 ‘난 울고 싶을 땐 글을 써.’ ‘난 화가 날 땐 글을 써.’ 정도가 지금의 나에게는 더 알맞겠다.
여태 울고 싶었던 일, 화나는 일이 없어서 브런치를 이제야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저러한 일들은 너무 차고 넘쳐서 진빠지게 하기 때문에 정말 쓸 정신, 여력, 기력 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기운이 넘치냐면 물론 어려운 상황은 그대로 이거나 더 안 좋아졌기 때문에 더더욱 아니다.
그저 더 이상은 글이라도 쓰지 않았다가는 까딱하면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서울에 올라올 때 처음 연락처를 싹 바꿨고, 아이랑만 단둘이 지낸지 만 6년이 넘었기 때문에 연락올 곳이라고는 1도 없다. 내 핸드폰이 울릴 때는 광고 문자 올 때, 스팸 전화 올 때, 학교나 공공기관의 연락들 말고는 없다.
원체도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친하게 지내던 전주의 지인들 조차도 서울과의 거리차이 때문보다도 내가 경제적으로 계속 어려워지기만 하니 도저히 연락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그 친구들 형편도 뻔히 아는데 가끔 보너스를 받았다며 나에게 10만원씩이라도 보내줄 때 너무 고마웠지만 나는 갚을 길이 없으니 나 잘지내니 이런거 보내지 말라며 스스로 연락을 접게 되었다. 나중에 형편 피면 내가 먼저 꼭 연락해야지 다짐했지만 그런 날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또 처음에는 각종 복지 단체나 정부에서 주관하는 각종 복지 제도의 문도 많이 두드려 보았다. 그런데 나는 직장 생활 당시 연말정산 할 때 항상 꼼꼼히 챙겨서 전부 다 돌려받는 편이기 때문이었는지 내가 낸 세금보다 나라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는 것 같아 직장인들에게도 미안하고 국민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나도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생활하고 살고 싶었다. 물론 나도 부가가치세를 통해 납세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보니 이제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기부금의 경우는 이 양심의 가책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심한데, 과연 내가 이 기부금을 받아도 되는가?의 당위적인 의문이다. 내가 기부자라면 나같은 사람이 기부금을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기부금은 정말 아프리카에 기아로 굶주려가는 아이들이나 당장 수술을 받지 못하고 죽어갈 것 같은 환우들에게 가야만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좋아서 결혼했고 누가 등떠밀어 이혼한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처음 한 두번은 너무 상황이 급해 감사히 도움을 받았지만 이 역시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형편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충분히 많은 고마우신 분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든 더 아껴쓰고 좀만 더 버텨서 내가 일만 할 수 있게 된다면 설마 내가 내 새끼 하나 어떻게든 못 키우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 덕분에 내가 아프거나 아이가 아플 줄을 몰랐어서 거기에 코로나 상황까지 터져버리니 버텨야 하는 시간이 내 예상보다 길어지게 되버린 것 뿐이다.
이제 더 이상은 월세를 내지 못하면 퇴거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뭐라도 알바라도 구해야 했다. 아이를 학교에서 봐줄 수 있는 시간은 8시부터 5시까지이기 때문에 학원을 최소 한 곳이라도 꼭 보내야 한다. 학원에서 6시까지 수업을 받고 어떻게 30분 정도만 학원에 맡아달라고 부탁해보아야 될동말동한 상황인데 다니던 학원에서조차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니 나중에 다시 오라고 거절당하고 나니 참 어디 보내기가 마땅치 않다. 어차피 이제는 오래도 보낼 형편도 못되지만 말이다.
그러니 나는 저 8시에서 5시 사이에 할 수 있는 알바가 꼭꼭꼭 필요하다. 아이가 항상 충동성 때문인지 문을 활짝 열고 닫지를 않고 다니기 때문에 내가 꼭 문단속을 하고 나갈 수 있는 일자리 였으면 좋겠다. 전화가 오면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게 학교가 가까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화,수 8시부터 3시까지 하는 20분 정도 거리의 편의점 알바를 하나 구했다.
편의점에 가자마자 이력서, 면접, 근로계약서, 교육까지 모두 합쳐 한시간만에 끝내주시고는 사장님은 황급히 사라져버리셨는데 아마도 며칠 혼자 날을 새우신 듯 했다. 모르는 게 있어도 사장님의 단잠을 깨우기가 어려워 쩔쩔맬 때 대부분 손님들이 화내시지 않고 친절히도 기다려주시거나 되려 알려주셔서 참 놀라웠다.
그렇게 정신 없이 첫 근무를 마치고 아이를 찾아 돌아오며 나는 계속해서 나를 위로했다.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차근차근 근무 시간을 늘려 가야지. 처음부터 욕심내다 사고나는 거야.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점점 더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래 정말 너무 급하면 아이 재워놓고 CCTV라도 해놓고 택배 야간 일당 알바라도 하고 오자. 그렇게 걸어오는데 구청에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어떠한 긴급 주거 지원 제도도 5월 중순이 되야 입소할 수 있으니 진행 상황을 알려드리며 그 때까지 힘내어 버티시기를 바란다는 전화였다. 무어라 말도 못하고 네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는 끊었다. 그러고는 방바닥에 드러누워 버린 나는 갑자기 엉엉 울음이 터져 나와버렸다. 아이가 샤워 하다 말고는 물을 뚝뚝 흘리며 나와 엄마 무슨 일이야 하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 때에 울리는 핸드폰 알람 소리. 브런치의 작가가 되셨음을 축하한다는 알람 소리. 그리고 그 뒤로 저장되어 있던 글, 화가 나서 쓴 글, 눈물이 나서 쓴 글 들을 올릴 때마다 울리는 누군가의 라이킷! 백수 주인 닮아 울릴 일 없던 나의 핸드폰도 이제 일 좀 하기 시작했다.
너무 고맙다. 나의 핸드폰 너머 당신의 핸드폰 너머, 여기까지 스크롤을 내려주고 라이킷을 눌러 준 얼굴도 모르는 당신. 여태 내가 잘못 살아온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 속에 이제는 나 혼자 끄적여 쓰기라도 하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그래도 글을 쓸때만큼은 조금이나마 눈물도 분노도 불안도 진정이 되기에 쓴 아무도 보지 않아도 좋은 나 혼자만의 생존신고같은거였다.
그런데 아무도 보지 않아도 좋다는 말은 거짓이었나 보다. 하나도 좋고 둘도 좋다. 누군가 내 얘기를 봐주고 보내주는 라이킷은 나에게 이렇게 살았어도 괜찮아 앞으로도 괜찮아 질거야하고 보내는 따스한 응원소리 같다. 언제 웃어본지도 모르겠는데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이 라이킥 덕분에 미소를 머금게 되고 덜 화내게 되고 덜 울게 된다. 언젠가에 언젠가에는 ‘난… 기쁠 땐 글을 써.’라는 제목으로도 글을 올리게 되는 날이 올것 만도 같은 좋은 예감이 드는 듯도 하다. 약먹고 잠이나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