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방법
요즘 들어 ‘말’이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건네는 모든 것들이 상대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사실 위로라는 것이 말하는 방식에 따라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지 않나. 전과 다르게 나의 도덕, 윤리적 가치관 등의 기준이 세워지며 어떠한 고민을 들었을 때 속이 갑갑한 경우가 많다. 해서, 그냥 툭-하고 쏘아버린다면 그것은 그저 공격이 될 뿐이다. ‘너는 그 정도밖에 안돼?’라고 돌려 말하며 아픈 사람에게 선민의식이나 내세우는 그런 인간말이다. 나는 위로랍시고 던진 말이 회초리처럼 아플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른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도 대화의 난이도를 높인다.
1. 현실적인 조언을 좋아하는 사람
2. 위로를 바라는 사람
3. 적절히 섞어서 줘야 하는 사람
상당히 피곤하다 할 수 있겠다. 아니면 피곤하다 느끼는 내가 사회 변화에 따라 삭막해진 것인가.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어렵게 레고(자동차라 치자)를 완성시켰을 때에도 단순하게 “ㅁㅁ이 멋있네!”라는 말보단 “조립하기 힘들었을 텐데 ㅁㅁ이는 정말 솜씨가 좋구나! 자동차 멋있다.”라는 말이 더 나은 것처럼 말을 솎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말을 고르고 고르다 포기해 버린 적도 있다.
게다가 타인의 아픔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좋을 수는 있으나 방향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다. 일단 우린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야 숙련이라도 되어 있겠지만 우린 그저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지 않나. 흔히 말하는 ‘감정쓰레기통’이 되는 것이다. 우울과 분노는 옮는 것이라 나까지 힘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심해진다면 적당히 끊어내길 추천한다. 나까지 나락으로 빠지기 전에 말이다. 이와 같은 사례를 알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살자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최고의 방법은 병원에 가는 것인데 그것이 내가 가족이 아닌 이상 어렵기도 하고 점점 구렁텅이에 빠지는 사람을 잡다가 같이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 그건 정말 최악이었다.
나는 손을 놔버리는 것에 대해 자책감이나 죄책감은 없다. 어떻게 보면 차가운 것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그의 인생을 온전히 책임져줄 수 없다. 내가 뭐라고 타인의 인생에 책임감을 갖는가. 어딘가에 처박혀도 빠져나오는 건 셀프다. 누군가 손을 내밀었을 때 잡을 것인지, 잡지 않을 것인지 선택하는 건 본인의 몫이다. 구원은 언제나 자신이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작은 도움닫기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들어주거나, 옆에 있어주거나 하는 것. 그리고 속으로 바란다. 무탈하기를, 반드시 행복하지 않아도 되니 평온하기를 하고.
위로의 방법은 이 글에서조차 답이 없다. 말이라는 건 마법 같기도, 저주 같기도 하여 어떻게 작용할지 예상할 수가 없다. 아무리 관련된 책을 읽고 공부를 해도 어렵다. 우린 어떤 말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