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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Dec 12. 2022

내가 끈질기지 못했던 이유

2017.6. 계간<니> 47호, '건강한 끈질김'

난 살아오면서 끈기 없는 사람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사실 나에게 끈기가 없다고, 부지런함, 꾸준함이 없다고 한 건 엄마다. 엄마는 내가 시작을 하고선 열심히 하고 끝을 본 게 없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엄마가 큰맘 먹고 해준 문제집을 거의 풀지 않아 쌓여있던 종이뭉치가 떠오른다. 엄마가 원하던 선생님도, 내가 하겠다던 외교관도 되지 못했고 말이다. 



그래서 뭔가를 이룬 듯한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친구의 친구가 변호사라서 아이가 둘인데도 계속 직장생활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주변에서 선생님이 된 사람들을 간혹 볼 때도 힘들다는 고시를 통과한 사람이구나 싶어 부럽다. 요새는 신문 인터뷰에서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사람들이 10년 20년 꾸준히 가치 있는 일을 계속해온 것을 보면 “와!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저 사람은 어떻게 어려서부터 저런 걸 알고 시작해 계속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 해온 게 대단하다는 것보다 저 때 시작을 했구나 하는 게 더 부러운 지점이다. 


난 시작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다. 끈기 없는 애라는 엄마의 평가에 갇혀 시작하기 전에 끝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면서 과연 내가 끝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한다. 내가 포기한 외무고시를 예로 들면, 1년에 30명을 뽑는데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이 몇 명일 테고 전공이 아닌 사람들도 응시를 한다.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들이 될 확률도 꽤 높아 보인다. 난 학교에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서실에 들어가기도 힘들 거 같다. 그 도서실에 앉아 몇 년을 공부해도 될지 안 될지 모른다. 그렇게 힘들어 보여서, 안 될 거 같아서 시작도 안 해보고 접었다. 물론 외교관은 엄마가 되길 원하던 선생님 대신 집어 든 멋져 보이는 패일뿐이었다. 지금은 자격시험에 통과해 뭔가가 되는 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알지만 그때는 되는 것까지만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속에서 끊임없이 ‘난 못한다’, ‘난 쓸모없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대학 졸업하고도 그런 생각에 빠져서 직업을 가질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일단 시작을 해본 게 지금으로서는 내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인 곳에 지원서를 낸 거다. 내가 찾을 엄두는 나지 않았고 친구가 소개해준 곳인데 이것도 안 해본다면 난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걱정하던 무능하고, 쓸모없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으나 40개월 후 큰아이를 낳아 그만둘 때는 그만두는 걸 아쉬워하는 정도가 되긴 했다. 그런데 그때 그만둔 후 큰아이가 90개월이 넘은 지금까지 나는 소위 ‘경력단절’ 여성이다. 




큰아이가 24개월이 됐을 때 알트루사에 처음 왔다. 집에서 거의 아이랑만 있으면서 황폐해진 내 마음 상태를 회복하고 싶었고 그래서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를 직업처럼 생각했었다. 자료 찾아서 읽고 가공해서 기사로 만들던 예전 직장에서처럼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필요한 정보와 육아법을 찾고 실천하려 했다. 그런데 결과가 생각했던 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힘들기만 해서 이런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 있었다. 이미 시작은 했고 아이는 돌이킬 수 없이 쑥쑥 크는데 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 때 읽은 문은희 선생님의 책. 거기 소개된 알트루사를 꽉 잡았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좋은 곳이란 느낌이 확 들었고 이곳에서는 그동안 못했던 오래오래 있어보는 걸 실천해봐야지 싶었다. 일단은 10년쯤? 그쯤은 해야 그래도 꾸준히 하는 거 아니겠어? 하면서.    


이곳에서는 뭔가를 시작할 기회가 아주 많다. 일단 모임도 많고 할 일도 많다. 굳이 할 일이 뭐가 있나 찾지 않아도 모람들이 함께 하자며 권한다. 그런 권유를 받아 해도 되나, 내가 할 수 있을까, 과연 꾸준히 오래 할 수 있을까까지 고민하다가 ‘일단 해보자’고 시작한 일이 알트루사 소식지 편집이다. 이제 200호를 넘긴 소식지를 150번대부터 했으니 햇수로 5년이 다 돼 간다. 여러 사람의 원고를 모으고 때 맞춰 편집하고 교정보는 일이 말로는 간단하지만 신경 쓸 게 많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내 컨디션이었다. 아이와든 남편과든 문제가 있어 기분이 처지거나 조금 쉬어야지 하다가 너무 쉬어 버리면서 일상생활의 흐름을 놓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소식지 일정이 다가오면 손을 놓고 있다가 간신히 몸을 추슬러 알트루사에 나가고 서둘러 소식지를 만드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니 소식지 일정이 늦어지면 다른 이유도 있지만 내가 서둘러 점검하고 연락하지 못해 그렇게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웠다. 그럴 때 포기하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반대로 이런 일도 못하면 무슨 일을 하겠어하며 꾸역꾸역 해나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게 됐다. ‘원래 이건 간단한 건데, 이런 걸 힘들다고 징징대면 약하고 의지가 부족하다는 건데…’ 하면서 혼자 부여잡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에야 ‘이건 여러 사람의 글과 의견을 받아 만드는 거라 어려워, 내가 문제 있는 사람이라 힘든 게 아니야, 혼자서 끙끙댈 일이 아니야…’ 하고 바뀌었다. 혼자 책임을 지려 했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혼자만의 생각인가 싶다. 지금은 알트루사에서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것들을 배우며 일하고 있다. 혼자서만 해야 한다고 생각해 힘들 거 같으면 포기하거나 낑낑대다 말고 했는데 믿는 구석이 생겼다. 함께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이번에 부족했던 건 다음에 채울 수 있다. 무엇보다 나에 대해 ‘이 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어야지’ 하며 가졌던 부담을 덜어내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의미가 와닿는다.      


꼭 한 가지 일만 쭉 한다고 끈질긴 게 아니다. 시도해보고 노력해보고 다른 걸로 바꾸기도 하면서 내 삶을 끈질기게 살아보고 싶다. 


정은선 꿈이 빠진 사람이라 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생생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알트루사에서 자원활동하며 자신의 꿈과 마음을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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