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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Mar 17. 2023

예술이 흐르는 도시,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곳

우당탕탕 유럽여행일기 in 오스트리아 빈

2022년 11월 25일 오전 8시 30분

덜컹거리는 트램에 앉아 조성진 모차르트 앨범을 들으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구글 맵 속 파란 불빛을 눈으로 좇았다. 창 밖엔 평소와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하얗게 눈이 오는 바르샤바랑은 다르게 아직은 가을을 품고 있는 이곳,

난 지금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고 있다.

그리고 내 빈 여행의 첫 번째 여행지는 공동묘지다. 지금 난 그 그곳으로 가고 있다.

한참을 달려 '빈 중앙묘지'에 도착했다. 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서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안 가면 분명히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정치인, 예술가 등 여러 분야 명사들의 묘가 있는 곳이지만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딱 하나!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묘지가 아닌 기념비만 있다.)의 묘지를 보기 위해서다.


음악가들의 무덤은 입구 쪽에 있어서 찾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왕 온 거 이곳을 좀 더 둘러보고 싶어서 일단 그냥 정처 없이 걸었다.

선곡을 바꿔서 브람스 노래를 들으며 걸었다.

아침이라 그런지 산 사람이라곤 나와 부지런히 나무를 정리하고 계시는 원예사 아저씨뿐이었는데 이상하리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자기는 유럽 여행을 가면 꼭 묘지를 들른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아침 산책 하듯 걷다가 내가 여기 온 진짜 목적, 음악가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음악가들의 무덤은 한 곳에 모여있었다. 중간에 모차르트 가묘를 중심으로 왼쪽에 베토벤, 오른쪽엔 슈베르트가 잠들어 있었다. 그들의 명성에 맞게 크고 아름다웠다.

이런 말하면 오버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이들의 무덤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날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브람스의 무덤은 다른 무덤보단 작았지만 난 이 음악가들 중에 브람스를 가장 좋아하기에 제일 오래 머물러 있었다. 내 귓가엔 브람스가 만든 선율이 흐르고 있었고 내 눈앞엔 브람스의 영혼이 잠들어 있었다.


브람스는 이 곡을 만들 때 한국에서 온 어떤 여자가 2022년에 자기 무덤 앞에서 이걸 듣고 있을 줄 알았을까.


중앙묘지에서 나와 빈 시민공원으로 가는 길에 배가 고파서 빵집에 들렀다. 들어갈 때부터 밝게 인사해 주시던 주인아주머니에게 계산 후에 "당퀘쉔"이라고 말했는데 너무 좋아하셨다.

바르샤바에 살면서 무뚝뚝함에 익숙해져 있던 날 사르르 녹게 하는 따듯함이었다.

온몸으로 가을을 품고 있는 시민공원은 너무 평화롭고 낭만적이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다들 그걸 느끼고 있는 건지 산책하는 가족,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는 할아버지, 버스킹을 하고 있는 거리의 음악가까지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이 속에서 안 행복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바르샤바에서 살면서 폴란드는 참 쇼팽에 진심인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빈에 와보니 오스트리아는 모차르트에 더 진심인 나라였다. 기념품 샵 어딜 가도 모차르트가 있고 도시 곳곳에 모차르트 동상이 있다.

빈 모차르트 하우스

세상에 유일무이한 천재 음악가가 살았던 곳이니 이해가 간다.

빈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오후 3시에 맞춰  '성페터성당'에 도착했다. 성페터성당은 평일 오후 3시에 무료 오르간 연주를 한다.

오르간 연주가 시작되고 오르간 특유의 몽환스러운 소리가 성당 가득히 채웠다. 공간이 주는 성스러움과 아름다운 선율이 만나 황홀한 연주였다.

역시 모차르트의 나라

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오페라 하우스, 예상했던 것처럼 너무 좋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독일어로 전달하는 대사와 가사가 그렇게 큰 울림을 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음악이 가진 힘이란 게 이런 거구나 또 한 번 느꼈다.

하지만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보다 좋았던 기억은 친구와 영화 비포선라이즈 OST를 들으며 같이 야경을 본 순간이었다.


음악은 평범한 순간도 영화처럼 만들어준다는데. 하물며 진짜 영화에 나왔던 풍경이야.


빈 박물관 지구

쇤부른 궁전, 벨베데레 궁전보다 좋았던

빈 박물관 지구

레오폴드 미술관, 무묵 미술관, 쿤스트할레 빈과 같은 미술관들이 모여있다.

'클래식함에 모던 한 스푼', 

내 취향을 집약해 놓은 이 한 문장으로 여기가 내뿜는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적당히 연말 분위기도 났는데 그게 또 너무 잘 어울려서 마음 같아선 하루종일 여기에만 있고 싶었다.

레오폴드 미술관이 문 닫혀서 우연히 가게 된

‘쿤스트할레 빈'

산야 이베코비치의 'Works of heart'라는 전시를 봤다. 레오폴드 미술관을 못 가게 된 게 하늘의 큰 그림처럼 느껴질 만큼 좋은 전시였다.

젠더를 테마로 현실의 삶과 미디어의 삶을 대조하는 전시로 사진, 비디오, 설치미술.. 내가 좋아하는 장르만 모아놓았다.

사람들이 그리고 대중 매체가 여성의 정체성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정의하는지 보여주면서 그걸 또 자기만의 방식으로 뒤집는데 그게 참 통쾌하면서도 씁쓸했다.

그리고 정말 이 전시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전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이렇게 빈에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우연히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반가우면서도 착잡했다. 우리도 잊으려 했던 그 역사를 이역만리에서 이렇게 기억해 주고 알려주고 있다는 게 고마웠다.

이번 여행 최고의 수확은 이 전시를 보고 산야 이베코비치를 알게 된 게 아닐까.


빈은 정말 이상한 곳이었다.

내가 만난 공간들과 사람들이 다 사랑스러웠다.

빈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생각하니 특히 첫날 저녁이 생각난다.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 두 분이 친구와 내가 슈니첼을 먹는 걸 아주 흐뭇하게 지켜보시더니 종업원에게 뭐라 뭐라 말했다. 우리가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자 조그만 여자애 둘이 슈니첼을 너무 잘 먹어서 종업원에게 무슨 사이즈 슈니첼을 시킨 건지 물어본 거라고 했다.

우린 작은 사이즈 슈니첼을 시켜서 각자 먹고 있었고 아저씨들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맛있게 먹으라며 유유히 떠나셨는데 우리 맥주값을 계산해 주고 가셨다.


말도 없이 계산해 주고 가신 거라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친구와 난 "뭐야! 진짜 이 사람들 왜 이렇게 따듯해! “하며 소리쳤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흐릿해지고 그때의 감정만 남곤 한다. 내게 빈 여행은 빵집 아주머니의 웃음, 슈니첼 가게에서의 맥주, 사람들의 사소한 친절들이 준 따듯함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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