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 계간 <니> 37호, '나만 잘 살 수 있을까'
우리 집은 세 자매였는데 언제부턴가 중·고등학교 때 정도부터는 싸울 때 서로 이기적이라 하면서 싸웠다. 그 당시 잘 싸우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밥 먹을 때, 걸을 때 소리를 많이 낸다는 거였다. 나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바로 아래 동생이었는데 밥을 먹고 있으면 쩝쩝거리며 먹는다고 한소리 했다. 집안에서 걸을 때도 쿵쿵거린다 뭐라 하고… 그러다 내 생각에 너무 심하다 싶거나,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은 날은 한마디 내뱉으면 싸움이 시작됐다. 내가 뭐가 심하게 소리를 내는 거냐, 너는 이러저러하지 않냐, 나한테 그런 소리할 자격이 있냐 그러면 동생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욕도 나오고 밀고 당기는 몸싸움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싸울 때마다 나오는 소리가 ‘이기적’이라는 말이었다. 지밖에 모른다는 말, 지만 잘난 줄 안다는 말을 서로 해대며 그렇게 싸웠다.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한테 이기적이란 말을 많이 썼다. 평상시보다는 역시 싸울 때, 안 좋은 소리 할 때 가장 많이 썼고 남편을 생각할 때 깔려있는 생각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휴일에 같이 어디라도 나가고 싶은데 귀찮다고 잠만 자거나 뭐 시켜 먹자고 할 때도 그렇고, 자기 월급이 더 많다고 내가 집안일 더 많이 하는 건 당연하고 자기는 할 필요 없다고 할 때도 그랬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남편이 늦게 들어올 때마다, 술 마시고 들어올 때마다, 내가 외롭고 힘들 때마다 내가 이기적인 사람과 결혼해 더 힘들다고 여겼다. 가끔씩 내가 이렇고 저렇고 서운했던 것들을 폭발시키면서 당신은 너무 이기적이라 결혼에 부적합한 사람이라고 퍼부었는데 의외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자기도 자신이 결혼해서 살게 될 줄 몰랐다는 거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얘기까지 들었으니 여세를 몰아 그러니 부인한테 더 잘하도록 노력하라는 말로 몰아갔었다.
세훈이는 가끔 “엄마, 치사해!”라는 말을 한다. 하루는 잘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양치하고 세수하고 소변보는 하루의 끝의식을 하려는데 이 녀석이 졸리다며 이불 위에서 등을 떼지 않았다. 늘어진 아이를 화장실까지 데리고 가서 씻기는 게 갑자기 피곤하게 느껴진 나는 제안을 한다. 엄마가 호퉤(바가지와 양칫물, 치약 묻힌 칫솔) 가져올 테니까 그럼 이만 닦고 자자고 했다. 그걸 가져오자 못 이기는 척 앉은 녀석은 이불 위에서 이를 닦았다. 그리고 입을 헹궈야 하는 순간 내가 바가지를 들어주고 거기에 뱉게 했다. 그런데 내 손이 좀 흔들렸는지, 세훈이 손을 쳐서 양칫물이 떨어지게 됐다. 이불도 좀 젖고 세훈이 내복도 좀 젖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자기 새 내복이 젖었다며 울상이었다.
난 조금밖에 안 젖었으니 수건 가져와 닦으라고 했다. 정리를 하며 수건을 가져와 닦아주려는데 계속 울상이고 심통이 나있다. 닦으면 되지 왜 그러냐고 했더니 했던 말이 “엄마, 치사해!”다. 엄마가 자기 손을 쳐서, 엄마 때문에 물 흘린 건데라는 말도 계속하면서…. 하지만 엄마가 미안해라는 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내가 손이 흔들려서 그런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랬다 쳐도 지가 화장실까지 못 가겠다고 해서 이불까지 가져가는 편의를 제공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짜증이 났다. ‘니가 화장실까지 가서 닦았음 이런 일이 없었잖아!’라는 말이 목구멍에 치밀었다. 그리고 졸리다던 녀석이 너무 생생해 보여 얄미웠다. 하지만 결국엔 엄마 손이 흔들려서 세훈이가 물 흘리게 돼서 미안하단 소리는 했다. 그리곤 생각했다. 왜 그렇게 미안하단 말하기가 어려웠을까? 실수로 일어났지만 잘못한 건데 그걸 왜 인정하기 힘들었을까? 심지어 내 아이에게조차도.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억울함이 깔려 있었다. 동생하고도 내가 그동안 부당한 그 소리들을 참아줬는데 참다가 못 이겨 싸운 거니 미안할 게 없었다. 남편하고 그동안 당신의 잘못들, 모자란 부분들을 봐주며 살아줬다는 마음에 당연한 듯 퍼부을 수 있었다. 난 피해자니까, 많이 양보하며 살았으니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하고도 그동안 아이 말을 잘 따라주는 편이라 생각했기에, 가끔 미안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많이 참고 맞춰주고 살았다는 마음에 아이가 “엄마, 미워!”, “엄마, 치사해!”하면 가끔씩은 억울했다.
난 뭘 참고 뭘 봐주며 산 걸까? 그건 상대를 위해서였나 나를 위해서였나? 그리고 어떻게 나에게 들려오는 소리가 부당한 거라고, 상대가 잘못한 거라고만 단정을 내리고 살았던가. 난 상대를 배려해서 양보했다기보다 내가 귀찮으니 편할 거 생각해서 미리 떼놓듯 양보했던 것 같다. ‘그래, 이 정도 떼어주면 날 건드리지 않겠지, 뭐라 하지 않겠지.’ 하지만 내 생각대로 더 이상의 요구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요구받는다. 난 억울하고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게 된다. 이기적인 양보였던 거다.
동생이 까탈스럽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난 배려하는 편이고 (큰) 잘못도 없는데 괜히 시비 건다고 생각했다. 내가 걷는 소리, 먹는 소리가 진짜로 그 아이를 불편하고 신경 쓰이게 할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같이 사는 건 맞춰 간다는 건데 난 맞추려 하지 않았다. 날 건드리는 것, 나에게 뭐라 하는 것, 나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건 참지 못했다. 나에게 그런 걸 요구하는 사람은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는 이기적 사람이라 여겼다.
남편이 나한테 연락도 더 충실히 하고 같이 있을 때도 무언가를 함께 더 많이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라 여겼다. 남편이 내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바대로 바뀌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나 역시 누군가와 감정을 생각을 소통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음을 이제는 안다.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원했지만 정작 관심을 보일 때는 그동안 억울했던 느낌에 지금 귀찮은 것이 더해져 내 기분, 내 상태를 성의 있게 말해주지 않았다. 주로 밤에만 보는 사람이 뭔가 화나 있고 저기압인데 왜 그런지 물어보면 꺼지라고 하니 남편은 어땠을까…?
아이하고도 말이다. 나만 아이를 봐주며 산 걸까? 요즘에야 아이도 참 나를 많이 봐주며 살았구나 싶다. 잘 때마다 우주 너머까지 나를 사랑한다고 몇 번이고 말해주는 아이. 그런데 가끔 "엄마도 세훈이 많이 사랑해"하면, “근데 엄마 화낼 때는…?”한다. 내가 화낼 땐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는가 보다. 이제야 찬찬히 설명해주는 법을 익힌다. 그건 그게 아니라 이런 거고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고.
난 그동안 사람은 이기적 동물이라고 말만 했지 정작 나야말로 이기적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난 몰랐다. 나만, 내 기분만, 내 상황만 보고 억울해하며 내 말만 해대던 나는 상대의 얘기를 들으려고도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기적이었다!
정은선_알트루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만 보다가 주변 사람, 이웃,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남편과 6살 세훈이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