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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Dec 19. 2022

남편, 아빠로만 봐서 미안해~

2017.9. 계간<니> 48호, '한 몸 두 마음, 부부' 

며칠 전 저녁이다. 세진이와 나한테 감기를 옮아 남편이 여름감기로 고생이었다. 전날은 집에서 쉬고 그날은 아침 일찍 나간 참이었다. 저녁에 전화해보니 일찍 온다 해서 같이 저녁 먹기로 했다. 전에 해놓은 카레가 있어서 계란국 정도 끓이고 있는 반찬 꺼내놨다. 요즘 들어 가장 잘 차린 밥상이었다. 여름이고 음식하기도 여의치 않아 대충 먹거나 주문해 먹은 적이 많기 때문이다. 



남편은 웬일이냐는 듯 식탁에 앉아서는 먹기 시작한다. 계란국은 한 숟가락 먹고 카레를 덜어서는 비벼 먹더니 이게 카레가 맞느냐고 했다. 자기가 감기 걸려 그런지 모르겠는데 감자맛밖에 안 난다고 했다. 카레가루를 다른 때보다 덜 넣긴 했지만 카레 맞다고 발끈했다. 계란국은 손도 안 대는 것도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밥을 다 먹고선 물컵의 물을 마시더니 물에서 무슨 냄새가 난다고 했다. 거기서 확 폭발한 나. 당신이 마시고 나서 컵 바로바로 닦아놓으면 괜찮을 거라고 소리를 질렀다. 집안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 이것저것 지적한다는 생각에,  나에게 주부로서 문제 있다고 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연애할 때는 남편이 자취하는 방에 가면 한숨이 났지만 금세 치우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결혼하고 집이 커지니 집안일 안 하는 남편이 남편으로서 문제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게다가 결혼하면 더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 거라는 기대가 깨져서 더욱 그랬다. 게임하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그를 보며 결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으니 아이 키우는 건 오롯이 내 일로 여기는 남편이 남편으로서도, 아빠로서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 키우는데 익숙해지자 남편이 없어도, 남편이 돈을 벌어다주면 아이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남편을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내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어떤가, 어떻게 평가받을까에 신경이 쓰였다. 그와 관련됐다 싶은 남편의 소리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나는 나름 열심히 하는 건데 도움 하나 주지 않는 사람이 지적질이라며 화를 냈다. 


연애할 때 남자친구일 때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다른 남자들도 사귀어보고 결정하란 주위의 말에 그런 시간 낭비를 왜 하나 싶었다. 그러다 남편으로, 아빠로는 자꾸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다. 겉으로는 누구 남편은… 누구 아빠는… 이런 말은 안 했지만 내 속에 있는 기준이 발동했다. 남편이면 아빠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지 하고.


내가 몸과 마음이 힘들어 엄마 노릇 아내 노릇 제대로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남편이 나한테 뭐라 할까 두려워했지만 사실 가장 나를 탓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내가 나를 봐주지 못하는 거다. 음식을 잘 못할 수도, 밥 먹기 싫고 밥 차려주기 싫을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나한테 그런 점이 있다는 걸 나도 감싸 안지 못하면서 남편한테 바라기가 쉽지 않다. 남편이니까 이런 나를 봐주고 살아야지 싶지만 그걸 요구하긴 떳떳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부부 사이인데 내 한계를 털어놓기가,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은 남편의 어떤 특성을 그 사람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문제 있다고 본 걸 반성한다. 그래야 나도 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첫걸음이 될 것 같다. 너무 이기적인 목적의 반성일까…?



정은선 꿈이 빠진 사람이라 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생생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알트루사에서 자원 활동하며 자신의 꿈과 마음을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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