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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May 28. 2022

단죄의 달콤함

주홍글씨 서평


 죄를 지어본 적 있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면, 아마 당신은 성인군자일 것이다. 만약 '죄를 짓는다'는 행위를 '현행법상 규정에 의하여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경험'이라고 한정 짓는다면, 죄가 없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죄'라는 것은 그 정도로 관대하지 못하다.  


https://ko.dict.naver.com/#/entry/koko/b0dca66b8bd74626a6978e48b2dd53ea


 아직도 '죄'라는 단어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는 인간의 행위라는 뜻이 남아있다.


http://naver.me/56IRD8Mu


① 야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② 우상을 섬기지 말라.

③ 하느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지 말라.

④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⑥ 살인하지 말라.

⑦ 간음하지 말라.

⑧ 도둑질하지 말라.

⑨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⑩ 네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안식일은 금요일 해 질 녘부터 토요일 해 질 녘까지라고 한다. 금요일에 늦게까지 야근한 적이 있거나, 불금을 즐기며 자정이 넘은 시간에 귀가한 적이 있다면, 당신은 죄인이다. 물론 불합리하다. 낡은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거에는 분명 현대인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죄라고 규정했을 수도 있다. 그때는 죄였지만 지금은 아닌 것이 있다는 말은 죄에 절대적인 속성은 없다는 의미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 그렇다면 우리는 여태까지 이런 형체도 없는 잣대를 들이대며 이토록 죄인을 손가락질했던 것일까? 죄인을 욕하며 비난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일까?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이하 본작)는 십계명 중 7번째, "간음을 하지 말라"를 어긴 '헤스터 프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헤스터 프린'의 가슴팍 옷 위에는 늘 주홍색 글씨 'A(adultery, 간통)'가 자수로 새겨져 있다.


http://naver.me/Gl51AmNV


 성경에서 주홍색은 죄악의 색이라고 하며, 이러한 행위는 실제로 1636년 식민지 시절 미국에 존재했던 법령이라고도 한다. (상기 링크 참조)


 "저 여자에게 들리겠어요. 저 여자가 수놓은 그 글씨의 한 바늘 한 바늘이 그녀의 가슴속을 찔렀을 겁니다."


 소설 속 대부분 인물은 '헤스터 프린'을 죄인으로 치부하고 동시에 맹목적으로 비난한다. '헤스터 프린'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죄를 뉘우친 다음 사회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이는 없다. 마음껏 자신들의 분노를 배설할 대상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죄인의 고통을 눈으로 확인하며 반면교사를 상기할 사람도 있으나, 그저 억압된 감정을 분출하기 위해 죄인의 등장을 기다린 이도 분명히 있으리라. 그리고 그들이 비난을 통해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어째서 죄가 되지 않을까?


 "(...) 또 회개하면 그대의 가슴에 붙은 주홍글씨를 떼는 데 도움이 될 것이오."


 "그 글씨는 너무나도 깊이 낙인찍힌 듯하여 떼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제 자신의 고통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고통까지도 제가 견디어 낼 작정입니다."


 '헤스터 프린'은 당당했다. 원치 않는 결혼이었기에 남편인 '로저 칠링워드'에 대한 사랑이 있을 리 만무했다. 또 '로저 칠링워드'가 2년 동안 돌아오지 않은, 생사불명인 상태에서 '아서 딤즈데일'과 연애를 시작했다. '헤스터 프린'은 의리가 있는 인물이다. 초반 자신의 죄를 밝히며 주홍글씨라는 낙인이 찍혀도, 끝내 불륜 대상이 '아서 딤즈데일'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목사인 '아서 딤즈데일'보다 숭고한 '헤스터 프린'은 희생을 알고 있었다.   


 펄은 날 때부터 어린이의 세계에서 버림받은 아이였다. 악의 씨요, 죄의 표상이요, 죄의 산물인 펄은 세례를 받은 아이들 가운데 섞일 권리가 없었다.


 '헤스터 프린'의 사생아이자 딸인 '펄'은 '헤스터 프린'과 '아서 딤즈데일'의 죄를 상징하는 듯하다. '펄'은 또래에 비해 괴팍하고 다루기 어려운 아이였다. 날 때부터 축복받지 못한 아이의 성격이 날카로운 것은 비단 선천적인 요인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발걸음이 어디를 가도, 무거운 짐을 진 그녀가 어디서 휴식을 원해도 주홍글씨는 그녀의 주변에다 두려움과 공포의 빛을 던졌습니다.


 따가운 시선 속 '헤스터 프린'은 용맹했다. '로저 칠링워드'가 복수귀가 되어 지독하게 괴롭혀도, '펄'의 아버지이자 사랑하는 이인 '아서 딤즈데일'이 솔직해지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 챙겨도 '헤스터 프린' 무너지지 않았다. '헤스터 프린'은 자신의 행보에 부끄러움이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했던 결혼, 남편의 실종, 그 이후 시작된 사랑은 당당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결국 '아서 딤즈데일'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살한다. 끝까지 '헤스터 프린'을 감싸주지 못하는 '아서 딤즈데일'은 죽음으로 회피한 비겁자로 보이기까지 했다. '아서 딤즈데일'은 신여성 '헤스터 프린'을 담기엔 그릇이 너무 작았다.


 서두에 던진 의문을 다시 끌고 와 보자. 우리는 여태까지 이런 형체도 없는 잣대를 들이대며 이토록 죄인을 손가락질했던 것일까? 죄인을 욕하며 비난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일까? 죄인을 비난할 것이면 죄부터 규정해야 한다. 그러나 규정된 대로 죄인이 맞다면 그는 보통 처벌을 받은 경우가 많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이미 처벌을 받은 이에게 같은 죄목으로 낙인을 찍는 행위는 정당하지 않다. 혹자는 합당한 벌을 받지 않았기에 사회적 매장도 일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너무 위험하다. 그렇다면 죄목에 비해 과한 벌을 받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힘을 모아 구제해야만 하는 것인가 물어볼 수도 있다. 애초에 합당하다, 그렇지 않다 따위 판단조차 주관적이다. 불특정 다수 비전문가에 의한 주관적인 해석으로 형량이 정해진다면, 그것은 아마 무법지대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죄인의 '죄'보다 '인'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어떤 범죄를 저지른 인간에 대해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행태는 그 자체로 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죄를 힐난하며 단죄하는 동안 얻는 쾌락 속 반성은 없다. 그저 스트레스 해소에 그치는 비생산적인 활동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것이 죄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또 다른 부조리와 모순을 낳을 것이 뻔한 길은 굳이 갈 필요가 없다.


 스스로 돌아보면 답은 나와 있다. 죄인을 향해 돌을 던지려 할 때, 어떤 방식이든 그 돌은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수 있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인간은 극소수일 것이며, 단죄의 쾌락에 빠진 인간은 절대 그러한 성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늘 경계하고 조심하자. 죄인을 향한 비난은 객관적이고 공개된 사실까지로 제한한다면, 죄인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해 본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문예출판사

작가 : 너새니얼 호손

옮긴이 : 조승국


 -참고 자료


곽승엽, 『주홍 글씨』와 『제인 에어』에 나타난 두 여주인공들의 자유의지, 2016,

정태진, 『주홍 글씨』 다시 읽기,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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