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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Nov 14. 2024

와인 향이 가득한 쉬린제  마을

튀르키예 1


그리스인이 일군 산속 와인 마을


    로마제국의 동서 분할 이후 그리스는 동로마 제국의 정교회 중심지가 된다. 민족 구분이 없어지고 모두가 로마인이 되었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다.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를 지배하게 된다. 이 무렵 많은 그리스인이 고향을 떠난다. 그리스 지식인들은 서유럽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르네상스의 발흥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다른 한 유형은 그리스 반도의 평야 지대에 살던 농민들의 이주다. 봉건 영주로부터 풀려난 그리스 농노는 깊은 산간으로 숨어든다. 그리스 정교회 신도인 이들이 민족과 문화의 정체성과 언어를 잃지 않고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밀레트 제도의 덕분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타 종교를 허용했다.

쉬린제 와인마을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반도 서남쪽 셀축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간마을, 쉬린제를 찾아간다. 와인 향기 가득한 그리스 풍의 작은 마을이다. 엷은 주홍색 지붕, 하얀색 회를 바른 벽의 집들이 산속에 박혀있다. 등고선을 따라 난 좁은 골목은 관광객과 오가는 자동차로 붐빈다.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가게와 진열한 상품들이 옛 그리스 마을의 풍경과 어울린다. 올리브 유와 포도, 석류, 봉숭아, 체리, 오디로 담근 과실는 마을의 주 특산물이다.


    쉬린제 마을 역시 에페수스(Ephesus) 지역에서 살던 그리스인 해방 농노들이 지배계급을 피해 산속으로 이주하여 만든 마을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대로 집을 짓고 자신들의 풍습을 지키며 살았다. 체르킨제(튀르키에어로 '못생긴')라는 마을 이름에는 '세상의 관심에서 벗어나, 철저히 고립되기를 바라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튀르크예인이 이어간다


    1923년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의 결과, '튀르키예 영토 내의 그리스 정교도와 그리스 영토 내의 무슬림'을 대상으로 인구교환 협정이 이루어진다. 이때 쉬린제의 그리스 정교도는  마을을 떠났다. 1926년 이즈미르 주정부는 마을의 이름을 쉬린제(튀르키에어로 ‘즐거움’)로 바꾸고 주민 유치에 힘쓰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았다. 마을은 폐허가 된다.

    1990년대에 언어학자인 세반 니샨얀 부부가 이 마을에 정착하여 마을 재생에 나선다. 튀르키예 무슬림이 들어와 모스크를 세우지만 그리스풍의 집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슬람 문화권임에도 와인 마을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와인 가게


인류의 종말을 피하는 마을


    엉뚱한 일로 쉬린제 마을이 뜬다.

    2012년에 유럽을 휩쓴 '인류 종말론'이 계기가 된다. 고대 마야인의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까지만 나와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한 점성가가 2012년 12월 21일이 '인류 종말의 '이라고 예언했다. 세계의 많은 사람은 두려움에 떤다. 또 다른 누군가는 튀르키예 쉬린제가 이를 피할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발생하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마리아가 선종하여 승천할 때까지 요한과 함께 머물렀던 곳, 동정 마리아의 집이 쉬린제 인근에 있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살아남겠다는 욕망과 세상의 종말을 보겠다는 호기심으로 인파가 몰려든다. 종말론에 상술은 끼어든다. ‘종말의 날 포도주’(wine of the Apocalypse}를 팔았다고 한다.

    

    종말의 날은 없었고, 이후 쉬린제 마을은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달달한 과실주가 입 맛을 돋꾼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와인 가게 종업원이 "더 많이, 더 많이"외치며 관광객에게 시음할 와인을 따른다. 튀르키예의 개는 순하다. 와인 시험장에 송아지만 한 개가 졸고 있다. 아내는 석류로 담근 달달한 발효주 세 병을 산다.

와인 시음장에 송아지만한 개가 한가로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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