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의 권력의 중심이 아래로 이동하다. 신권통치에서 왕권통치로, 다시 귀족청치로, 더 내려가 평민의 정치 참여로. 아테네 역사 기행을 하는 우리의 발걸음도아테네의 가장 높은 곳에서 그 보다 조금 낮은 곳, 아레오파고스로 이동한다. 신권과 왕권의 상징적 장소에서 귀족정치의 흔적이 남은 곳으로.
아레오파고스
아크로폴리스 서북쪽 산 중턱에 있는 해발 115미터의 작은 언덕, 아레오파고스는 ‘아레스 신의 언덕’, 귀족의 회의장과 대법정이 있던 곳이다. 아테네 시민은 일정한 재산을 가진 귀족가운데 아르콘(행정관)을 선출하여 정치와 재판을 맡겼다. 이 대의정치제도를 아레오파고스평의회라고 한다.
"아레스 신은 딸 알키페를 농락한 할리로티오스를 죽입니다. 할리로티오스의 아버지인 포세이돈은 아레스를 신들의 법정에 고발하는데요, 신들이아레오파고스 언덕에 모여 최초의 살인 재판을 열었다고 해요.이후 인간의 법정이 되었답니다. 아레파고스라는그리스의 대법원 이름은 여기서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아르콘은 1년의 임기를 무탈하게 끝내면 평의회의 종신의원이 된다. 이러한 귀족의 정치 독점은 폐해로 나타난다. 기원전 462년 에피알테스와 페리클레스는 정변을 일으킨다. 많은 정치 권한이 아레오파고스에서 민회로 옮겨간다. 민주정의 길이 열린다.
언덕이라기보다 큰 바위덩어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아레오파고스 언덕
언덕이라기보다 큰 바위덩어리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가는 길은 조심해야 한다. 수천 년 사람의 발길로 반질반질하게 닳은 돌바닥은 아크로폴리스보다 더 위험하다. 하지만 금방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아고라가 훤하게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론 아크로폴리스가 올려다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재판부는 천심과 민심을 동시에 살핀다. 그 균형이 어긋나면 격변에 휘말린다. 재판관들이아크로폴리스을 올려다보면서 신의 정의를 헤아리고, 아고라를 내려다보면서 민심을 살피며 중용의 판결을 하기에 절묘한 장소다.
인간의 땅, 아고라
아고라를 내려다보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패키지여행의 한계다.
"고대 아고라는 아테네 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최초의 직접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민회가 열린 곳이지요. 서로 의견을 나누고, 인간사의 갈등도 해결하던 장소였습니다. 지금도 아테네 시민들이 자신의 주장을 펴던 연단이 남아 있습니다."
아레오파고스에서 아고라를 내려다본다. 왼쪽에 보이는 헤파이스토스 신전에서부터 오른쪽의 길다란 빨간 지붕의 박물관까지가 아고라다.
'함께 모이다'라는 뜻에서 유래해 '광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곳, 아고라(agora).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치와 학문을 꽃피운 인간의 장소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헤파이스토스 신전, 아레스 신전,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단, 스토아와 교회, 시장이 있던 곳. 신과 인간이 함께 하던 곳이다.
아고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고대 아고라의 전체 구조를살펴본다. 서쪽에 헤파이스토스 신전, 동쪽에 아탈로스의 스토아가 배치되어 있다. 사진의 왼쪽과 오른쪽 끝이다. 중간에 아레스 신전, 12 신 제단, 제우스 제단, 아그리파 음악당이 있고 동남쪽으로 또 다른 스토아와 법정, 아포스틀레스 교회가 보인다.
아탈로스 스토아
"스토아(Stoa)는 '기둥이 늘어서 있는 복도'라는 뜻입니다. 아테네에서 유일하게 복원이 끝난 그리스 유적인데, 고대 아고라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헤파이스토스 신전
사진을 확대해 본다.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신전이 보인다.
"기원전 5세기,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를 위해 지었다네요. 그러기에신전주변은도공의 작업장과 가게가 많이 있었다고 하네요. "
헤파이스토스 신전
아레스의 신전 터
헤파이스토스 신전 아래쪽에 전쟁의 신 아레스의 신전이 있었다.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유물은고대 아고라 박물관에 남아있다.
"제우스의 둘째 아들인 아레스는 전쟁의 남신입니다. 호전적인 성격과 달리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아레스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았다네요. 아레스는 아프로디테의 남편인 헤파이스토스의 눈을 피해 사랑과 미의 여신과 자주 밀회를 즐겼다고 하네요. 아프로디테를 사이에 두고 갈등을 일으킨 두 남신의 신전이 이웃에 있었습니다."
아레스의 신전 터
아그리파 음악당
고대 아고라의 중심부에 있었던 콘서트 홀이다.
"원래아그리파 음악당은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이었는데, 로마 장군 아그리파가 15년 음악당을 지어 아테네 시민들에게 기증했답니다. 오래가지 못하여지붕이 내려앉고,267년에는 전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네요."
아그리파 음악당 터
아포스틀레스 교회
고대 아고라 박물관 앞에 비잔틴 양식의 건물이 보인다. 아포스틀레스 교회다. 비잔틴 중기 건축의 특징이 살아있다. 정사각형 공간의 가운데에 돔이 있고, 돔을 중심으로 십자 모양의 건물이 교차한다.
아포스틀레스 교회
사도 바울의 전도지
언덕 입구에 성경 구절이 적힌 빗돌이 세워져 있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예수를 믿는 자를 앞장서서 박해하던 바울은 예수의 음성을 들은 후 마음을 돌이켜 먹고 기독교 전도 여행에 나섰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초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바울이 아테네를 찾아 전도할 때 이곳에서 설교를 했다고 해요."
언덕 입구에 성경 구절이 적힌 빗돌이 세워져 있다.
소크라테스의 감옥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많은 청년에게 큰 감화를 준다. 제자 크리아티아스가 공포정치 시대의 참주로 출현하자,그의 영향 때문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실제로 집권세력 반대파에 소크라테스 제자가 많았다. 아테네의 주류 지식인 집단인 소피스트(Sophist)들의 질시를 받았다. 소크라테스는'국가가 정한 신(神)을 부정하고,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피소된다. 그는 아고라의 시민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소크라테스가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한 달 동안 머물렀다는 감옥입니다. 원래는 철창이 없었다고 합니다. 노숙자들이 들어가기도 하여 철창으로 막았다네요. 믿거나 말거나."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었다는 감옥
올림픽과 마라톤
그리스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올림픽과 마라톤이다. 국립정원 남쪽, 길 건너편으로 간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판아테나이코스 경기장이 있다. 기원전 4세기부터 아테네 인들은판아테나이아 제전을 열었다. 수호신 아테나에게 바치는 축제로 운동 경기를 하던 장소다.
기원후 2세기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경기장을건설했지만 거의방치되었다. 1896년에 이르러 이곳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을 개최했다. 올림픽 개최국 대표에게올림피아에서 채화된 성화를
넘겨주는 곳이다. 2004년, 108년 만에 두 번째 아테네 올림픽이 열렸을 때 주 스타디움이 있었지만, 마라톤 대회만은 이곳에서 열렸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판아테나이코스 경기장
기원전 490년 아테네와 페르시아가 마라톤 평원에서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이 마라톤 경기의 기원이 되었다. 전령이 달려와승전보 전하고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그 거리가 42.195 킬로미터라는 이야기도 후대에 꾸며진 에피소드다.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거리는 36킬로미터 남짓된다. 1896년 처음 열린 마라톤 경기의 거리 역시 40킬로미터였다. 현재의 42.195km 공식 마라톤거리는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부터정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