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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Nov 10. 2024

유럽 문명의 시작

신의 궁전, 아크로폴리스


에게해의 여명


    "여러분은 '에게해를 품은 두 개의 나라'에 낚였습니다. '그리스 + 튀르키예 11일' 코스는 이동거리가 만만찮습니다. 고속도로 투어라고 할 수 있죠. 일정이 빡빡합니다. 이스탄불에서 아테네까지 비행기로 온 길을 에게해를 따라 육로로 되돌아갑니다."


    인천공항에서 튀르키예 이스탄불까지 11시간 40분, 다시 환승하여 아테네까지 1시간 30분을 날아왔는데 가이드의 첫마디에 힘이 빠진다. 기대와 우려를 함께 안고 바닷가 시골마을의 작은 호텔에 도착한다. 호텔 앞에 에게해가 펼쳐진다. 앞으로의 험난한 일정을 우려하던 마음은 에게해의 파도소리에 묻힌다.

에게해의 여명


아테네와 올리브나무


    시차와 옆 방에 든 그리스 학생들의 떠들어대는 소리에 자는 둥 마는 둥 잠을 설치고 새벽같이 일어나 아테네관광에 나선다. 거리에는 가로수로 협죽도가  눈에 띄게 많다. '위험한 사랑'의 꽃말을 연상케 하는 연한 붉은색과 흰색의 꽃을 달고 있다. 이곳이 지중해 연안임을 알리는 또 하나의 수종은 물푸레나무과의 열대성 상록 활엽 교목 올리브나무다.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는다. 신화의 나라 그리스인만큼 그리스 로마 신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는 올리브나무와 여신 아테나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우스의 딸인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아티카 지역의 비옥한 땅을 갖고 싶어 했어요. 한편 제우스의 형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도 육지로 지배영역을 넓히려 했고요."

아크로폴리스 아래 공원의 올리브나무

    숙질간인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도시의 지배권을 놓고 경쟁한다. 아티카의 왕 케크롭스는 지혜로운 아테나 여신을, 아티카 시민들은 포세이돈을 섬기려 한다. 두 신의 대결은 좀체 결판이 나지 않았다. 제우스가 중재에 나선다. 도시를 위해 누가 더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지를 놓고 시민들이 선택하도록 했다. 민주정의 사고가 녹아나는 대목이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으로 땅을 내려쳐 샘을 파 주었다. 아테나는 기적의 나무, 올리브를 제시했다. 아티카 시민들은 포세이돈이 만든 소금이 나는 샘물을 제치고, 아테나가 제공한 기름을 짤 수 있는 올리브나무를 선택했다.


    "이렇게 하여 아티카의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아테나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도 아테네가 됩니다. 아울러 아테네 사람은 올리브나무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식량으로 약재로 쓰임새가 많은 올리브나무를 손하는 자는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하였다네요."

올리브나무 숲 뒤의 성채 위에 파르테논신전이 앉아 있다.


유럽의 시작


    그리스의 랜드마크, 아크로폴리스

    '평화, 지혜, 승리'가 꽃말인 올리브나무가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오르는 우리를 맞이한다. 가이드는 올리브나무 그늘 아래서 아크로폴리스를 설명한다.


    "아크로폴리스는 일리소스 계곡에 있는 해발 고도 156m의 바위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성채이자, 신들에게 바치는 성소였습니다. '아주 높은, 최상의'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크론'과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의 합성어입니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고대 유럽의 도시 중심의 가장 높은 곳, 곳곳또 다른 아크로폴리스가 있습니다아크로폴리스는 보통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말합니다. 민주주의와 철학, 연극, 과학, 예술 등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서 영향을 미친 아테네의 상징성 때문이지요."

아레오파고스에서 올려다보는 아크로폴리스

    일리소스 계곡에 깎아지른 듯 우뚝 솟은 성채, 아크로폴리스. 3면이 절벽으로 둘러싸고 있고 출입구인 서쪽 면만 열려있다. 그리스 문명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파르테논 신전과 함께 고대 예술 4대 걸작으로 꼽히는 프로필라이온, 아테나 니케 신전, 에레크테이온 신전 등이 모여 있다. 건축학적,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고대 유적지라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조금만 늦으면 관광객이 몰려 줄 서기에 진이 빠진다고 다그쳐 서둘러 나섰건만 매표소 앞에 대기하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매표소 앞의 안내문은 가이드의 긴 설명을 한 줄로 요약한다.

유럽이 여기에서 시작한다(EUROPE STARTS HERE!)

1. 파르테논 신전  / 3. 에르크테이온 신전 / 5. 프로필라이아 / 6. 아테나 니케 신전 / 15.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 18. 디오니소스 극장, (출처: 위키백과)

    히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매표소를 통과하여 조금 가다가 아크로폴리스의 남서쪽 아래에 위치한 웅장한 히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을 바라본다. 히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은 로마시대(161년) 유력 정치가이며 대부호였던 히로데스 아티쿠스가 죽은 아내생각하며 지어 아테네에 기증한 음악당이다.


    "5,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객석이 있습니다. 1951년에 부분적으로 복원하였고요. 190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름 축제 때면 밤하늘을 배경으로 음악회, 연극 등이 열린답니다."


    극장 건너편, 멀리 필로파포스 언덕이 보인다.

    "시와 음악의 신, '뮤즈'의 언덕이라 불리던 곳인데 로마 집정관을 지낸 필로파포스의 기념물을 만든 후부터 '필로파포스 언덕'이라 불립니다. 모레아 전쟁 때 베네치아군이 이곳에서 진을 치고 대포로 아크로폴리스를 공격하였다고 합니다."

히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멀리 필로파포스 언덕이 보인다.

    "바닥이 미끄러우니 디딜 때 조심하십시오."

    아크로폴리스로 오르는 길에 대리석이 깔려있다. 고급스럽게 치장했다기보다 대리석이 흔하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가이드는 추정한다. 아무튼 반질반질하게 닳아 걷기가 불편하다. 미끄러운 오르막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오르니 신전의 입구에 관람객이 빽빽하게 모여있다.


    프로필라이아

    고대 그리스 건축에서 프로필라이아는 기념비적인 관문을 뜻한다. 이는 도시의 세속적 부분과 종교적 부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다. 절의 입구에 세워 놓고 (여기부터 석가가 교화하는 땅, 사바세계로 들어가는) 경내임을 알리는 일주문인 셈이다.

아크로폴리스의 정문, 프로필라이아

    "아크로폴리스의 정문 격인 프로필라이아는 애초부터 지붕이 없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어 미완의 상태로 남았습니다. 파르테논 신전도 지붕이 없지만 이는 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된 것입니다."


    아테나 니케 신전

    계단 오른쪽으로 돌출된 건물이 있다. 니케 신전은 프로필라이아보다 작고 한쪽 옆에 있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다. 용케 고개를 돌려 사진을 찍는다. 정문의 일부인 줄 알았다. 이어 눈에 익은 파르테논 신전이 나타나고 인파에 밀려, 신전으로 간 가이드와 일행을 놓친다. 후기를 쓰면서 그게 니케 신전이라는 것을 안다.

    아테나 니케 신전은 아테나 여신을 모신 신전이다.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 니케는 그리스어로 '승리'뜻한다. 아테네 사람들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아테나 니케"로 부르며 받들었다고 한다.

아테나 니케 신전

    언덕 정상부의 파르테론 신전

    입구를 통과하면 파르테논의 서쪽 뒷면이 보인다. 철골 구조물에 싸여 있다. 그리스 정부는 1975년부터 대규모 복원 공사를 하고 있다. 주변에 대리석 파편이 흩어져 있다. 파르테논은 고대 아테네의 수호자인 아테나 여신을 위하여 지은 신전이다. 건축물의 주 재료는 대리석이다. 델로스 동맹의 위상이 가장 강성했을 때인 기원전 447년에 착공하여 15년 만에 완공하였다.

파르테논 신전의 서쪽 뒷면, 옛 파르테논 신전이 있었던 곳

    옛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 북쪽 건너편으로 먼저 간다. 파르테논과 에렉테이온 사이의 돌무더기는 뭐지?


    "이곳은 아테나 신을 모시는 옛 파르테논 신전이 있던 자리입니다.  '아테네 폴리아스'라고 불리던 신전은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되었습니다. 나중에 새로 지은 신전이 바로 밑의 에렉테이온입니다."

에레크테이온 신전

    에레크테이온 신전

    파르테논의 북쪽에 아테나와 포세이돈, 그리고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인 에렉테우스를 함께 모시던 에레크테이온 신전이 있다.


    "아테나와의 영역 다툼에서 패한 포세이돈은 분노하여 해일을 일으켜 아테네 해안을 쓸어버리려 합니다. 제우스가 이를 말립니다. 해상 무역으로 먹고살던 아테네 시민들이 바다를 지키는 포세이돈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겠죠. 두 신을 사이좋게 함께 모셨다고 하네요. 그럴싸하지요."


    신전의 남쪽 벽면에 우아한 자태를 한 여인상을 조각한 6개의 기둥이 서 있다. 에레크테이온은 이 여섯 여인 덕분에 더욱 유명해졌지요. 이 여인상은 모두 모조품입니다. 진품 중 다섯 개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한 개는 영국 박물관에 있다고 합니다."



전쟁과 약탈이 안긴 수모


    파르테논 신전은 3세기 무렵 큰 불이 났다. 그 뒤 정복자에 따라 쓰임새는 계속 변한다. 국가의 재무를 담당하는 건물로, 델로스 동맹의 금고로, 기독교 교회로, 그리스정교회 대성당으로 쓰였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지배 이후 모스크로 변했다가 오스만 튀르크 군의 요새 사령부가 된다. 모레아 전쟁 당시 오스만 튀르크 군의 화약고였던 파르테론 신전은 베네치아군의 포격을 받고 이어진 연쇄폭발로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오스만 튀르크 군은 베네치아군이 파르테논 신전에는 포격을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여 화약을 이곳에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북쪽 측면

    그 후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 주재 영국대사로 임명된 엘긴이 오스만 제국의 허가를 받아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군을 떼어내어 영국 박물관으로 반출한다. 그리스 정부는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군'의 반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파르테논 조각상의 일부는 파리 루브르박물관, 코펜하겐 등지에도 있다고 한다. 절반 이상은 언덕 남쪽 비탈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일부는 파르테논에 남아 있다.

    


다시 찾은 영광


     아크로폴리스 동쪽으로 돌아온다. 유네스코 로고와도 닮은 파르테논 신전의 정면 모습이 나타난다. 대리석 기와로 덮여 있었던 지붕은 사라졌고 아테나 여신상, 화려한 조각상은 없어졌다. 세로로 길게 홈이 파인 지름 2m, 높이 10m의 배흘림기둥 46개가 둘러싸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그 웅장함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고대 그리스와 아테네의 민주정, 나아가 유럽 문화권의 오랜 상징으로 인정받는다. 그리스의 유산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안에 포함되어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정면. 이 모습을 본 따 유네스코의 로고가 만들었다.

    파르테논 신전 동쪽과 남쪽에는 부서진 건축물 조각과 기둥이 널려 있다. 옛 영광을 다시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간의 신전 복원 역사를 안내하는 게시판이 담장처럼 늘어섰다.


    리카베투스 언덕

    그리스 국기를 게양한 전망대에 올라 아테네 시내를 내려본다. 동쪽 건너편에 우뚝 솟은 해발 고도 277m의 리카베투스 언덕이 다가온다. 늑대의 은신처였던 까닭에 '늑대의 언덕'이라는 뜻인 리카베투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리카베투스 언덕과 전망대

   "아테나 여신은 (훗날 아테네의 초기 군주가 되는) 막 태어난 아기 에리크토니오스와 뱀을 바구니에 담아 케크롭스의 딸들에게 맡겼답니다. 열어보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케크롭스의 딸들은 바구니를 열어 봤다고 하네요. 이 사실을 안 아테나가 화가 나서 산을 집어던졌는데 그것이 지금의 리카베투스 언덕이 되었답니다. 산 꼭대기의 하얀 건물은 19세기에 지은 그리스 정교회, 세인트 조지 예배당이고요."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땅으로


    디오니소스 극장

    남쪽 끝으로 자리를 옮긴다. 아래로 내려다본다. 디오니소스 극장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바친 원형 극장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으로 고대 아테네 연극과 예술의 근원지였습니다. 가까이 가보면 독특한 시설이 있는데요, 이채롭습니다. 소실되었던 것을 로마시대 때 재건축하면서 맨 앞줄 가장 좋은 자리에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디오니소스 극장, 그 뒤로 국립정원과 여러 박물관이 보인다.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올림포스 12 신 가운데 최고의 신인 제우스에게 바친 신전. 기원전 6세기, 참주(고대 그리스 초기 민주정이 위태로울 때 과도기적으로 정권을 장악한 권위주의적인 정치형태) 아테네 시대에 건설이 시작되어 2세기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완성되었다.


    "지금은 기둥 몇 개만 남아 작은 성당의 규모로 보이지만 원래 104개의 기둥이 있었다고 해요. 그리스 최대 크기의 거대한 신전이었고 합니다. 제우스의 위상에 걸맞게."

제우스 신전

    아테네의 랜드마크이자 고대 그리스 문명의 상징적인 건축물이 모여있는 신의 영역에서 고대 아테네인이 민주정을 펼친 인간의 땅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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