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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리 Aug 12. 2024

다시 돌아온 몸무게

18세 몸무게로 돌아가다.

고3 때 53킬로였다.

결혼 전까지 10년을 쭉 유지했었다. 하지만 결혼 후 안 먹던 야식을 남편과 열심히 먹다가 점점 살이 찌기 시작했다.

첫째를 임신하고 입덧으로 10킬로가 빠졌다가  다시 15킬로 찌고는 아기를 낳고 겨우 3킬 빠졌다. 나는 아기 낳으면 살이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줄 알았지만 나만의 착각이었다.

"너무해"

독박육아로 밥 먹을 시간이 없어지자. 각종 빵과 떡, 라면, 비빔밥으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몸은 계속해서 사이즈를 늘리고 있었다. 결국 55반 사이즈였던 나는 66을 넘어 77반까지 갔다.


어느 순간 내가 사랑하던 옷을 싫어하게 되었다.

항상 상의는 엉덩이를 가리는 용도로 입고 색깔옷은 사라지고 검정 아니면 회색 옷만 입게 되며 밖에 나가는 게 싫었다. 거울을 안 본 지도 꽤 오래됐고 가족들과 외출은 긴바지와 박스티 그리고 늘 모자를 눌러쓰고 다녔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즐겁지만 내 모습을 보는 건 달갑지 않았다. 애들 어릴 때 사진들을 보면 내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아빠와 함께한 사진은 많지만 그 외는 모두 아이 사진만 가득하다.

 

아이 둘 낳고 영 빠질 것 같지 않던 살들은 장년 1월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로 12킬로가 빠지는 기적을 만들었다.


살이 찌기 시작하며 규칙적이던 식사 시간은 엉망이 되었다. 군것질은 안 하지만 밥을 몰아서 먹거나 안 먹거나 배고픔이 사라질 만큼만 먹는다. 식욕이 별로 없어서 하루에 두 끼 먹거나 한 끼만 겨우 먹었다. 예를 들면 아점으로 우유에 초코파이  꿀꺽하고 저녁으로 비빔밥 먹고 배고프면 ABC 초콜릿으로 하루를 버텼다.


밥 먹는 걸 잊어버려서 배가 아파야 "아 밥을 안 먹었구나" 하며 뒤늦게 먹었다. 그래서 위병이 자주 생겨 꽤 많이 고생했다.


집에서 부업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조금씩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생활용품 쇼핑몰이라 물건을 찾아 포장해서 적재하는 일이었다. 매일 30분씩 걸어서 출퇴근했다.  두 명이서 4시간 동안 기본 200~300개 정도  포장한다. 가볍고 작은 것도 있지만 무거운 제품도 있어서 힘을 요하기도 한다.

캐시워크 걸음수를 보면 하루에 만보는 기본으로 찍었다. 인지할 겨를 없이 살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바지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무줄 바지라서 고무줄이 늘어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고무줄을 새로 사서 고쳤는데도 3주가 지나면 허리가 커서 자꾸만 내려갔다. 일한 지 5개월쯤 됐을 때 7킬로가 빠졌고 몸도 조금 가벼워지며 수면에 도움이 됐다.


모든 바지들이 커지고 있었다.

처음엔  바지 왼쪽 허리 부분을 실로 꿰매고 다음엔 오른쪽을 꿰매고 더 이상 허리를 줄일 수 없게 되자 옷을 사기 시작했다. 고무줄 바지만 입었던 나는 버클이 있는 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됐다.


일 시작 전에는 바지 32를 입었는데 만 2년이 돼 가는 지금은 28을 입는다. 몸무게도 고3 때로 돌아왔다.

 "와우"

난 영원히 살이 빠지지 않을 줄 알았다.

나름 다이어트와 운동을 해봤지만 결국 실패했다.  규칙적인 식사와  많은 움직임 덕분에 몸이 가벼워지고 숨이 차는 일이 잦아들었다. 덕분에 불면증을 조금 고쳐졌다.

신기한 것은 장년 건강검진에서 키가 1센티 큰 것이다. 자연스레 스트레칭이 되며 몸이 펴졌나?


잔 근육도 조금  보이고 몸에 라인이 생겼다.

다시 옷 입는 재미를 느끼며 옷을 너무 사랑하는 나를  만나게 됐다. 요즘에는 옷 코디하는 행복을 가득 누리고 있다. 내 사진을 찍지는 않지만  울은 보게 됐고 내 미소를 마주 보게 됐다.


자기 전 루틴이 생겼다.

내일 날씨를 검색하고 요일에 특성을 고려해 입을 옷과 신발 가방 액세서리를 세팅해 놓고 잔다.


월요일은 일이 많고 바쁘니까 우선 빛바랜 블랙 통바지에 베이지색 위에 초록 글씨가 크게 쓰여있는 오버핏 반팔 티셔츠 입고 흰색에 그린 무늬가 있는 운동화를 신는다.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과 왼손 검지에 엔틱문향  반지를 끼고  은색 링 귀걸이를 한다. 마무리로 검은색 크로스 천가방과 모자를 준비한다.

그럼 자기 전 루틴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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