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강경읍으로 옮겨간다. 금강 하류에 위치한 강경은 과거 군산, 부여, 공주 등을 연결하는 수상 교통의 요지여서 크게 번성하였던 곳이다. 강경포구와 호남선 강경역은 일제의 수탈 목표였던 논산ㆍ호남 평야 쌀의 대량 물류 중심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때문에 강경은 기독교 등의 종교문화, 상업과 교육이 크게 발달했던 곳이다. 이러한 강경의 근대문화유산을 답사하려면 먼저 강경읍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옥녀봉 봉수대를 오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노을빛 물드는 옥녀봉 마을에서 개화기의 한옥 교회를 만난다. 옛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이었던 목조건물(국가등록문화재 제42호)로 최초의 신사참배거부운동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옥녀봉 공원 입구의 주차장에 주차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이 옥녀봉 자락에 일제강점기 경제 수탈의 한 축이었던 조선식산은행의 관사와 사택이 있었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지점장 관사만 남아 있다.
옥녀봉 진입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강경천과 논산천이 합쳐져 금강과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이 나온다. '이것저것 나누지 않고 하나로 합쳐 도저하게 흐르는 것이야말로 강물의 일이 아니런가'하고 이곳의 풍경을 여유롭게 묘사한 글을 담벼락에 적어 놓은 함석지붕 작은 집 한채를 만난다.
논산 강경과 탑정호 일대를 배경으로 우리시대 아버지의 초상을 잔잔하게 묘사한 박범신의 감동적인 소설 「소금」에 나오는 그 소금집, 소설의 주인공 명우가 가출하여 새롭게 삶을 꾸려가던 보금자리로 설정된 집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무분별한 개발과 과잉 소비 등 인간의 탐욕이 부른 재앙이라는 분석을 불편해 하는 요즘 세태에, 「이 거대한 소비문명을 가로지르면서, 그 소비를 위한 과실을 야수적인 노동력으로 따 온 '아버지'들은 지금 어디에서 부랑하고 있는가. 그들은 지난 반세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아니 소비의 '단맛'을 허겁지겁 쫒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늙어가는 아버지들의 돌아누운 굽은 등을 한번이라도 융숭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라는 작가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옥녀봉을 오른다. 옥녀봉의 옛 이름은 강경산이다. 강물이 구비쳐 감아도는 금강 하류, 강경천과 논산천이 함께 어우러져 흐르는 강 언덕에 자리잡은 옥녀봉은 예로부터 아름다운 풍치를 자랑해 왔다.
그 옥녀봉 정상에 조선시대 통신수단이었던 봉수대가 자리잡고 있다.
아래로 한때 융성했던 강경포구가 내려다 보이고, 강건너 황산리에는 금강3공구 야구장이 여럿 건립되었다.
다시 강경역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강경 읍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강경근대역사문화 거리, 강경젓갈시장, 강경역사관, 강경역사전시관, 법원, 학교, 관공서, 버스터미널 등이 강경역 앞에 모여 있다.
나는 논산훈련소에서 기본훈련을 마치고, 이곳 강경역에서 광주 송정리 기갑학교로 이동했다. 50년전의 훈련병 시절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송재정을 거쳐 잔디 마당으로 내려오다 정겨운 이름의 가게를 만난다. 옥녀봉 구멍가게다. 손님은 별로 보이지 않는데 노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
너른 마당에 '강경 항일독립만세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미년 3월 10일과 20일, 강경 읍민들과 장꾼들이 옥녀봉에서 시작하여 강경시장과 강경읍 일본인 거주지였던 본정통을 돌면서 항일 독립만세 시위를 벌렸다. 이 두 차례의 만세운동의 시발점인 옥녀봉에 기념비를 세워 후세에 알리고 있다.
송재정 밑, 강나루가 보이는 언덕배기에 조선 말기 건축한 'ㄱ자형 초가 교회'가 있다. 2013년 복원된 한국 침례교 최초 예배지다. 당시 개설한 성경학교는 현재 대전의 침례신학대학이 되었다.
이 집은 조선말기 포목장사를 하던 지병석 집사의 집이었다. 이곳에 미 선교사가 강경침례교회를 설립했다. 민족정신 말살정책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일제는 1943년 교회를 폐교ㆍ방화하고, 이 부지를 몰수하여 신사당 부지로 만들었다.
옥녀봉공원을 내려와 관광안내소 길 건너 아치형 나무다리를 건넌다. 벌개미취가 연한 자주색 꽃이 피우고 바람에 나부낀다.
원산지 우리나라인 벌개미취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벌판에서 흔히 볼 수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꽃말은 「너를 잊지 않으리, 숨겨진사랑, 청초, 추억」 등 으로 알려져 있다.
우거진 갈대밭을 지나서,
강경포구로 간다. 과거의 영광은 흔적이 없고 선착장에 낚시꾼이 한가롭게 낚시하고 있다. 강물은 흘러 익산, 군산을 지나 서해로 나아간다. 우리는 차를 타고 젓갈시장으로 이동한다.
젓갈시장 거리에 들어오니 르네상스풍의 단층 건물이 위엄있고 웅장한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강경역사관으로 사용되는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건물(국가등록문화재 제324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이었던 건물로 약간 밖으로 튀어나온 4개의 기둥과 화강암 기둥머리와 장식, 이중문은 안전하고 굳건하면서도 세련미를 갖추고 있다.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뒷편에 강경구락부가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근대 사교ㆍ오락시설의 옛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다.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유럽풍 근대 건축물을 조성하여, 강경호텔ㆍ인터뷰 양과자점ㆍ인터뷰 커피하우스 등의 영업을 하고 있다.
강경은 젓갈의 고장이다.
매년 10월, 이곳 젓갈시장을 중심으로 강경젓갈 축제가 열린다. 200년 전통의 강경젓갈이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변천하면서 갱갱이 젓갈의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강경에 왔으면 젓갈 맛을 봐야지. 바지락 젓갈과 새우 젓갈 몇 통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