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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Jun 12. 2024

은진미륵의 재발견

논산 1 / 관촉사

서논산IC를 내려서니 연무대ㆍ훈련소를 연상케 하는 펼침막, 황산벌ㆍ계백이 들어간 상호 등이 눈에 들어 온다. 논산하면 훈련소가 떠 오른다. 연무대역에서 입영열차를 내려 새벽이슬 맞으며 수용연대로 입소하던 날이 어제 같다. 

반야산 관촉사 

논산하면 또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다. 관촉사 은진미륵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미륵불이 있는 사찰로 올라 있던 관촉사를 먼저 찾는 것은 여행자로서 너무나 당연하다. 관촉사로 간다. 


천왕문을 들어서면서 관촉사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아서 놀란다. 유명 관광지 입구에 흔히 있는 기념품 가게, 토속 음식점도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도 그렇게 넓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옛날 같이 수학여행단의 필수 코스는 아닌 것 같다. 깊은 산중의 운치있는 절간이 아니라, 동네 한가운데에 위치한 야트막한 반야산 기슭의 작은 절이다. 어쩌면 반야산의 규모에 어울리는 크기다. 사람이 없어 번잡하지 않아 편안히 돌아볼 수 있다. 

대광명전

그래도 고려 전기에 창건된 오래된 절이라 고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고목나무 그늘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신도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 준다. 나이 든 행자가 계단의 낙엽을 쓸고 있다. 


계단의 끝 지점에 반야루가 있다. 반야루의 1층은 절을 출입하는 주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불광보조(佛光普照)'라는 현판(懸板)이 걸려 있다. 불광보조(佛光普照)라는 말은 부처님의 지혜광명이 일체 중생의 마음에 두루 비친다는 말이라고 한다.

반야루를 통과하여 계단을 올라서면 비로자나 부처님이 봉안된 주불전 대광명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새로 지은 거대한 규모의 본당이다.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법당 안으로 들어가면 천정이 높은 한 층 건물이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위압적이고 신비감을 느끼게하는 높이가 18 m에 이르는 '은진미륵'이 괴이한 모습을 하고 서 있다. 고려 전기에 제작된 은진미륵은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정식 명칭이며 국보 제323호다. 체구에 비해 얼굴과 손이 너무 크다. 어깨가 좁고 가슴과 허리가 구분되지 않는 거대한 원통형 몸집은 인체 비례로 볼 때 균형이 전혀 맞지 않는다. 특히 코, 입, 눈매와 불룩한 볼, 이중 턱의 모습은 자비스러움이나 인자함과는 거리가 멀다. 

은진미륵과 석등

유흥준은 이 모든 언발란스가 '의도적으로 했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민간신앙의 장승 이미지를 풍기는 은진미륵은 '파격적이고 토속적인 모습으로 민중을 불교세계로 끌어들이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 서 있는 석등은 형태의 장대함과 수법의 웅장함이 고려시대 제일 가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석등(보물 제232호)이다. 

연꽃무늬 배례석

부처님께 예를 올리던 연꽃무늬 배례석(유형 문화재 제53호)이 석탑과 함께 은진미륵 앞에 놓여 있다. 직사각형 화강암에 커다란 연꽃을 중심으로 양 옆에 그 보다 작은 연꽃 두 송이를 돋을새김으로 새겨 놓았다. 

관촉사 사적비
해탈문

관촉사의 중문 역할을 하던 석문으로 건립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은진미륵과는 연관이 없는 후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해탈문(문화재 자료 제79호)이다. 유흥준은 「관촉사 해탈문은 성벽의 암거처럼 낮고 두텁다. ㆍㆍㆍㆍㆍ아주 작고 질박하게 만들어졌기에 은진미륵은 상대적으로 더욱 거대해 보인다」며 평범하면서도 차원 높은 미적 감각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윤장대

반야루로 돌아 나오는데 윤장대가 설치되어 눈길을 끌었다. 불교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성물이다. 발원문을 윤장대 안에 넣고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단다. 그런데 돌리기가 만만찮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기도 희망하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반공청년단이 세운 우남 이승만의 추모비(왼쪽), '논산 육군훈련소 무사퇴소 발원기도' 안내 펼침막

매표소를 지나 올라오는 계단 옆에 반공청년단이 세운 우남 이승만의 추모비가 서 있다. 어울리지 않은 장소에 뜬금없이 서 있는 독재자의 추모비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몇 걸음 더 걸으니 '논산 육군훈련소 무사퇴소 발원기도 접수중' 이라는 펼침막도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논산에도 포로 수용소가 있었다는 기록, 들머리에서 본 '자유수호 순국지사 위령비'와 함께 논산하면 훈련소가 크게 다가오는 점에서 이 지역의 정서를 어렴풋이 읽을 수 있다.


보통 사찰에서 대학입시, 임용시험 발원기도 접수 안내는 많이 보았는데 훈련소 무사퇴소 발원기도 안내는 보기드문 광경이다. 입시를 앞둔 학부모들에게 팔공산 갓바위 발원기도가 영검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곳 석조관음보살상은 승진 발원기도에 영검하다고 알려져 있단다. 


관촉사를 나와 탑정호를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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