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여러 사람이 있다. 가족과 친구, 동료 등 여러 분류로 나눠볼 수도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들 모두 소중하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주변에 사람이 꽤 많았을 때는 이러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렸을 때 술자리를 좋아해 하루에도 아는 사람이 수명씩 생기고 일주일만 지나도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수십 개씩 쌓였다. 의미 없이 쌓인 숫자는 기반이 약했고 세월이라는 거대한 바람 앞에 힘없이 형태를 잃었다. 많던 사람이 없어지니 당장 주변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이 됐다. 그래, 그들이 주변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부류고 그렇기에 소중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창작과비평 계간지 2021 겨울호에 수록된 이주란 작가의 '파주에 있는'(이하 본작) 소설을 읽고 감상 이전에 향수에 빠졌다. 고등학교까지 파주에서 나와 그 시절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그 이후 본작을 통해 느낀 바가 찾아왔다. 본작은 분량이 매우 짧아 내용을 다루기 애매해서 감상 위주로 서평을 작성하려 한다.
널 생각하면 거기부터 생각이 나. 아주 없어지는 건 아니고 다시, 음, 다시 다른 식으로 이어갈 거래.
우리 주변에는 여러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주변 사람이라고 인식되기 위해서는 공유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서로 만났고, 무엇인가를 했고, 즐거웠거나 슬펐거나 화가 났거나 감정적인 교류가 있었을 수도 있고, 그저 편안했을 수도 있는,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추억이라 표현하면 논리의 비약일까? 아니라고 가정하고 이어가 보자면, 그런 추억은 각자 기억의 교차점이라고도 표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많은 것을 잊었고 잊을 리가 없으리라 단언했던 것들도 기억나질 않는다는 것에 두 사람은 동의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 중 망각이 있다. 사람들은 망각을 두려워하지만, 우리는 망각 없이 살아갈 순 없다. 모든 것을 전부 생생하게 기억한다면 너무 끔찍할 것이다. 살짝 손가락 끝을 베였던 적이 생생하게 떠오르다가 갑자기 사랑했던 사람과 행복하게 나누었던 대화가 지금 당장처럼 느껴지면 눈앞에 있는 현실을 볼 여유는 사라진다. 또, 그 기복을 감당할 위인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망각은 분명 축복이지만, 슬픔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토록 사랑했던, 뜨거웠던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 끝 모르게 메아리치던 슬픔 속 갇혀 있다가도 어느샌가 웃고 있는 자신이 보인다. 망각 덕분에 혹 때문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함이 없다는 진리는 축복이기도 하고 사무치는 슬픔이 되기도 한다.
과학적으로 우리 몸의 거의 70%는 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조금 감상적으로 말하자면, 기억으로 채워져 있지 않을까 헛소리해보고 싶다. '나'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너'도 인지하고 '우리'와 '너희' 등을 인지하는 능력은 기억으로부터 오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기억의 교차점에서 숨 쉬고 있다.
-도서 정보
출판사 : 창비
작가 : 이주란
도서명 : 창작과비평 2021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