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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정한 온도 Dec 12. 2022

루틴은 불안을 잠식한다




요즘 내가 흠뻑 빠져있는, 일상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며 살고자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루틴이다. 살면서 귀에 닳도록 들었었지만, 그때마다 그다지 딱히 와닿지 않았던 '루틴의 힘'이 요즘 들어 내가 하루하루를 생활해 나가는데 있어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어떠한 연유로 루틴이 나의 일상에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흡수되었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최근 읽은 두 권의 책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 봉현 작가의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와 김은덕, 백종민 작가의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두 권의 책이 그것이다.


봉현 작가의 책을 먼저 읽었는데 나의 나약한 멘탈에 대놓고 파이팅을 외쳐주는 것 같아 읽으면서 큰 힘이 되어주는 부분이 많았다. 프리랜서인 그녀가 일과 일상 사이에서 자신만의 루틴을 통해 균형을 지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나도 이번 생에 처음으로 루틴이 있는 삶을 살아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말한다. 무리하지 않고 가능한 선에서만 하나씩 해보자고. 그리고 적당한 최선을 다하자고. 이 무리하지 말자는 따뜻한 말이 '루틴이 있는 삶'을 떠올리면 완벽한 생활패턴을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 같아 부담부터 먼저 다가왔던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듯했다. 나에게는 무언가를 할 때 정석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보통,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 허무하리만치 쉽게 벗어나곤 한다), 금방 좌절하고 포기하고 만다. 이런 나의 성향을 올 해 휴직기간 동안 쉬면서 많이 인정하게 되었다. 인정하게 되니, 여러 가지 발전의 모양 중에 나에게 맞는 발전의 모양을 택해서 취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면, 이제는 '힘 빼고, 적당히, 대충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한다. 그 편이 나의 성향에 더 맞기 때문이다. 인생의 슬로건 하나 바꿨을 뿐인데, 예전보다 더 여유있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겼고, 그 결과 많은 것들을 느리지만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로부터 나의 생각을 지지 받고, 내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받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의 책으로부터, 많은 확신과 용기를 받았다. 그 용기를 바탕으로 나만의 루틴이 있는 일상을 만들고 지켜나가고 싶어졌다. 단순한 루틴들이 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도록.


봉현 작가의 책이 루틴이 있는 삶을 영위해나가는 데 있어 정신적으로 살 지우게 한다면, 김은덕, 백종민 작가의 책은 훨씬 더 구체적으로 루틴을 지켜나가는 꿀팁들을 전해준다. 두 부부는 30대 초반 직장을 떠나 생활자라는 타이틀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삶은 그들 각자의 꼼꼼하고 성실한 루틴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루틴이 그들의 일상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기까지 거쳤던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스스럼없이 공유하며 어떻게 하면 루틴을 삶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하루 아침에 무리해서 바뀌려 하지 말라고.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가며 조금씩 루틴과 친해지라고. 그러다보면 어느 새 루틴이 일상에 들어와 있을거라고 말한다. 그러고보니 어쩌면 이전에 시도했던 루틴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던 건 3n년 동안 내 몸과 하나였던 습관들을 한번에 바꾸려고 했기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시작하는 루틴만큼은 아주 작게,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로 조각내 하나씩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여기,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새로 자리잡기 시작한 나의 뜨끈뜨끈한 루틴이 있다. 요즘의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보통 12시 전후에 자고, 아침 6~7 사이에 일어난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최대한 밤이와 산책을 나간다. 출퇴근 시간에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언젠가 외국계 회사에 면접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피하기만 했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요란 법석한 방법은 또 시도하다 말 것 같아 유튜버 돌돌콩 님이 알려주신 방식대로 하루에 스크립트를 외우고, 30분씩 프렌즈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정말 신기한게, 영어 공부하는 시간이 재밌다. 스크립트를 외우는 건 약간 영단어 외우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게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게도 한다. 이 외에도 아직 자리잡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시도 중인 루틴들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완벽한 루틴이 자리잡은 일상까지는 아직 한참 멀지만,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루틴이 서서히 나의 일상에 스며들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루틴이 없었을 때의 삶은 결과에 치중한 삶이었다. 과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늘 결과가 좋아야 됐고, 그렇지 못했을 땐 자괴감이 들거나 스스로가 가치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느껴질 때면 어김없이 불안과 걱정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불안이 찾아오거나 말거나 내가 정한 하루의 작은 루틴들을 하나씩 해나간다. 그러다보면 불안은 무안한듯 멋쩍은 모습으로 몰래 사라진다. 불안을 잠식했다는 것만으로도 루틴을 지켜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자신과의 약속 따위 절대 못 지키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작지만 확실하게 스스로의 약속들을 지켜나가는 것만으로도 루틴을 시작하게 된 나를 칭찬해도 좋지 않을까! 결론은, 루틴 만만세. 부디, 롱 리브 더 루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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