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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진 Mar 19. 2024

전업주부의 일기

소중한 일상 일기

새벽 5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아이들은 어느새 내가 자던 매트리스 위에 한쪽씩 올라와서 잔다. 분명 어제저녁 재울 땐 방바닥 이불에서 잤는데 말이다. 양쪽 어깨가 묵직하다. 자던 중에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줬나 보다. 아이들의 수면분리를 하고 싶은데 좀처럼 쉽지 않다. 남편은 안방 침대에서 혼자 잠든다고 불만이 많다. 알람이 울렸고, 나는 생리 중인데 오늘 수영은 안 가면 안 되겠나 싶은 생각이 한번 들었다. 그리곤 씻으러라도 가야 한다. 오늘 안 가면 또 계속 안 가는 시작된 하루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저녁 식탁 위에 올려놓았던 옷과 잠바를 입고 물통에 물을 채워서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샤워, 씻기만 하고 나올까 싶었기도 했는데 씻고 나오니 기분이 상쾌하고 좋다. 수영수업, 오늘은 접영과 팔 동작을 주요로 하고 왔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바둥되고 호흡의 중요성도 가져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아졌다. 집에 가는 길에 어제 읽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해 본다. 사랑과 연민과 측은함 그런 것들이 무엇인가 싶다. 


아이들과 남편을 챙기는 아침.

밥과 떡갈비도 전자레인지로 데우고 아이들 밥을 먹이며 머리를 양갈래로 묶이고 옷을 입히고 영어책을 읽어주고 남편 토스트하고 인삼, 양배추, 비트, 당근, 바나나를 한데 갈아서 주스를 만들고 모카포트로 원두커피를 끓인다. 남편 보온병에 커피를 넣는다. 등원하기 전에 음식물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일반쓰레기를 버리려고 현관에 놨다. 너무 많다. 아이들 등원시키고 난다음에 버려야겠다. 아이들 등원시킨다. 어느 누구 자동차 바퀴에 개똥이 붙어있었는지 주차장에 똥자국이 잔뜩이다. 아이들이 코를 막으며 뛰어갔다. 관리사무실에 전화해서 상황을 알려주는 사이에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갔다. 활기찬 아이들. 요새 언니랑 동생이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뛰어가며 들어가는 맛에 등원하고 있다. 집에 오는 길에 또 어떤 엄마가 자녀의 변비로 병원 가서 엑스레이 찍었다는 이야기로 한창이다. 또... 똥이야기다. 도망가듯이 경로를 바꿨다. 집에 왔더니 현관에 쓰레기가 한가득이다. 재활용 버리고 나니 오늘 인터넷과 티브이설치 기사님이 오신다고 전화가 왔다. 정리되지 않은 집을 치우고 환기하고 기사님을 맞이했다. 인터넷과 티브이를 설치하고 난 뒤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통신사에 전화해서 해지를 완료했다. 이런 번거로움이 싫어서 안 교체하고 싶었는데 할인금액 서비스가 좋지 않아서 결국은 교체했다. 


전업주부로 10년 애 키우다가 오늘 쿠팡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첫날이라고 깔창을 두 개 깔고 간다고 심장이 바운스 한다고 응원부탁한다는 sns 스레드를 보았다. 나도 돈 벌어야 되는데.


곧 첫째 아이 하원시간이다. 점심을 미리 먹으며 저녁용 쌀을 씻어놓는다. 

에너지가 떨어져 가니 커피를 마시고. 글을 써본다. 


이제 오후 아이를 하원시키고 공부방에 보내주고 아이와 함께 둘째 하원시간까지 이렇게 저렇게 함께 보내다가 저녁을 차리고 아이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고 그림책을 읽고 잠에 들겠지. 

내일도 비슷한 하루가 될 것 같다.  


첫째 아이가 매일 저녁마다 일기를 쓰는 데 하루 했던 일들을 쓰고 있다. 남편이 하루 있었던 일의 기억을 쓰는데 중요한 것 같다며 쓰자고 했다. 맞춤법이며 일상 단어를 익히는데 좋은 것 같다. 아이는 일기를 써야 하니까 더 많은 하루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도 일기를 쓰신다. 일흔이 넘은 어머니의 일기는 치매예방인데 글솜씨가 상당하시다. 


옛날부터 싸이월드, 이글루스, 네이버 블로그로 이동하면서 일기 쓰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출산을 하고 시간이 없어진 다음부터일까?

온라인 블로그로 돈을 벌면서부터일까? 

아님 

블로그에 대한 글이 일기면 안된다고 해서부터 일까?

모든 건 복합적일 거다. 

모든 것의 더하기가 이뤄진부터 일기 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얹혔다. 

그리고는 나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게 되었다. 

점점 더 그냥 내 안에서 단어가 문장이 흩어졌다. 


오늘이래도 써볼까 싶어서 오전일기를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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