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비로소 나를 찾는 여정
첫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숨통이 좀 트였다. 마침 둘째의 임신과 출산이 이어졌다. 둘째는 모든 면에서 첫 아이를 키울 때보다 훨씬 수월했기에 나의 두 번째 육아는 첫 아이 때만큼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로 늙어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고뇌와 번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내가 바라던 삶이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였던가. 그게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이었나. 끊임없이 올라오는 질문이 나를 괴롭게 했다. 그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가슴에 뭔가 꽉 막혀 있는 듯 답답하기만 했다.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긴 한숨을 내쉬는 날이 많아졌다.
한때는 엄마로서 아이를 잘 키우고 아내로서 남편을 잘 내조하고 집안 살림을 잘 해내는 살림꾼으로 잘 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잘 자랐고 남편은 회사에서 인정받아 승진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나에게 행복이나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남편은 소위 잘 나가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자존감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나와 같은 또래를 키우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 어지러이 정리가 안 된 나의 집보다 훨씬 깔끔하게 정리된 그 집을 보며 나는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친구는 아이들도 나보다 더 살뜰히 키우고 집안 살림도 똑 부러지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 친구의 즐거움으로 보였다.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고 남편이 직장 생활을 잘하도록 내조를 하는 것이 자신의 보람이라고 말하는 친구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현모양처의 삶은 나의 보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럼 나는 뭐지?’ 엄마와 아내가 되었지만 나는 현모양처가 되고 싶은 생각도 그런 일로 보람을 느끼지도 못한다면 나는 대체 뭘까?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또다시 답을 알 수 없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자아정체감을 찾아가는 시기였던 것 같다. 30대에 비로소 나의 정체감에 대해 깊이 고민을 했던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 미래에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지만 누구도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야 했다. 마치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번민의 시작이었다. 내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내 마음은 불안하고 답답했다.
나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다음을 나아갈 수 있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을 해 보았다. 나는 현모양처가 될 수 없다. 똑 부러진 집안 살림꾼에도 소질과 흥미가 없다. 나는 남편과 아이들의 성장을 기뻐하지만 그것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다.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누구의 아내가 아닌 나 스스로 일어서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이렇게 하나씩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가기 시작했다. 밤잠을 설쳐가며 끊임없이 나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묻고 또 묻고 답하고 또 답을 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애 엄마인 내가 이제 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경력단절이 된지도 오래인데 다시 사회가 나갈 수나 있을까, 그렇게 직장 생활이 싫어서 박차고 나왔으면서 다시 일을 잘할 수 있나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도 같이 따라왔다.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삶을 살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좋은 엄마도 아내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가장 우울하고 힘들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에 그 어두운 터널에서 빛이 나오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