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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경 Mar 20. 2022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다운, 앙스트블뤼테

Angstblüte

전나무는 아니지만, 올해 첫 봄꽃 발견!


[발췌문]

'전나무가 이듬해 자신이 죽을 것을 감지하면 그해에 유난히 화려하고 풍성하게 꽃을 피운다는 현상을 가리킨다'는 의미의 '앙스트블뤼테' 라는 임학 전문 용어가 있다. angst(불안)+개화로 인생의 막바지, 생애 최고의 절정을 만들어내는 역발상과 찬란한 창조 행위를 은유할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두려움으로 인한 만개이며 완전한 소멸을 눈앞에 두었을 때만 나타날 수 있는 살아 있음의 알람alarm이면서, 생명을 가진 어떤 존재가 가장 살아 있고자 원하는 순간을 지칭한다" 김홍남 교수가 누마루에 앉아 읽던 마르틴 발저의 책 <<불안과 꽃>>에 나온 한 구절이다.



행복이가득한집 편집부에서 출판한 <<한옥, 구경>> 이라는 책을 읽다가, 알 수 없는 벅참에 대뜸 눈물이 고였던 대목이 있었다. 평소 눈물 없기로 유명한 나인데 처음 들어보는 임학 용어, ‘앙스트블뤼테’에 내 눈물샘이 반응한 것이다. 마지막을 아는 자의 화려한, 살아있음의 마지막 표현. 아름다우면서도 슬프지 않은가.


아직까지 내 삶에 이렇다 할 '앙스트블뤼테'는 없었지만, 굳이 찾아보자면 이런 것일까. 지금껏 가장 자신감이 바닥이었던 대학교 4학년 취준생 시절, 난생 처음 맞닥뜨려 본 취업의 좁은 문 앞에 간신히 서류 전형을 뚫고 올라와, 어느 한 기업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하루에 인성면접과 프레젠테이션 면접을 모두 보는 곳이었는데, 이미 1차 인성면접에서 횡설수설하며 낙방을 확신하고야 말았다. 이상하게 평온해진 마음과, 마지막이라는 것을 아는 자의 여유로움으로, 2차 프레젠테이션 면접은 나만의 무대인양, 마음껏 뽐냈던 기억이 있다. 어차피 떨어질 면접을 굳이 열심히 볼 필요가 없었음에도, 이상하게 마지막 순간에 더 최선을 다하게 되는 '앙스트블뤼테'의 마음가짐.


일례가 너무도 소소해서 부끄러울 지경이지만, 여하튼 마지막은 그게 무엇이든 찬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회사라면 퇴사 전 눈부신 성과를 이룩한다든지, 그게 삶이라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음지을 수 있는 평온한 하루를 온전히 보낸다든지.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어느 한 소사이어티의 끝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가(그 끝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앙스트블뤼테'라는 용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근데 이룩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의 끝은 싫은데. 주객이 전도된 것 같지만, 최선을 다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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