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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리 Aug 19. 2024

흠칫 놀랐다.

마를로를 보며 날 보았다.

가끔씩 정신적 허기를 느낄 때가 있다.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나만의 시간을 전혀 보낼 수가 없다. 날 위한 시간은 식구들이 잠든 후 새벽밖에 없어서 잠과 혼자만의 시간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너무 힘들 때 나는 영화를 찾는다.


포스터에  당신을 돌보러 왔어요

그 말에 이끌려 사전 정보 없이 그냥 봤다.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2018년 개봉한  영화 툴리

영화 2018


영화 주인공 마를로 보며 흠칫 놀랬다. 

펑퍼짐한 옷에 생기 없는 얼굴, 지쳐 스러질 것 같은 몸놀림은 날 보는 듯  영화 보는 내내 안쓰럽다가 미웠다가 이성이 들락날락거렸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이의 시간에 따라 내가 움직이는 모습을 영화 화면으로 대면했다.

아이 울음소리에 깨고 로봇처럼 제 할 일을 하고 나 자신을 돌볼새 없이 지쳐 잠이 든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늘 같은 일상과 피곤하고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삶이 너무 고단해서 울고 싶어도 울 기운도 없는 그런 시간들.....


말부부인 나는 토요일 밤까지는 온전히 혼자서 아이를 돌봤다. 솔직히 남편은 2주에 한번 오고 하숙집처럼 지내다 아이를 눈으로만 보고는 다시 월요일 아침 일찍 가버렸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면부족으로 투통은 심해지고 식사를 저 때 못하니 위병은 자주 나고 여기저기 몸이 고장 나고 있지만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병원에 갈 수도 없다.




순간 소름이 았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쯤 어느 날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들면 어깨가 끊어질 듯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늦게 지방에 있던 남편이 올라왔다. 전화로 SOS를 외쳤다. 한 팔로는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 다음날 일찍 병원에 갔는데 어깨에 염증이 생겼다고 3~4일을 치료 후 괜찮아 지자 다시 남편은 지방으로 갔다.


아기가 예민하고 자주 놀래서 100일까지 벽에 기댄 채 앉아서 안고 잤다. 3개월 이상을 누워서 자본적이 없으니 탈이 날 만도 하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영화 속 한 장면 떠오른다.

동그란 식탁에 첫째 딸, 둘째 아들, 주인공 마를로가 앉아있다. 서로 응시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딸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아들은 그림을 그리고 마를로는 그냥 멍하니 앉아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대충 묶고 딱 붙는 하얀 반팔티셔츠 속에는 울퉁불퉁한 살들이 소리치고  초점 잃은 눈동자는 허공을 보고 축 쳐진 온몸이 의자에 겨우 기대어 곧 스러질 것만 같다. 


영화 마를로는 툴리를 통해 자기를 돌아본다. 너무나 안쓰럽고 고단하고 불행해 보였다. 꼭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불행한 인생이 아니길 바라는 거다. 자신의 삶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그 속에서 희로애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내가 있으면 된 거다.


주인공이 대사가 꼭 박힌다.

툴리 ㅡ 뭐가 하고 싶으세요?

마를로 ㅡ 못 이룬 꿈이라도 있었다면 세상을 향해 화라도 냈을 텐데 그저 나한테 화풀이만 해요.

툴리 ㅡ 텅 비었네요.

마를로 ㅡ 네


누군가는 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난 꿈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 안 한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며 즐거우면 된다.

텅 비었으면 다른 것들을 채우면 그만이다. 헛헛함을 영화로 달래며 갈증을 회소하고  감정해 솔직하면 그걸로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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