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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관 Dec 01. 2022

어떤, 제주

2화. 나는 왜 제주도에 살게 되었나?

“이서방, 이번 휴일에 내가 애들 봐 줄테니 둘이서 어디 놀러 갔다 와도 돼.”


“정말이요?”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아이들 없이 아내와 단 둘이서만 여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내는 거의 집에만 있다 보니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회사생활 12년차였던 나는 조직개편으로 부서를 이동한 후 바뀐 업무에 적응하느라 매일 야근을 이어갔고 집에 와서도 긴장상태를 풀지 못했다. 이런 우리 부부의 고충을 잘 알고 있던 장모님이 선뜻 놀라운 제안을 하셨다.


갑자기 1박2일의 진짜 휴일이 생겼다.


“그런데... 어디가지?”


“제주도에 가서 올레길 걷자” 

아내는 이미 생각해 두었다는 듯 거침없이 얘기했다.


“뭐라고 제주도? 겨우 1박2일인데, 비행기값이랑 숙박료도 비싸고 너무 아깝잖아.”


하지만 제주도 올레코스를 아내와 둘이서 걸어보고 싶긴 했다. 아내가 자세히 알아본 뒤 제안한 몇 개 코스 중 난 올레10코스를 택했다. 잘 모르겠지만 왠지 산방산이 좋아 보였고, 스위스와 우정의 길을 맺은 곳이라고 하니 더 좋아 보였다. (내가 스위스에 가보고 싶었나?)


제주도에 도착한 첫 날 출발지점 인근 숙소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올레길을 걸었다. 




가파른 산길 오르고 절벽길을 걷는다. 


바닷가 커다란 갯바위 건너 모래땅을 걷는다. 


청록빛 바다 수평선 따라 해안도로를 걷는다.


가파른 오름을 기어 오른다. 


너른 들판 감자밭, 양배추밭, 브로콜리밭 사이 바람 맞으며 걷는다.





“아... 평화롭다. 나 여기서 살고 싶다.”


그냥 해 본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제주도에 온 게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자연을 마주하며 하루를 온전히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나의 남은 인생을 전쟁같은 직장생활의 스트레스 속에서 모두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자연속에서 가족과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싶었다. 겨우 하루 걸었을 뿐인데 나는 제주앓이를 하게 되었다. 


이듬해 봄 제주도 남서쪽 사계리 마을 오래된 돌집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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