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9. 계간<니>44호 '소통이 숨통트다', <한 토막짜리 반성>
가끔 핸드폰을 어디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세진아, 엄마 핸드폰 어디 있니?” 하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15개월이 되어 제법 잘 걷는 세진이가 핸드폰이 떨어진 곳 근처에서 서성거려 힌트를 준다. 어느 날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던 남편의 핸드폰이 울리자 아이가 케이스를 열었다. 그러자 남자와 여자가 나오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화면이 보였다. 깜짝 놀란 나는 얼른 핸드폰을 낚아채고 나서 남편을 찾아 눈앞에 들이댔다. 아이를 키우면서 도대체 핸드폰으로 뭘 보는 거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졌다.
남편은 잠금장치가 있는데 아이가 어떻게 볼 수 있느냐, 당신이 열어본 거 아니냐, 외국에 있는 사람과 메일 주고받으면 이런 스팸이 온다고 도리어 화를 냈다. 남편의 반응에 나는 더 황당해서 당신 핸드폰이 궁금하지도 않고, 잠가놔도 메시지 온 순간 보면 열리기도 한다고 알려줬다. 평소에 그런저런 사이트들을 찾아다니는 사람에게 알아서 보내주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남편은 자신을 그런 사람 취급한다며 상당히 기분 나빠했다. 야한 동영상 보는 걸 여러 번 들킨 전력이 있으면서 자기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 남편의 억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예전에 어떤 문제로 싸우다가 자신이 인격모독당했다며 울분을 토하던 남편이 떠올랐다. 그때 난 그에게 뭐라고 했던가. 이것도 안 하고 저것도 안 하는 게으른 사람이라 했던가. 자기 잘못은 인정 안 하고 다른 사람 얘기 끌어다 붙이는 물타기 선수 아무개(우리 신혼 시절의 대통령) 같다고 했던가. 정치판에서 안 좋은 버릇만 배워왔다고 했던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의 잘못이나 단점을 얘기하다가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싸잡아 얘기했었다.
이번에도 내가 기억하는 몇 년 전 남편의 모습으로 “당신은 이런 사람”이란 말이 그냥 튀어나왔다. 남편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면 “몇 번 그런 걸로 쉽게 사람을 단정 짓는다”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빠지직 화를 내면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더 이상 남편과 말을 섞고 싶지 않다. 나를 나쁜 쪽으로 보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해도 그 틀로만 나를 볼 거라는 생각에 답답하기도 하고 얘기해야 무슨 소용 있나 하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앞에서부터 걸리면 그 자리에 멈춰버린 채 뒤에 따라오는 이야기는 들어볼 생각도 들지 않는다. 우리의 갈등이 그저 싸움으로 끝나고 서로의 생각과 입장을 알게 되는 소통의 기회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평소 내 기분만 앞세워 남편의 말을, 마음을 듣지 않는 나는 그렇게 싸우면서 듣는 말에 충격을 받고 깨달아간다. 저 사람도 그런 소리는 싫어하는구나, 내가 듣기 싫은 소리를 나도 다른 사람에게 하는구나. 그동안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 때 미안하다는 표현은 제대로 했나 되짚어 보게 된다.
♥정은선 _ 알트루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만 보다가 주변사람, 이웃,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남편과 8살 세훈이, 2살 세진이와 살고 있다.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