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제부부의 이. 스. 포 한달살기 후기 (상편) -
부부는 살면서 닮아간다고 말한다.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생활환경에서 살아가면서 닮아간다는 설명이다.
우리 부부는 퇴직하고 나서 같이 있는 시간이 아주 많아졌고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서로 잘 몰랐던 부분까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34년을 같이 산 부부지만 성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알게 되었고 어설프게 알고 있던 상대의 성격을 더 알아가면서 가끔씩은 갈등도 겪기도 한다.
MBTI와 우리 부부 ( ENFJ vs ISFJ )
나무위키 백과사전에 우리 부부의 성격을 알아보았다.
나는 ENFJ 형이다.
·온화하고 적극적이며 책임감이 강하고 사교성이 풍부하고 동정심이 많다.
·상당히 이타적이고 민첩하고 인화를 중요시하며 참을성이 많다.
·미래의 가능성을 추구하며 편안하고 능란하게 계획을 제시하고 집단을 이끌어가는 능력이 있다.
나의 부인은 ISFJ 형이다.
나는 E 형에서도 아주 강한 외향향이고 나의 부인은 I 형에서도 심하게 집콕스타일인 내성형이다.
나는 J형으로 분류해도 극단적인 J 형이어서 사전에 계획이 되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여행출발을 할 수가 없다. 모든 일에 계획이 잡히고 그 계획대로 진행해 가려는 타입이다. 반면 나의 부인은 P에 가까운 J형이다.
부부는 서로 닮은 배우자를 선택하기도 하고 전혀 반대 사람을 선택하기도 한다. 남녀가 사랑을 할 때 서로 성향이 다른 남녀가 이성적으로 더 끌린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서로 다른 성향의 이성에게 더 끌린 것 같다.
그리고 어려운 결정을 한다. 작년 10월 우리 부부는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가기로 했다.
한 달 동안 부부가 하루 24시간 같이 보내고 사소한 다툼도 없이 잘 마무리하고 돌아올 수 있을까?
성격이 다른 부부 둘이서만 하는 여행이니 전략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한 달 동안의 여행을 위한 3가지 기본 전략을 세워 본다
첫째, 두 사람이 동시에 화를 내지 않는다.
둘째,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셋째, 사소한 문제가 생기더라도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여행 가는 일이 가슴이 떨려서 잠을 못 이루었다면 나이 들어 떠나는 자유여행은 불안과 걱정으로 잠을 설치게 된다. 젊었을 때와 다르게 여행의 목표도 달라졌다. 퇴직 후에 떠나는 여행의 최종목표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기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여행의 목표가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라면 떠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치만 인생이란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을 경험하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던가!
막상 29일의 장거리 여행을 떠나자니 한 끼 먹는 맛있는 한식 비빔밥도, 마음 편히 보는 TV 한글뉴스도, 따뜻한 물로 편안하게 샤워하는 욕실도 모두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일말의 후회도 없다. 그냥 전진"
인간극장 “상국 씨가 풍화리로 간 까닭은?”에 나오는 상국 씨의 부인 치요노부 케이코 여사장님의 구호가 생각났다.
일정표를 완성하고 비행기와 숙박지를 예약하고 매일 걷기 운동을 하면서 일정을 외운다. 모든 일정이 머릿속에 장기기억으로 들어올 때까지... 외우고 또 외운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손님을 가이드해야 하니...
난생처음 비즈니스 좌석으로 유럽으로 간다.
아내가 10년 동안 신용카드로 모은 마일리지를 한꺼번에 다 써버리고 만다.
더 글로리라는 넷플릭스 드라마에 승무원인 최혜정의 이런 대사가 생각난다.
너, 세상에서 완벽하게 계급이
존재하는 곳이 어딘지 알아?
비행기 안이야~,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 그 사이엔 달랑 커튼 하나인데
아무도 그걸 못 넘어~
넌 그냥 한 끼 밥값도 안 되는 돈이나 받으면서
계속 그렇게 커튼 뒤에 있으란 소리야~
난 넘어갈 테니까~
행복은 상대적인 것 같다.
아무리 가진 것이 더 많아도, 상대가 더 많이 가지면 나는 불행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상대가 나보다 덜 가지면 행복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 것 같다.
비즈니스 라운지와 기내에서는 집에서 먹는 식사 보다도 비교가 안 될 만큼 형편없는 식사에도 불구하고 상대 보다도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잠시 행복해진다. 불행해지기 가장 쉬운 방법은 나보다 나은 남과 비교하는 것인 줄 알고 있어도 나는 어쩔 수 없는 범부(凡夫)였다.
부부란 무엇인가? 굿 파트너의 작가 최유나는 말한다.
드라마에서는 가족이 되어버린 "남"이라고 표현했는데,
부부란 '타인'이란 본질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가족으로서의 울타리가 필요한 존재이다. 서로 애정과 신뢰는 유지하면서 타인으로 이해하는 마음과 예의도 갖춰가야 한다. 가족의 진정한 의미, 부부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한달살이 여행이 멋지게 시작되었다.
여생을 함께 할 상대방에게 아직도 모르는 영역이 많이 남아있고, 나도 보여줄 부분이 많이 있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서 서로 조금 더 알아갈 것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화를 내지 않으면 부부 싸움이 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