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깨비를 잡던 시절

아파트 화단에서

by 박냥이

그러고 보니 한 10여 년 전 우리 아파트의 화단에는 풀도 많았고, 메뚜기와 방아깨비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지금에는 화단의 풀은 짧게 깎여 있고, 아마 방충 작업도 종종 진행하는지, 벌레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방아깨비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메뚜기는 약간 더 복잡한 구조랄까? 뭔가 눈부터 머리 등 쪽 같은 게 더 오밀조밀한 구조라서 어떻게 보면 조금 징그럽다. 그런데 방아깨비는 거의 잎사귀와 흡사한 구조라서, (내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다) 메뚜기보다 덜 징그럽다. 그리고 다리를 잡으면 위아래로 왔다 갔다 방아질(?)을 하니 잡는 재미도 있다. 크기도 다양했다. 엄청 작은 크기부터,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손가락보다 더 큰 크기까지.

곤충들이 많았기에, 곤충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꼽등이 같이 잘 보지 못한 것은 무섭다.


그 시절만 해도 아파트의 지상 주차장에는 차들이 거의 없었고, 지금보단 넓은 공간에서 자전거도 타고 인라인스케이트도 타고 하루 종일 놀았다. 살이 찔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자전거의 기어를 처음 조작해본 것도 그 시절의 일이다.

동네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노는 일도 잦아서, 어른들이 한 공간에 모이면 아이들은 다른 한 공간에 또 따로 모여서 각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어른들의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는 다 같이 잠들기도 했다.

2002년인가 월드컵 때는, 아파트 공터 가운데에 커다란 티브이가 놓였고, 다 같이 돗자리를 펴고 응원하기도 했다. 이웃들은 각자 경조사가 있을 때 서슴지 않고 챙겼고, 필요할 때는 이웃집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몇 년 사이에 신도시가 조성이 되고, 그때 같이 놀던 이웃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못 보던 사람들이 새로 들어왔고 이전만큼 가까이 지내진 않는다. 이제는 흔한 도시의 풍경 같이, 이웃의 얼굴도 모르는 시절이다.

조그만 소음에도 서로 날이 선다. 옛날에는 시도 때도 없이 서로의 집을 드나들었고, 부부싸움 소리가 들려도 그러려니, 때로는 걱정까지 하던 시절이 있었다. 몇 층의 친구 집에 가면 두 끼 정도는 거뜬히 얻어먹으면서 인형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옆 아파트의 친구와 '우리 결혼할 거예요~'하고 손잡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의 이웃사촌들은 '이웃사촌'이라고 부를만했고, 주말이면 다 같이 산으로 바다로 계곡으로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참 호시절이었다. 지금은, 옆집의 누가 윗집 밑집의 누가 어떻게 되어도 솔직히 모를 것이다. 한마디로 교류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나마 옆집 이모랑 약간의 교류는 있는 편이다.

아파트의 주차장은 차들로 꽉 들어찼고, 좁아진 공터에서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어린이들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비가 오면 흙탕물에 모래를 적셔서 공을 만들어 놀곤 했던 놀이터는 텅 비어있는 시간이 많고, 모래는 치워지고, 아마 더 안전하다는 합성소재의 타일이 깔린 지 오래다.

역할놀이를 했던 특색 있던 지붕이 있는 놀이기구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서서 타고 앉아서 타곤 했던 그네도 다 그저 형식적으로 갖추어놓아야 하는 듯한 대강의 모형들로 대체되었다.


그 시절에 어린아이였어서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는, 그런 환경이 없으니까...

만약 먼 훗날 나의 아이가 생긴다면, 이런 이야기들은 그저 부모님의 '옛날이야기'로 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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